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에서 발견한 중식의 새로운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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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에서 발견한 중식의 새로운 매력

더 네이버 2025-12-22 12:19:06 신고

오르톨랑(Ortolan)이라는 새가 있다. 한국어로는 멧새인데 참새보다 조금 큰 정도의 크기다. 프랑스에서는 오르톨랑을 가을철에 잡아 통째로 구워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얼마나 맛있는지 <미식 예찬>의 저자 브리야 사바랭은 “오르톨랑 한 마리는 천상의 향과 육체의 쾌락이 합쳐진 음식이다”라고 묘사했다. 문제는 오르톨랑의 개체수가 줄어들기도 했거니와 요리하는 방식이 너무 잔인했기 때문인데, 수수나 무화과를 잔뜩 먹여 통통하게 살을 찌운 뒤 아르마냑에 산 채로 익사시킨 후 깃털을 뽑고 오븐에 구워 통째로 먹는다는 것이다. 그 잔인함을 옛 사람들도 인지했는지 오르톨랑을 먹을 때 행하는 특별한 의식이 있는데, 식탁에서 흰 보자기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상체를 가린 채 먹었다. 특유의 향을 즐기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지만 살아 있는 존재를 통째로 먹는 것에 대한 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미식의 영역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다 보면 그런 잔인함과 죄의식에 마주치는 경우가 있다. 파리 20구 벨빌 지역에는 비스트로노미 스타일로 유명한 식당 르바라탱(Le Baratin)이 있다. 외진 거리에 아르헨티나 출신의 셰프 라켈 카레나(Raquel Carena)와 필리프 피노토(Philippe Pinoteau)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이지만 미식가들과 현지 셰프들 사이에서는 숨은 명소로 꼽힌다. 르바라탱의 대표 요리로 송아지 뇌 요리가 있다. 찐 감자와 함께 내어준 뇌 요리는 순두부보다 무른 질감이지만 더 크리미했고, 버터 같지만 좀 더 동물적인 기름진 향이 있었다. 송아지 뇌를 먹을 때 분명 죄의식을 느꼈다. 내가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당분간 채식주의자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우린 낯선 식재료에 대해 일단 거부감을 갖는다. 인간은 원래 잡식성으로 진화했기 때문에,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면서 겁을 내는 것은 몸에 해로운 것을 먹고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생겨난 인간의 생존 본능이다. 뇌는 처음 보는 재료에 대해 자동적으로 경계 신호를 보내는데, 특히 후각과 시각을 통해 재료가 안전한지 판단하려는 반응이 나타난다. 이러한 고대 시절의 방어기제가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작동하는 셈이다. 인간은 어릴 때부터 접한 재료와 조리법을 기준으로 정상적인 음식과 이상한 음식을 구분하는데, 본인이 학습한 맛의 범위를 벗어나면 감각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문화권 음식을 받아들일 때는 변형이 필요하다. 또 충분히 오랜 시간이 지나야 원형 그대로의 음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일종의 문화적 적응 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오래 전 유행한 ‘소렌토’와 같은 파스타 식당이나 ‘포호아’ 같은 베트남 쌀국수 식당은 현지 원형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한국화된 음식을 제공했다. 이제는 본토의 맛과 흡사한 음식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중국 음식만큼은 예외적인 길을 걷고 있다. 1940년대 후반, 산둥 출신 화교들이 인천으로 들어온 후 서울 종로 일대로 확장하며 시작된 한국의 중식은, 중국 8대 요리권의 방대한 재료와 조리법 중 밀가루 음식과 튀김, 볶음류만이 선택되어 발전해왔다. 8대 요리권 중 어디에도 정확히 속하지 않지만 기원과 조리방식, 맛의 계통으로 보면 산둥요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변형 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산둥 지역은 중국 북부 해안 지역으로, 밀가루 음식인 면과 만두, 그리고 튀김, 간장 양념이 중심인 음식 문화가 특징이다. 또한 요즘 ‘불 맛’이라고 하는 센 불에 볶거나 튀기는 방식이 대표적인 조리법이고, 간장, 식초, 설탕을 베이스로 한 양념이라는 점에서 한국 중식은 산둥요리의 DNA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으로 대표되는 메뉴 체계는 한국 사회에서 값싸고 배부른 음식 수요에 알맞았고, 싸고 쉽게 대량 조리가 가능한 메뉴로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 음식은 사실 중국 음식이라고 하기보다는 한국화된 산둥요리에 가깝다. 최근에는 홍콩식 광둥요리나 양꼬치를 필두로 하는 동북요리 식당도 많이 생겨났다. 반가운 일임에 분명하지만 이번 항저우 출장에서 경험한 중국 음식의 다양성을 생각한다면 깊게 뿌리내린 ‘한국식 중식’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항저우는 중국 내에서도 덥기로 유명한 지역으로, 한창 가을에 방문했음에도 짙은 녹음이 시선을 끌었다. 서호 주변 넓게 자리 잡은 녹차밭의 유명 찻집들에선 향긋한 녹차 향이 배어나왔다. 서호는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있었다. 바람은 제법 차가운데 나무들은 여전히 푸른 잎을 풍성하게 매달고 있는 모습이 이질적이었다. 녹차는 컵에 마른 찻잎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물을 부어주었는데, 처음에는 왜 걸러주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유명한 용정차(Longjing tea)인데 항저우 전통 방식으로 잎이 천천히 가라앉은 후 마시는 것이었다. 처음 몇 모금은 위쪽 맑은 찻물만 살짝 마시고 잎이 가라앉으면 잔을 기울여 남은 차를 마시는 방식인데, 찻잎이 입술에 닿거나 입안에 넘어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하지만 “찻잎은 물의 일부이고, 물은 마음의 일부다”라는 항저우 속담이 있을 정도로, 차 본래의 맛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식이라 한다. 차를 마신다는 행위에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게 아니라 자연과 시간을 함께 음미하는 일이라는 철학이 깔려 있다니 어느 순간 익숙해진다.


항저우는 동파육이 처음 시작된 곳이다. 동파육은 장쑤요리 중 대표격인 홍소육의 변형으로, 중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자 정치가 중 한 명인 소동파의 호인 동파거사를 따서 만든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진 것이다. 소동파가 정치적 갈등으로 좌천되어 항저우 지방에서 지방행정관으로 있을 때 개발한 조리법인데, 전통 요리인 홍소육이 중불에 졸이는 것과 달리 도자기 항아리에 밀폐해서 은근한 불에 오랜 시간 저수분 찜처럼 요리해 소스는 맑고 육질은 전 층이 젤리처럼 녹아드는 부드러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소동파의 유명한 시 구절 중 하나인 “인생의 참맛은 맑은 기쁨에 있다”라는 말은 동파육의 정수를 표현한 것 같다.


서호 인근에 위치한 러우와이러우()는 1848년 청나라 시절 설립된 항저우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중 하나다. 원조 동파육을 즐기러 들른 식당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왁자지껄한 말소리가 홀을 가득 울렸지만 탁 트인 서호 전망이 시원스러웠다. 동파육은 밥공기만 한 크기의 붉은 항아리에 한 조각씩 담겨 나왔다. 정육면체의 삼겹살 조각 표면은 반들반들한 호박빛 윤기를 띠고 있었고, 가장자리는 미세하게 젤라틴화되어 있었다. 젓가락을 대는 순간 형태가 무너질 정도로 부드러웠다. 아래 깔린 맑은 소스는 농축되어 육즙과 어우러졌고 은은한 황주 향이 감돌았다. 입안에서 따로 씹을 필요 없이 젤리처럼 녹고 부드럽게 풀리며 사라졌다. 파와 생강 향이 뒤늦게 피어올랐다. 느끼함은 찾아볼 수 없는, 달지도 짜지도 향신료의 자극도 없는 맛이었다. 천천히 익힌 시간의 깊이가 잔잔하게 퍼져 나갔다.


거지닭 역시 항저우의 대표 요리다. 거지닭은 독특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17세기 청나라 시절 항저우의 거지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닭 한 마리를 훔쳤으나 조리할 도구가 없어 연잎으로 감싸고 진흙으로 덮어 불 속에 넣고 익혀 먹었다는 것이다. 러우와이러우에서는 전통 방식 그대로의 거지닭을 먹을 수 있는데 우선 진흙 속 여러 겹으로 싼 연잎을 풀어 내어준다. 닭기름과 버섯 향이 더해져 향기로운 자연의 냄새가 퍼져 나온다. 매우 부드러운 살코기는 젓가락을 대기만 해도 육즙이 흘러나오고 부드럽게 풀린다. 인공적인 간은 거의 없이 은은한 단맛과 연잎의 향으로 즐거운 여운이 오래 지속된다. 배어 나온 육즙은 맑고 깊다.


항저우는 미식의 도시답게 지역 전통 음식을 현대적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아만파윤(Amanfayun) 호텔 내에 위치한 ‘항저우 하우스(Hangzhou House)’와 포시즌스 호텔 내 위치한 ‘진샤(Jin Sha)’가 대표적이다. 차를 재배하는 전통 마을 전체를 리조트로 재탄생시킨 아만파윤은 녹차밭 한가운데 자리해 전통 가옥과 돌길, 대나무 숲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서정적이고 자연 친화적이다. 항저우 하우스의 시그너처 메뉴인 방울토마토 요리는 산뜻한 스타터로, 신맛과 토마토젤리의 단맛, 속을 채운 히코리너트의 맛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송판육은 식초소스를 입힌 다진 양고기가 피스타치오와 함께 입안에 고소하게 녹아내렸다. 버섯을 곁들인 찜닭은 송이버섯, 흑목이, 동충하초, 백합버섯 등 여러 버섯들이 닭의 담백한 감칠맛과 어우러져 맑으면서도 깊은 맛이 층층이 퍼졌다. 금침화 볶음은 고추, 죽순과 함께 나왔는데 탱글한 식감과 씹을수록 연한 단맛 뒤의 산뜻한 고소함이 혀끝을 간지럽혔다. 완벽한 익힘에서 오는 청량한 식감과 은은한 단맛의 여운이 길게 피어났다.


진샤(Jin Sha)에서 맛본 죽순 샐러드는 볶은 참깨와 들기름의 은은한 고소함과 함께 죽순 특유의 달콤하고 약간 쌉쌀한 뒷맛이 맴돌며 미세한 고추기름 향이 순차적으로 입안에 퍼진다. 아가리쿠스 버섯은 밤과 함께 간장에 졸여 차갑게 내어주었는데 마치 잘 익은 전복처럼 쫄깃했다. 버섯의 구수한 향이 밤의 단맛과 함께 올라왔는데, 왕용 셰프의 “식물성 재료로 구현한 미니어처 홍소육”이라는 설명처럼 감칠맛이 길게 이어졌다. 크리스피 치킨은 진샤의 시그너처 요리 중 하나로 바삭하고 담백하게 익혀낸 껍질은 탄성이 절로 나왔다. 털게살 두부조림은 털게의 내장과 살을 두부와 함께 뭉근하게 끓였는데 구름처럼 부드러운 소스는 진한 게장 향을 냈고, 두부는 입안에 부서지듯 녹아 바다의 맛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전해주었다.


항저우 음식은 맑고 부드러우며 담백한 중에 깊은 맛이 있었다. 계절에 맞는 가장 신선한 재료를 내어주었고 버섯 종류만도 10가지가 넘어 재료의 다양성에 다시 한번 놀랐다. 채소 요리는 익힘 정도가 완벽하고 재미있는 식감과 더불어 육류보다 더 깊은 감칠맛을 자랑했다. 우리는 흔히 중국요리는 강한 불에 튀겨 느끼하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 반대편에 자리 잡은 요리들을 맛보니 기존의 선입견을 돌아보게 된다. 항저우 서호의 새벽은 안개가 가득하다. 녹차의 향, 버섯의 향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소동파의 시 완계사(가는 비와 비낀 바람에 새벽이 차다) 중 한 구절처럼 인생의 참맛은 맑은 기쁨에 있으며, 새 불로 새 차를 끓이고, 시와 술로 세월을 천천히 즐겨야겠다.  

용정차

거르지 않고 가라앉도록 기다리는 방식으로 우리는 전통 녹차. 

진샤

1 장천목산 죽순, 파, 참기름, 고추기름.  
2 아가리쿠스 버섯, 햇밤, 간장 .

항저우 하우스

1 방울토마토, 히커리넛, 토마토 젤리.  
2 린즈 송이버섯, 고기파이, 맑은 탕.

러우와이러우

1 동파육.  
2 거지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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