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물리의 두 축인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은 공간과 시간을 대하는 관점에서는 좀처럼 합을 맞추지 못했다. 상대성이론이 공간과 시간을 '시공간'으로 묶어 다뤄온 반면, 양자역학은 공간에 대해서만 '양자상태(Quantum State)'를 정의하고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변화의 ‘과정’(채널)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100년여간 한 지붕 두 가족의 어색한 동거를 이어온 배경이 됐는데, 이 오랜 불일치를 해결할 새로운 이론적 틀을 국내 연구진이 마련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주인공은 UNIST에 임용된 지 2년이 채 안 된 젊은 연구자, 이석형 교수(32)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물리학과 이석형 교수가 시간 상에서 일어나는 양자역학적 동역학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양자상태'로 다루는 새로운 이론을 정립해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저널에 게재했다고 22일 밝혔다.
이 교수가 제안한 이론 틀의 주 개념은 '시간 위의 다자 양자상태(multipartite quantum states over time)'이다. 여러 시점에 걸쳐 일어나는 양자 과정을 모두 하나의 거대한 양자상태로 묶어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를 통해 공간적으로 떨어진 계뿐 아니라 시간적으로 떨어진 계도 동일한 수학 구조에서 다룰 수 있게 했다.
이 교수는 서로 다른 언어로 쓰여 왔던 공간상의 양자 '상태'와 시간상의 양자 '과정'을 하나의 통일된 수학 언어로 기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가 실린 PRL은 물리학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저널이다. 네이처, 사이언스 저널에 실리면 뉴스에 나지만, PRL에 실리면 물리학 교과서가 바뀐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실제 1995년부터 2017년까지 노벨 물리학상 수상 업적의 4분의 1 이상(약 28.5%)이 이 저널에 게재된 논문을 토대로 한다는 연구 통계 사이트(Nature Index) Springer Nature가 운영하는 논문 통계 사이트. 동명의 Nature Index라는 연구력 지수를 발표한다.
단일 저널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 업적이 가장 많이 실렸으며, 네이처(4.7%), 사이언스(5.6%)를 압도하는 수치다.
이번 성과는 학부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복수 전공한 이 교수의 독특한 이력이 바탕이 됐다. 특히 수학적으로 엄밀한 문제 해결 방법에서 이러한 배경이 돋보였다. 기존 이론처럼 복잡한 가정을 덧붙이기보다, 물리적으로 자연스러운 두 가지 직관적 가정만을 세우고, 이 두 조건들을 동시에 만족하는 시간 양자상태의 수학적 구조가 유일하게 정해진다는 점을 증명해낸 것이다. 연구진이 제시한 시간 양자상태가 주어진 물리적 조건에서는 유일한 '정답' 이란 뜻이다.
새롭게 정립된 시간 위의 다자 양자상태는 커크우드-디랙(Kirkwood-Dirac) 준확률분포와 일대일로 대응한다는 점도 증명됐다. 시간 양자 상태 현상을 퀀텀 스냅샷과 같은 최신 측정 기술로 실제 관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석형 교수는 "양자정보과학과 양자계측, 나아가 양자중력과 같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통합하는 궁극적 통일이론 연구에도 새로운 도구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중국 하이난대학교 수리통계학과의 제임스 풀우드(James Fullwood)교수가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UNIST,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Copyright ⓒ 모두서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