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과 가까운 행정은 자리 잡았지만, 지역이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구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제도는 커졌지만 지방의 선택지는 오히려 좁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인구 감소와 재정 압박, 수도권 일극 구조가 겹치며 지방자치는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지금의 자치 체계가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 아니면 구조 자체를 다시 점검해야 할 시점인지에 대한 질문이 커지고 있다.
2026년은 지방자치 30년을 지나 민선 9기를 앞둔 해다. 이제는 제도의 확대가 아니라, 지방자치의 질적 성숙을 논할 때다.
중도일보는 '지방자치 30년, 다음을 묻다' 시리즈를 통해 광역 행정체계, 지역 정체성, 지방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차례로 점검한다. 충청의 다음 30년을 미리 준비하기 위함이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대전·충남 통합 논의, 전환점에 선 지방자치
② 방위식 자치구 명칭, 통합 시대에도 유효한가
③ 무늬만 지방자치… 재정자립도 후퇴
④ 재정 규모는 커졌지만, 버틸 수 있는가
AI로 생성된 이미지.
1995년 민선 지방자치 시대가 부활 한 지 벌써 30년이 지났다.
지방정부는 주민 삶과 가장 가까운 행정 주체로 자리 잡았지만, 성과를 말하기엔 현실이 녹록지 않다. 수도권 집중은 멈추지 않았고 지방의 체력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이런 구조적 피로가 누적된 탓일까. 지금 비수도권은 시도 간 통합 등 비수도권의 생존을 위한 자구책 논의가 치열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피력한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 역시 돌발적 사안이 아니다.
현재의 지방자치 체제로는 지역 경쟁력을 지키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누적된 결과다. 지난 30년간 지방의 권한은 형식적으로 확대됐지만, 정책 방향과 자원 배분의 결정권은 여전히 중앙에 머물렀다. 지방정부는 선택 주체라기보다 중앙 정책을 집행하는 단위에 가까웠다.
수도권 집중은 자연 발생적 현상이 아니다.
행정과 산업, 연구개발, 교통·의료·교육 인프라까지 국가 주요 정책은 일관되게 수도권 중심으로 설계됐다. 비수도권은 균형발전의 대상으로 불렸을 뿐, 정책 설계의 중심에 선 적은 드물었다. 분권을 말하면서도 전략은 중앙에 고정돼 있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구조 속에서 지방자치는 스스로 모순에 갇혔다.
자율은 확대됐지만, 재원은 부족했고, 책임은 늘었지만 선택지는 제한됐다. 인구 감소 지역일수록 행정·재정 부담은 커졌고, 생활권과 경제권이 하나인데 행정구역만 나뉜 지역에서는 중복 투자와 정책 비효율이 반복됐다.
이 때문에 거론되는 행정통합은 지방자치의 포기가 아니라 '확장'이라는 논리로 제시된다.
정책 결정 단위를 키우고 재정 운용의 폭을 넓혀 중앙정부와 협상할 수 있는 체급을 갖추겠다는 구상이다. 광역 인프라와 대형 산업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해석도 뒤따른다.
정치권 흐름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국민의힘 주도로 논의되던 대전·충남 통합론에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가세하면서, 통합 필요성 자체에 대한 공감대는 확산되는 분위기다. 다만 논의의 초점이 행정통합의 백년대계 보단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여야의 주도권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행정통합을 만능 해법처럼 포장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커 보인다.
가장 큰 변수는 주민 동의다. 행정통합은 단순한 구역 조정이 아니라 세금과 복지, 행정 서비스, 지역 정체성까지 흔드는 사안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충분한 설명 없이 추진될 경우 '탑 다운'식이라는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여전한 것이다.
대전 충남 통합 과정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여야와 정부가 충청인들의 삶의 질 향상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 전략과 공간 구조, 권한 특례, 중앙정부와의 역할 재설정이 함께 제시되지 않는다면 행정통합은 '이름만 바뀐 행정구역'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대전 충남 통합이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을 위한 맞춤형 처방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와 여야의 중지를 모으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지역의 한 정가 관계자는 "대전·충남 통합은 지방자치 30년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시험하는 사례"라며 "지금 필요한 것은 찬반 구도가 아니라 통합 이후를 준비할 수 있는 청사진"이라고 지적했다.
김지윤 기자 wldbs120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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