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기획취재팀] 잘 나가던 인공지능(AI) 랠리에 빨간 불이 켜졌다. 지난 12월 중순, 글로벌 소프트웨어 강자 오라클(Oracle)이 받아든 성적표는 월가에 충격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시장의 기대를 밑돈 매출 발표 직후 오라클의 주가는 하루 만에 12% 넘게 곤두박질쳤다. 이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악재를 넘어, 지난 2년간 증시를 뜨겁게 달궜던 'AI 대세론'에 찬물을 끼얹는 전조 현상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CEONEWS는 이번 '오라클 쇼크'를 기점으로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는 'AI 거품론'의 실체를 진단하고, 2026년 기술주 시장의 향방을 가늠해보는 긴급 진단을 마련했다.
■ '12% 폭락'의 전말, 투자와 수익의 괴리
오라클 사태의 핵심은 '투자(Capex)와 수익(Revenue)의 시차'에서 오는 괴리감이다. 오라클은 이번 분기 조정 주당순이익(EPS) 2.26달러를 기록하며 시장 예상치를 상회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주목한 것은 '매출'이었다. 160억 6천만 달러라는 매출은 전년 대비 14% 성장한 수치임에도 불구하고, 월가의 눈높이(162억 달러)를 맞추지 못했다. 문제는 오라클이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래리 엘리슨 회장은 "AI 수요를 맞추기 위해 데이터센터를 미친 듯이 짓겠다"며 올해 자본지출(Capex)을 전년 대비 40% 늘린 500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빚을 내서 공장을 짓고 있는데, 물건은 생각만큼 빨리 안 팔리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확산된 것이다. 실제로 오라클의 부채가 1,080억 달러에 육박한다는 사실이 재조명되면서, 고금리 환경 속에서 무리한 확장이 재무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주가 폭락의 트리거가 되었다.
■투자 철회 소식에 시장 공포 확산
불안감에 기름을 부은 것은 투자 철회 소식이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오라클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100억 달러(약 14조 원)를 투자하려던 대체투자 운용사 '블루아울 캐피털(Blue Owl Capital)'이 협상을 중단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는 AI 데이터센터의 수익성에 대해 '스마트 머니(기관 자금)'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는 강력한 시그널로 해석됐다. 100억 달러라는 메가 딜이 무산됐다는 것은 AI 인프라 사업이 장밋빛 미래만 보장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님을 방증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나스닥 시장 전체가 출렁였고, "AI 인프라 투자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것 아니냐(Peak AI)"는 공포감이 확산됐다.
■엔비디아까지 흔들린 AI 생태계
오라클의 주가 폭락은 나비효과가 되어 AI 생태계 전반을 강타했다. 오라클은 엔비디아의 AI 칩(GPU)을 가장 많이 구매하는 '큰손' 중 하나다. 오라클이 데이터센터 구축에 난항을 겪거나 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엔비디아의 칩 주문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가
성립한다.실제로 오라클 쇼크 당일, 엔비디아를 비롯해 AMD, 브로드컴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동반 하락하는 '커플링(Coupling)'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그동안 "AI 칩 없어서 못 판다"던 공급자 우위의 시장이 "수요가 예전만 못할 수도 있다"는 수요자 중심의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거품 붕괴인가, 옥석 가리기인가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을 '닷컴 버블' 붕괴와 같은 전조로 봐야 할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신중론'과 '건전한 조정'으로 나뉜다. 신중론을 펼치는 측에서는 현재의 AI 주가가 기업들이 실제로 벌어들이는 현금 흐름에 비해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다고 지적한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이 매년 수백조 원을 AI에 쏟아붓고 있지만, 이를 통해 획기적인 수익 모델을 만들어낸 곳은 드물다. 오라클의 매출 미스는 이러한 '수익화 지연'이 현실화된 첫 번째 사례일 뿐, 앞으로 다른 빅테크 기업들도 비슷한 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다는 경고다. 반면 과도한 공포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오라클의 매출이 기대에 못 미친 것은 수요가 없어서가 아니라, 데이터센터를 짓는 속도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 병목'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오라클의 '잔여 이행 의무(RPO·수주잔고)'는 전년 대비 50% 이상 폭증하며 5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고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는 뜻으로, 인프라만 완공되면 매출은 수직 상승할 것이라는 논리다.
■'묻지마 투자'는 끝났다
2026년을 목전에 둔 지금, 주식 시장은 AI라는 테마에 무조건 환호하던 '허니문 기간'을 끝냈다. 오라클의 12% 주가 폭락은 투자자들에게 냉혹한 현실 자각의 시간을 선사했다. 이제 시장은 '기대감'이 아닌 '증명'을 요구한다.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부어 언제, 얼마나, 확실하게 돈을 벌어올 수 있는지를 재무제표로 보여주지 못하는 기업은 가차 없이 외면받게 될 것이다. 오라클 사태는 AI 거품론의 서막일 수도, 혹은 진정한 AI 강자를 가려내는 '옥석 가리기'의 시작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AI 기술주 투자의 난이도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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