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전시현 기자 | 3년 전 세상을 집어삼킬 듯 뜨거웠던 ‘디지털 혁명’의 함성은 이제 차디찬 재가 되어 가라앉았다. 한때 예술과 금융의 신대륙으로 추앙받으며 자산 시장의 지형도를 단숨에 바꿀 듯 기세를 올렸던 NFT(대체불가능토큰) 시장 이야기다. 2025년 현재, 이 시장을 둘러싼 평가는 ‘기술이 빚어낸 혁신’이 아닌 ‘투기가 만들어낸 실패한 실험’이라는 냉혹한 성적표로 귀결됐다.
당시 2021년 NFT 시장을 지탱한 동력은 기술적 진보가 아닌 ‘지금 사면 더 비싸게 팔 수 있다’는 집단적 투기 심리였다. 실질적인 사용처는 제한적이었고 작품의 희소성과 가치는 화려한 마케팅으로 포장해 거대한 사상누각(砂上樓閣)을 쌓아 올렸다. 결국 전 세계를 덮쳤던 유동성의 파도가 걷히자 그 허망한 민낯은 고스란히 드러났고, 장밋빛 환상이 떠난 자리에는 대규모 손실과 함께 거품 붕괴의 후유증만이 남았다.
한때 “디지털 소유권의 미래”라 칭송받으며 산업의 근간을 뒤흔들 것 같았던 이 새로운 자산은 어째서 이토록 단기간에 시장의 외면을 받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붕괴는 단순한 가격 폭락을 넘어 우리 사회에 어떤 교훈을 남겼을까.
본래 NFT는 디지털 자산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해 일종의 ‘소유권 증명서’를 붙인 개념이다. 사진·그림·영상·음악 같은 디지털 파일의 원본성과 소유권을 블록체인에 기록함으로써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콘텐츠에도 희소성과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 개념은 2021년 폭발적인 관심을 끌며 예술과 금융,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그러나 시장이 남긴 결과는 참혹했다. 40억원에 육박했던 디지털 이미지가 2024년 현재 3000만원 수준에서 거래되고 전체 프로젝트의 95%가 사실상 가치 제로로 추락하면서 '디지털 신기루'의 실체가 드러났다.
시장의 몰락은 수치로 명확히 입증됐다. 가상자산 분석업체 댑갬블이 2024년 전 세계 7만3257개의 NFT 컬렉션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전체의 95%에 달하는 프로젝트의 시가총액이 '0원'으로 추락하며 사실상 가치가 소멸했다. 더 심각한 것은 조사 대상 중 79%의 컬렉션은 단 한 차례의 매수세도 붙지 않은 채 시장에 방치돼 있다는 점이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2021년 당시 NFT 시장은 그림 한 장이 수십억 원에 거래되는 광기로 가득했다. 지루한 원숭이 요트 클럽(BAYC)은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 상류층의 전유물인 회원권처럼 인식됐다. 스눕독, 에미넴, 패리스 힐튼 등 글로벌 셀럽들이 앞다퉈 가세하며 희소성을 부추겼다. 셀럽 마케팅과 포모(FOMO·소외되는 것에 대한 공포) 심리가 결합하면서 NFT는 예술적 가치보다는 천박한 투기 수단으로 급격히 변질됐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팝스타 저스틴 비버가 130만달러(약 16억원)에 사들였던 NFT 가치는 2024년 기준 95% 이상 폭락했다. 주간 거래액이 20조원에 육박했던 시장 규모는 불과 몇 년 만에 90% 이상 증발했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라는 경제적 실체 앞에서는 ‘복제 가능한 파일’에 부여했던 억 단위의 가치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가 증명된 셈이다.
시장의 우량주로 통했던 블루칩들마저 무너졌다. 댑레이더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NFT 거래량과 판매 건수는 2020년 이후 최저치로 굴러떨어졌다. 크립토펑크의 바닥가는 한 달 만에 반토막 났고 BAYC 역시 48% 이상의 가격 폭락을 기록했다. 한때 7000만원을 호가하던 두들스(Doodles)가 1000만원 선으로 내려앉는 등 시장 전체의 체급 자체가 쪼그라들었다.
NFT와 궤를 같이하며 몸집을 불렸던 ‘P2E(Play to Earn·돈 버는 게임)’ 시장도 타격을 입었다. ‘엑시 인피니티’ 등은 한때 개발도상국의 생계 수단으로 각광받으며 새로운 경제 모델인 양 포장됐다. 하지만 그 본질은 신규 투자자의 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의 수익을 보전해 주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 구조에 불과했다. 토큰 가치가 99% 폭락하면서 기대와 현실 사이의 깊은 간극만 확인했을 뿐이다.
시장의 내부는 더 부패해 있었다. 가상자산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NFT 시장은 세력들이 자산을 스스로 사고팔며 가격을 부풀리는 ‘워시 트레이딩(자전거래)’의 놀이터였다. 실제 가치와 상관없이 거래 규모를 조작해 투자자를 기만하는 행위가 조직적으로 판을 쳤다. 특정 마켓에서 부풀려진 거래 규모만 750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여기에 피싱과 해킹이 일상이 된 허술한 보안 체계는 대중의 신뢰를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결국 대중의 신뢰가 마르자 글로벌 기업들도 발을 뺐다. 나이키와 스타벅스는 NFT를 미래 핵심 수익원으로 꼽으며 야심 차게 시작했던 디지털 운동화와 리워드 프로그램을 2024년 전격 중단했다. 게임스톱 역시 규제 불확실성과 시장 침체를 이유로 NFT 거래소의 문을 닫았다.
규제의 칼날도 매서워졌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광고비를 숨기고 NFT를 홍보한 유명인들을 사기 혐의로 제소했고 투자금을 들고 잠적하는 러그풀 사건에 대한 수사를 전방위로 확대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NFT 사태를 실체 없는 기술적 맹신과 과도한 탐욕이 결합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거품 경제의 파멸이라고 진단했다. 소유권만 블록체인에 기록될 뿐 정작 이미지 파일의 무단 복제를 막지 못하는 근본적 모순이 신뢰 붕괴의 씨앗이 됐다는 분석이다.
NFT의 흥망성쇠는 자산 가치의 본질을 외면한 채 탐욕으로 쌓아 올린 신기루가 어떻게 역사의 교훈으로 박제되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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