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공공병원 설립 운동을 계기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성남시에서 공공병원 설립 운동을 하다가, 내 손으로 공공병원을 만들겠다고 결심하며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우리는 보건의료운동을 계기로 정치를 시작한 첫 번째 대통령을 맞이한 셈이다. 그렇기에 이재명 정부는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건강하게 살아가고,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언제 어디서나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책무'를 지닌다. 바로 지금, 이재명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을 면밀히 진단하고 평가해야 하는 이유다.
이재명 정부의 보건의료 국정과제는 올해 9월 발표된 '이재명 정부 123대 국정과제' 가운데 '기본이 튼튼한 사회'라는 국정목표 아래 배치되어 있다. 정부는 여기서 '기본이 튼튼한 사회'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보건의료의 관점에서 재정의하면 "기본적인 의료가 보장되어 각자의 삶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보건의료'라는 전략 아래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 전환, 지역격차 해소, 필수의료 확충, 공공의료 강화, 일차의료 기반의 건강·돌봄 체계 구축, 의료비 부담 완화 등의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이 과제들이 실질적 의미를 가지려면 삶과 의료의 격차를 줄이거나 제거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래야만 모든 사람이 지닌 잠재력과 가능성이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123대 국정과제를 발표하기에 앞서, 올해 8월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을 먼저 제시했다. 이 전략에서 보건의료는 반도체·AI와 함께 3대 주력 산업 가운데 하나로 설정되었고 'AI 기본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AI 전환이 필수적인 핵심 분야로 규정되었다. 이후 국정과제에서도 보건의료는 데이터 개방과 활용을 촉진해야 할 영역이자,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자 신성장 동력으로 호명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AI와 바이오헬스 분야의 규제를 사실상 '제로화'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내놓았다. 규제 완화를 기반으로 한 의료산업화, 나아가 의료영리화는 이재명 정부 보건의료정책의 또 다른 핵심 축이자 자본축적 전략이다.
즉, 이재명 정부는 보건의료를 한편으로는 '성장의 시대'를 실현하는 '이윤추구의 장(場)'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기본적 삶을 보장하고 각자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사회'를 만드는 수단으로 동시에 설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두 목표를 연결하는 실질적인 고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보건의료 영역에서 축적된 자본이 건강과 의료 이용의 불평등을 완화하고 삶의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재명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은 결국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의 1호 공약은 'AI 세계 3대 강국'이었다. 후보 시절부터 AI 100조 투자와 AI 미래기획수석 설치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고, 출범 이후에는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AI를 포함한 첨단전략산업에 대규모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국정과제에서 보건의료를 AI 전환의 핵심 영역으로 설정한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은 국민의 삶과 건강을 보장하는 사회정책이라기보다 경제정책이자 산업정책, 즉 새로운 자본축적 전략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러한 우려는 지난 12월 16일 배포된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자료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정부는 미래 보건의료체계를 'AI 기본의료 체계'로 규정하며, '기본이 튼튼한 사회'의 '기본의료'를 보장하기 위한 핵심 도구로 AI 기술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재명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은 'AI 보건의료 정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AI 보건의료를 통해 축적된 자본과 기술은 과연 건강과 의료 이용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삶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가?
AI 의료는 디지털 기기에 대한 접근성, 지속적 의료이용을 통한 데이터 축적, 의료기관의 도입 여력 등 여러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작동한다. 이러한 조건은 필연적으로 의료 수요와 인프라가 집중된 수도권과 대도시에 유리하다. 그 결과 AI 보건의료에 대한 투자는 특정 지역에 집중될 수밖에 없으며 지역 간 의료 격차를 오히려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추진하는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역시 예외가 아니다. AI, 반도체, 바이오, 플랫폼·데이터 산업, 그리고 R&D 센터와 고급 인력이 압도적으로 집중된 수도권으로 자금이 쏠릴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는 수도권의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동시에 비수도권의 청년과 전문 인력, 관련 기업들의 수도권 유입을 가속화할 것이다. 그 결과 비수도권 지역은 더욱 위축되고 의료 수요 감소와 의료 취약성의 심화라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국민성장펀드가 이자와 투자 수익을 전제로 설계된 자본이라는 점이다. 보건의료가 자본축적의 공간이 될 경우 의료는 필연적으로 이윤 극대화를 지향하게 된다. 의료의 상품적 성격이 강화되면 자원 배분의 기준은 '필요'가 아니라 '수익성'이 된다. 이는 보건의료 노동자의 고용 불안과 소득 감소, 그리고 사회 전체의 의료 질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지역 간·계층 간 건강과 의료 이용의 격차가 완화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AI 보건의료를 통해 축적된 자본과 기술만으로는 건강과 의료 이용의 불평등, 그리고 기본적 삶의 격차를 해소할 수 없다. 현 시기 이러한 격차의 근본 원인이 수도권 중심의 자본축적 구조와 이윤 추구적 의료체계에 있다면 산업정책으로서의 보건의료정책은 오히려 위기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재명 정부가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부는 약 1조 2000억 원 규모의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 설치, 공공정책수가 확대, 지역의사 양성 정책 등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 집중과 의료의 상품화를 이끄는 구조적 힘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이러한 대책이 실질적 효과를 발휘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공공병원 설립 운동을 계기로 정치를 시작한 대통령과 정부는 어떻게 AI 보건의료를 통해 '기본이 튼튼한 사회',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건강하고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누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정부가 강조하는 '기본'은 공허해지고 '기본의료'는 말장난에 그치게 될 것이다.
AI 보건의료는 새로운 이윤 추구 공간을 확장하려는 국가권력과 경제권력이 결합한 프로젝트이자 보건의료 영역의 권력관계를 재편하는 과정이다. 만약 이 새로운 권력관계가 현재의 보건의료 위기를 더욱 심화시킨다면 이를 극복할 힘의 원천은 결국 시민사회일 수밖에 없다. 그 공간은 이미 출범한 '국민참여의료혁신위원회'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장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건강한, 그리고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누리는 사회'를 향한 전략을 조직화된 사회권력이 주도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정부는 이미 '기본사회'와 '기본의료'라는, 아직은 공허하고 그 개념도 불분명한 깃발을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회하지 말고 정면 승부하자. '기본사회'와 '기본의료'는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그 개념과 전략이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건강한, 그리고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누리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 장착해야 할 내용은 무엇인지를 정리하고 주장하자. 나아가서 이 기회를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새로운 권력관계를 구축하는 계기로 전환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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