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한은 입에서 나온 '뱅크런'이라는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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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칼럼]한은 입에서 나온 '뱅크런'이라는 단어

비즈니스플러스 2025-12-22 08:58:4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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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주필
이용웅 주필

한국은행이 최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뱅크런'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단순히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를 되새기기 위한 차원은 아닐 것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예금 인출이 순식간에 발생할 수 있는 시대, 그리고 국내 건설·부동산 경기 부진이 금융권 부실로 번질 수 있다는 잠재 리스크를 경고하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한은 금통위는 지난 14일 대규모 예금인출(뱅크런) 등 갑작스런 유동성 위기 때 금융기관이 보유한 대출채권을 담보로 긴급 여신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금융기관 대출채권을 담보로 하는 긴급여신에 관한 규정'을 의결했다.

한은의 이같은 조치는 불과 이틀 만에 예금 85%가 인출됐던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와 같은 대규모 뱅크런에 대비한 조치로, 내년 1월 2일부터 시행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2023년 마련된 상시대출제도에는 시장성 증권만 담보로 인정됐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비시장성 자산인 대출채권을 담보로 포함했다. 도입 배경은 디지털 전환 가속화 등으로 급격한 유동성 리스크 발생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중앙은행 대출 제도의 유동성 안정판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의 배경에서 우리가 읽어야할 대목은

한은이 거론한 SVB 파산은 2023년 3월 발생했던 대규모 뱅크런 사태를 말하는데 금리 인상으로 인한 자산 가치 하락이 맞물려 발생했다. 

1983년 설립된 SVB는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을 주요 고객으로 하며 실리콘밸리 혁신 생태계의 핵심 은행으로 성장했다. 2021년 한 해에만 예금이 86%나 급증했다. 은행은 크게 늘어난 예금을 미국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에 투자했는데, 이는 당시 안정적이라 판단된 자산이었다.

하지만 2022년 이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금리 인상 사이클에 돌입하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채권 가치가 하락하는 등 손실 규모가 커지자 SVB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자산 매각과 증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불안이 확산, 예금자들이 대규모 인출에 나서며 단 이틀 만에 파산에 이르렀다.

SVB 뱅크런 및 파산의 주요 원인으로는 장기채권투자 위주의 자산운용, 과다한 비보호예금 비율, IT 기술 발전에 따른 디지털 뱅크런 현상을 들 수 있는데 이번에 대책을 발표하면서 한은은 특히 디지털 환경의 급변을 그 배경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한은의 설명과는 별도로 당시 SVB 뱅크런 사태는 사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 불황이라는 어두운 그림자와 맞물려 불안감을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되었음을 우리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 

SVB 사태는 직접적으로 상업용 부동산(CRE) 위기의 원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미국 지역은행들이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 SVB 파산 이후 금융 불안이 CRE 시장 불황과 맞물려 위험을 키운 측면도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은행의 약 60%가 CRE 대출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 중 3분의 2가 자산 1000억달러 미만의 중소형 은행에 집중되었는데 SVB와 같은 중소형 은행이 무너진 뒤, CRE 대출을 많이 안고 있는 다른 지역은행들도 불안 심리가 확대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대규모 투자를 한 국내 금융권에도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물론 최근에는 미국 CRE 시장이 저점에서 일부 반등하며 회복 양상을 보이고 있어 일단 큰 우려는 벗어난 상황이다. 

그럼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나칠 정도로 미 연준에 금리 인하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은 사실 부동산 시장 문제가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미국 CRE 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있다고는 하지만 2026년에서 2027년 사이 매년 약 6000억~7000억달러의 대출이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SVB 사태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통화량 M2 늘고 국채 금리도 오르는 상황에서 반복되던 PF 위기설의 현황은

2025년 현재 국내 부동산 PF 시장은 지난해까지 반복되던 '○월 위기설'에서 벗어나 점진적 안정화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금융권 PF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186조6000억원으로 200조원 밑으로 떨어졌지만 이자만 내는 '좀비 사업장'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일부 사업장은 여전히 기한이익상실(EOD) 상태로 금융권 손실 가능성 존재하고 PF 경색으로 민간 주택 공급이 줄어들며, 주택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여기서 말하는 EOD는 채무자가 약속된 상환 기한의 ‘이익’을 잃어버려, 아직 만기가 되지 않은 빚까지 한꺼번에 갚아야 하는 상태를 말한다. 

건설시장은 여전히 침체 국면에 있고, 건설업계 현금흐름이 취약한 점은 PF 대출의 기본 상환능력 회복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실제 여러 건설사가 재무적 어려움을 겪거나 워크아웃에 들어간 사례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저축은행, 증권사, 캐피탈 등 2금융권은 PF에 대한 단기 브리지론 비중이 높고, 재융자 능력이 떨어질 경우 위험도가 높은 상황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시장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월 건설수주는 공공과 민간 모두 부진해, 2020년 4월 (9조6000억원) 이후 5년 6개월래 최저 실적인 9조8000억원(전월 대비 –40.0%, 전년 동월 대비 –42.3%)을 기록했다. 

통상 10월은 가을철 공사 물량 증가로 수주가 전월보다 소폭 증가하는 계절성(1994~2024년 10월 분석결과 4% 내외로 전월 대비 상승)이 있지만, 올해는 전월대비나 전년 동월 대비 모두 크게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10월 소비자와 생산자 물가가 9월보다 상승한 가운데, 공사비 지수도 지난 9월보다 일부 상승했지만, 건설 관련 물가 상승률 자체는 1%대 수준으로 안정적인 상태인 것은 그만큼 건설시장이 불황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뱅크런'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배경은 미국 SVB 사태 이후 디지털 환경에서의 급속한 예금 인출 위험을 경고하는 동시에, 국내 건설·부동산 경기 부진이 금융권 부실로 번질 수 있다는 잠재 리스크를 강조하기 위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단순히 해외 사례를 설명한 것이 아니라, 국내 PF·건설업 부실이 금융 불안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암시한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포용적·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을 강화해야 한다"며 "영업 행태를 보면 우리는 주로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땅이나 집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먹는 것이 주축 아니냐"고 지적했다.

실재 한국은행 등 관계기관의 통계수치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기준으로 은행 부문 부동산 관련 대출이 전체 대출의 7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모든 금융부문의 부동산 관련 대출 잔액은 2681조6000억원으로, 지난 5년간 평균 7.8% 증가했다고 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 사진=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 사진=연합뉴스

건설경기가 살아나면서 집값이 안정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지만 현실은 그와 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8월 한국경제 성장률을 전망하는 자리에서 "건설경기가 성장에 기여하는 부분이 1.2%포인트"라며 "건설경기가 보합만 됐어도 성장률이 2.1%는 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건설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강남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금융권의 부동산 관련 대출은 급증하는데 건설사 PF금융은 부실화 위험을 안고 가는 모순이 지속되는 모습이 작금의 한국경제 모습이다. 

한편 한국은행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잔액은 올해 1분기 5000억원에서 2분기 2조원, 3분기 4조5000억원을 거쳐 4분기 들어 6조~6조5000억원 수준까지 불어나는 등 시중 통화량이 급증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RP 매입은 한국은행이 금융기관으로부터 국채·통안채 등을 사주고 대신 현금을 공급하는 거래이기 때문이다. 

시중 통화량 급증은 10월말 기준 M1(협의통화, 평잔)은 전월대비 0.2% 증가(전년동월대비 +8.1%)하고 M2(광의통화, 평잔) 역시 전월대비 0.9% 증가(전년동월대비 +8.7%)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 국채 10년물 국채수익률은 19일 현재 0.54% 오른 3.3290을 기록하는 등 상승압박을 받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지만 한국은행은 미국처럼 기준 금리인하로 대응하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고 부동산 시장이 지금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보면 '뱅크런'이라는 단어는 디지털 시대의 유동성 위기 가능성과, 건설·부동산 경기 부진이 금융권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로 쓰인다면 적절한 단어가 될 수 있다. 돈은 풀리고 금리는 오르는 기이한 상황 속에서 기업이든 개인이든 채무자들의 부담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작은 균열이 거대한 뱅크런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책 당국과 금융권의 치밀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부실 PF 사업장에 대한 질서 있는 정리를 통해 금융권 전염을 막아야 하고 담보 위주의 금융 관행에서 벗어나 생산적 분야로 자금이 흐르게 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디지털 환경에 걸맞은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확립하는 것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결국 문제는 부동산이 아니라, 부동산에 과도하게 얹혀 있는 금융 구조와 그 위에서 작동하는 디지털 금융 환경이다.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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