[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조국 대표의 복귀 이후 조국혁신당이 달라졌다. 더불어민주당 2중대라는 꼬리표를 떼고 자기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독립을 외쳤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탓에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범여권’에서 벗어나 ‘야당’이 되려는 조국혁신당이 대안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관계가 미묘하다. 혁신당이 필리버스터 제한법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등 민주당의 굵직한 안건에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다. “여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민주당 측의 불만이 나오지만 혁신당은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재정비
앞서 민주당은 필리버스터 실시 후 국회 본회의 의사정족수인 재적 의원 5분의 1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국회의장이 이를 중단할 수 있게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자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는 소수 의견을 보호하고 숙의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제도적 장치”라며 “특별한 실익도 없이 법안의 정신만 훼손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과반이 넘는 166석의 민주당은 단독으로 각종 법안을 처리할 수 있지만 국회가 필리버스터에 돌입할 경우에는 혁신당의 협조가 필요하다. 국회법상 필리버스터 시작 24시간 이후 이뤄지는 종결 투표에는 재적 의원 5분의 3인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혁신당을 제외한 진보진영 의석수를 모두 합쳐도 종결 요건인 179명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혁신당 신장식 수석최고위원 역시 “필리버스터와 관련해서는 소수 정당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소수 정당은 필리버스터 신청도 못한다”며 “오히려 소수 정당의 목소리를 어떻게 낼 것인가 고민해 봐야 할 판에 취지와 거꾸로 가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의 경우 “위법의 여지가 있다”며 신중론을 내세우는 모양새다.
서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설치 필요성 자체는 찬성하지만 현재의 방식은 위헌 논란이 있다”며 “위헌 논란과 함께 내란 세력이 빈틈을 파고들어 ‘재판 정지’라는 중대 상황을 만들 위험성이 있다. 함께 대안을 결정하자”고 말했다.
지난 3일 민주당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를 통과한 해당 법안은 12·3 비상계엄과 관련 사건의 1·2심을 전담재판부가 맡도록 하는 내용이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9명으로 구성된다.
이 지점에서 혁신당은 법무부가 특정 사안을 직접 담당하는 재판부를 구성하는 데 개입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봤다.
필리버스터·내란재판부 제동
슬슬 다른 목소리 내기 시작
혁신당 조국 대표는 “현재 진행되는 내란 재판에 대한 국민의 우려와 불안을 불식해야 한다는 당위를 외치는 것만이 입법부의 역할이 아니”라며 “법안 조문 하나하나를 냉정하게 따지고 검토해 모든 위험성을 제거해야 하는 것도 입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피고인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으로 재판이 지연되거나 피고인이 보석으로 석방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우려해 보완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후 민주당은 해당 법을 2심부터 적용하는 것과 법관 추천위원회 구성에 사법부 외의 관여를 배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혁신당은 “2인3각이 가져온 시너지 효과”라고 화답했다.
일각에서는 혁신당의 제동에 불편한 눈치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 박균택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혁신당이 내란전담재판부 등에 제동을 걸고 있다’는 말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도움을 주려면 논의 단계에서 미리 의견을 줘야지, 민주당이 어떤 안건을 발표하고 추진할 때 뒤늦게 나서서 훈수 두듯이 제동을 걸고 그걸 통해서 존재감을 높이려는 시도는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정면 비판했다.
조 대표는 “혁신당의 고심에 찬 제안의 의도와 내용을 왜곡하고 비방하는 속셈”이라며 직접 해명에 나섰다.
그는 “혁신당이 (사법개혁에) 위헌 소지가 있음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자 일부 급진 성향 인사, 민주당 인사, 유튜버들이 마타도어를 전개한다”며 “‘이재명정부의 발목을 잡는다’ ‘법안에 아무 문제 없는데 정의당식 차별을 전개한다’ 등 참 쉽고 편하게 말한다. 혁신당은 민주당의 우당이다. 진짜 친구는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고 반격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혁신당이 제동을 걸지 않았다면, 위헌 소지를 가진 법안이 그대로 본회의를 통과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혁신당은 민주당과 우당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내년 치러질 지방선거에서는 치열하게 경쟁하겠다고 예고했다. 올해 초 담양군수 재선거에서 처음으로 기초단체장을 배출한 혁신당은 내년 치러질 지방선거서 목포, 여수, 순천 등 9개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낼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지난해 총선서 바람을 일으킨 호남에 다시 한번 깃발을 꽂겠다며 의기투합하는 모양새다.
전남 신임 도당위원장 권한대행으로 임명된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민주당의 오랜 일당 독주는 전남 곳곳에서 지방자치의 민주적 발전을 가로막고 기득권 정치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민주당의 약점인 ‘호남 홀대론’을 직격하기도 했다.
지방선거 앞두고 차별화 전략?
아직 벗지 못한 성비위 리스크
지난 17일에는 ‘혁신당 2026 지방선거 국힘제로·부패제로 기획단’이 출범했다. 혁신당은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서 국민의힘 당선인을 ‘제로(Zero·0)’로 만들기 위해 ‘연승 필승’을 내세웠다. 혁신당 신장식 선거기획단은 “연대해서 승리하자, 반드시 승리하자는 의미”라며 “혁신당만으로도, 민주당만으로도 이룰 수 없다. 이정부 창출을 위해 힘을 모았던 모든 이들의 힘을 다시 모아야 가능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슈 선점에 나섰지만 “혁신당을 뒤흔든 성비위 사건이 언제 다시 수면으로 드러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당을 감싸고 있다”는 게 한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성비위 사건 처리를 미흡하게 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황현선 전 사무총장이 최근 당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복귀하면서 당 안팎에서 거센 질타가 쏟아졌다.
‘전국혁신당원 원탁회의’ ‘혁신당원연대’ ‘피해자연대 우리함께’ 등의 단체는 서울 여의도 혁신당 당사 앞에 근조 화환을 세우고 ‘혁신당 황현선 복귀 및 폭력적 당무 운영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다.
당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성 비위 부실 대응, 피해자 보호 조치 미이행, 조력자 방임, 심지어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의 반복된 요구마저 묵살한 그 구조 안에서 회복돼야 할 명예는 오직 피해자의 명예뿐”이라고 지적했다.
혁신당은 지난 조기 대선서 후보도 내지 않고 민주당에 힘을 실어줄 만큼 내란 청산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런 혁신당이 돌연 자기 노선을 걷기 시작한 데에는 당의 지속 가능성을 염려하는 당원의 목소리와 ‘조국 대권파’를 주장하는 이들의 요구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해석된다.
조 대표의 복귀에도 당 지지율이 한 자릿수를 맴도는 만큼 자립 요건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혁신당 관계자는 “12명의 의원이 단합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지지율이 오르고 또 당원께도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나”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주기적으로 민주당과의 ‘흡수 합당론’이 나온다. 그때마다 당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는 만큼 의원끼리 끈끈하게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기회
조 대표의 지방선거 출마 여부에 대해서는 “지방선거든 재보궐선거든 마지막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전략적으로 판단해 필요한 곳에 쓰임을 다하겠다”며 “지방선거가 끝나면 다음 총선까지 사실상 눈에 띄는 정치 이벤트가 없다. 사즉생으로 이번 선거에 임하겠다는 각오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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