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고려아연의 현지 제련소 프로젝트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앞서 진행해 온 자국 내 핵심광물 기업 투자 사례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을 위해 주요 기업에 직접 자금을 투입하는 동시에 지분을 취득하는 방식을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고려아연 역시 이와 유사한 구조로 협력 관계를 맺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비철금속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투자에 상응하는 권리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공급망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장기적인 전략적 제휴를 전제로 하되, 안보 위기나 지정학적 변수 속에서도 안정적인 핵심광물 공급망을 유지하기 위해 지분 인수 권한을 포함한 계약 구조를 설계했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리튬 아메리카스에 대한 투자가 꼽힌다. 2024년 10월 미국 에너지부(DOE)는 리튬 아메리카스에 대한 1차 대출을 추진하면서, 리튬 아메리카스와 리튬 아메리카스-GM 합작회사(JV) 지분 각각 5%에 해당하는 보통주를 주당 1센트에 인수할 수 있는 워런트를 설정했다. 이와 함께 대출 준비금으로 1억2천만달러를 추가 적립하고, GM과의 오프테이크(장기 구매) 계약을 조정하는 등 판로 확대를 위한 옵션도 포함시켰다.
트릴로지 메탈스에 대한 투자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미국 연방정부는 트릴로지 메탈스 주식 약 820만 주를 단위당 2.17달러에 매입했다. 각 단위는 보통주 1주와 10년 만기 워런트 4분의 3로 구성됐으며, 미국 정부는 알래스카에서 진행 중인 엠블러 접근 프로젝트(엠블러 도로)가 완공될 경우 주당 1센트의 행사 가격으로 보통주 1주를 추가로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이 같은 투자 구조는 고려아연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미국 정부는 고려아연의 현지 제련소 운영법인 지분을 주당 1센트(약 14원)에 최대 14.5%까지 매입할 수 있는 워런트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계속 조건의 상당 부분이 다른 핵심광물 기업들과 체결한 계약과 유사한 수준”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시장에서는 미국 정부가 설정하는 워런트 가격이 상징적인 수준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정부는 초기 단계에서 투자와 저리 대출, 인허가 패스트트랙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사업이 본궤도에 오를 경우 워런트를 행사해 투자에 대한 ‘대가’를 회수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업 성공 가능성에 대한 일종의 베팅이자, 성공 시 보상을 구조화한 프로세스라는 설명이다.
특히 미국 정부는 장기간 협력을 염두에 두고 워런트 행사를 신중하게 조율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사업 초기 워런트를 행사하면 주주로서 권리를 확보할 수 있지만, 인허가 지연이나 사업 리스크도 함께 부담해야 한다. 이에 따라 리스크를 감안한 매수 권리를 유지하면서,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을 때 지분을 확보하는 전략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 구조상 미국 정부는 프로젝트가 성공할 때까지 지속적인 소통과 지원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고려아연과의 계약은 더욱 파격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정부는 기존 투자 사례와 마찬가지로 주당 1센트에 14.5%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한편, 추가로 20%에 대한 조건부 워런트를 설정했다.
이는 제련소 운영법인의 기업가치가 23조원을 초과할 경우, 해당 가치에 상응하는 금액을 지불하고 지분을 인수하는 조항이다.
현재 약 11조원이 투입될 것으로 알려진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를 감안하면, 미국 정부가 최소 두 배 이상의 기업가치 상승을 기대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프로젝트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는 동시에, 가치가 상승할 경우 높은 가격을 지불해서라도 지분을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미국 정부의 고려아연 투자는 최근 추진 중인 전략 광물 공급망 구상인 ‘팍스 실리카(Pax Silica)’의 일환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팍스 실리카는 미국이 한국, 일본, 호주, 영국 등 8개 동맹국과 협력해 반도체와 핵심광물 등 미래 산업 공급망을 중국의 독점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다자 협력체다.
제이콥 헬버그 미국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은 최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재산업화를 추진해 경쟁력을 유지하려 한다”며 “이 과정에서 고려아연과의 협력은 매우 중요한 이정표”라고 강조했다.
이어 “팍스 실리카를 통해 동맹국들은 경제안보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으며,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 그리고 클락스빌에 있는 고려아연 제련 시설과 같은 프로젝트에 공동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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