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됐다. 한 조직에 오래 몸담는 것이 안정과 보장을 뜻하던 시절은 지나갔고, 조직은 더는 개인의 커리어 전체를 책임지지 않는다. 은퇴 이후 삶도 회사가 준비해주는 영역이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 설계해야 하는 과제가 됐다. 그래서 커리어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질문은 자연스럽게 하나로 모인다. “회사를 떠난 뒤에도 나는 어떤 경쟁력을 가질 수 있나”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 앞에서 많은 사람은 전문성, 자격증, 직무 스킬을 떠올린다. 물론 중요하다. 다만 끝까지 남는 경쟁력을 조금 더 본질적으로 보면, 결국 ‘영업력’이다. 여기서 말하는 영업은 특정 직무가 아니다. 자신의 가치를 언어로 설명하고, 상대의 문제를 이해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선택받는 능력이다. 앞으로는 누구나 하나의 브랜드가 되고,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제품이나 서비스 형태로 시장에 내놓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무리 좋은 역량을 갖고 있어도 전달되지 않으면 평가받기 어렵다. 퇴사 이후 경쟁력의 핵심이 영업력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이유다.
중요한 건 영업력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퇴사 이후를 준비하려면 오히려 조직에 속해 있을 때부터 의식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주어진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과, 조직이 어디로 향하는지 관찰하며 그 흐름 속에 자신을 연결시키는 경험은 다르다. 새로운 프로젝트나 신사업, 기존 업무의 확장 영역에 관여하려는 시도는 단기적으로 부담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개인의 사고 범위와 시야를 넓혀준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꾸준한 호기심과 관찰력이다. 왜 이 사업을 하는지, 왜 이 방식이 선택됐는지, 고객은 어떤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하는지 묻는 사람은 결국 기회를 먼저 발견한다. 창의성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기존의 맥락을 새롭게 연결하는 힘이다. 그 힘은 늘 ‘고객’과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출발한다.
나는 물류, 교육, 컨설팅, 제조처럼 서로 다른 산업을 거치며 영업, 해외사업, HRD 직무를 경험했다. 경력만 놓고 보면 일관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체감한 현실은 달랐다. 산업과 직무가 달라도 결국 모든 역할은 ‘영업’으로 귀결됐다. 다국적 기업을 대상으로 물류 서비스(3PL)를 제안할 때도, 동남아시아 시장에 콘텐츠와 제품을 판매할 때도, 제조업에서 IT 장비 B2B 영업을 수행할 때도 본질은 같았다.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이해하고, 그 요구를 조직 내부 자원과 연결해 해결책을 제시하고, 신뢰를 기반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이었다. 이 경험들은 특정 산업에 갇힌 전문성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꺼내 쓸 수 있는 커리어 자산으로 쌓였다.
사람을 만난 시간은 결국 자산으로 남는다. 1년 동안 1,000명 이상의 고객을 만난 시기도 있었다. 숫자만 보면 성과 관리의 결과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실패와 거절이 있었고, 그때마다 조금씩 쌓인 통찰이 있었다. 그 경험을 통해 사람은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사람은 맥락으로 설득된다. 영업은 스킬만이 아니라 태도라는 점도 더 분명해졌다. 관계를 단기 실적으로만 보지 않는 태도,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는 태도, 내 제품을 팔기 전에 상대의 문제를 먼저 정의하려는 태도가 결국 신뢰를 만든다. 인사평가에서 S 등급을 받으며 성과를 인정받은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더 중요했던 것은 그 시간들이 회사 밖에서도 그대로 통하는 경쟁력으로 남았다는 점이다.
물론 영업력이 전문성을 대체하지는 않는다. 전문성은 기본이고, 영업력은 그 가치를 시장이 알아듣게 만드는 능력이다. 같은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도, 누가 더 명확하게 문제를 정의하고, 더 설득력 있게 해결책을 제시하고, 더 믿을 만한 태도로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커리어가 직함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에서의 인식 문제로 넘어간 지금, 이 차이는 더 커졌다.
커리어의 주도권은 조직이 아니라 개인에게로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 속에서 중요한 것은 더 좋은 회사를 찾는 일이 아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와 경험을 갖추는 일이다. 지금 하는 일이 회사 안에서만 의미가 있는지, 아니면 회사 밖에서도 나를 증명해줄 수 있는 자산이 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부터 커리어의 방향은 달라진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 모두에게 이 질문은 예외 없이 적용된다. 결국 커리어는 “내가 무엇을 했나”가 아니라 “시장이 나를 왜 선택해야 하나”로 정리되는 문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게 해주는 힘이 영업력이다.
◇김영민 커리어와이 대표·커리어코치는
^한국직업진로코칭협회 회장
^저스트 이코노믹스 커리어 전문기자
^전 고용노동부 2030 자문단·고용24 구축 자문위원
^전 서울특별시 약자동행지수 평가단 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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