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에너빌리티는 위기에 강했다. ‘탈원전’, ‘건설경기 침체’, ‘채권단 관리’라는 파고 속에서도 본원 경쟁력을 지켜냈다. 더욱이 격동의 시간을 양분 삼아 유럽·미국·중동을 무대로 ‘K-원전’의 대표주자가 됐다. AI 산업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폭증 등으로 원전 사업이 탄탄대로를 걷게 되면서, 올해 목표로 세웠던 연간 수주액 14조원 달성도 유력해졌다. 이제 두산에너빌리티는 국내 유일 원전 주기기 제작 기업으로서 ‘원전 르네상스’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편집자주>편집자주>
【투데이신문 심희수 기자】 원전 업황 호조에 올라탄 두산에너빌리티에게 남은 과제는 자회사 ‘교통정리’라는 분석이 이어진다. 본원 경쟁력 강화, 미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사업개편의 일환으로 두산밥캣(이하 밥캣)을 다른 계열사에 이전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안팎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기 때문이다.
21일 두산에너빌리티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에서 밥캣이 차지한 비중은 52.68%에 달한다. 2021년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이후 두산에너빌리티 산하로 들어온 밥캣은 수익 창출 측면에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밥캣은 소형 굴착기, 스키드로더, 텔레핸들러 등의 소형 건설기계를 주력상품으로 판매하는 기업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밥캣의 매출이 반영되면서 오랜 적자에서 벗어났다. 2021년 연결 기준 6458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적자의 고리를 끊어냈고, 이후 2022년을 제외하고 지난해까지 흑자달성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사업 일관성이다. 두산에너빌리티의 핵심 사업은 원전, SMR(소형모듈원자로), 가스터빈, 풍력 등 에너지·중공업 중심이다. 전통적인 건설기계 사업인 밥캣은 에너지 사업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크지 않다는 평가가 내부에서도 제기돼 왔다. 지난해 두산에너빌리티는 “사업적 연관이 전혀 없는 밥캣이 에너빌리티 아래 있는 것보다 로보틱스로 이전되는 게 사업 시너지를 내기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두산그룹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신사업 중심의 사업 재편 관점에서도 두 기업 간의 분할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에너지 사업을 고도화하기 위해선 결국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앞서 두산그룹은 지난해 7월 밥캣 분할·합병 구상을 추진했으나 주주 반발과 금융당국의 문제 제기로 한 차례 제동이 걸린 바 있다. 합병 비율의 공정성, 소액주주 권익 보호 문제가 핵심 쟁점이었다. 두산 그룹은 합병 당시 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주당 가치를 각각 5만612원, 8만114원으로 평가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에 따라 주식가치로 기업 가치를 산정하자 합병 비율은 1대 0.63로 결정됐다. 밥캣의 2023년 매출이 약 9조7000억원, 두산로보틱스가 530억원인 점 등으로 불공정 합병 비율 비판이 제기됐다.
이후 12월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합병을 재추진하려 했으나 12·3 비상계엄 사태로 개편 시도는 이내 무산됐다. 당시 합병 조항엔 두산에너빌리티 주가가 2만890원 이하로 떨어지면 소액주주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이 포함됐다. 계엄 사태로 두산에너빌리티의 주가가 12월 3일 2만1150원에서 12월 10일 1만7180원까지 추락하자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액수가 급격히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결국 두산에너빌리티는 합병 철회를 결정했다. 관계자는 “계엄 사태 이후 큰 폭의 주가 하락으로 양사 합병 시 에너빌리티 주주에게 보상해줘야 할 금액이 급격히 증가하자 합병 계획을 자진 철회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두산그룹은 밥캣 합병안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향후 합병 계획이 재추진되더라도 주주 설득과 구조의 투명성 확보가 관건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2년 전에 밝힌 대로 신사업 3대 축을 기준으로 한 사업개편은 현재진행형”이라면서도 “밥캣 합병 건에 대해서는 지난해 이후 공식적인 계획이나 입장을 내놓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두산그룹으로선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밥캣의 사업성 개선에서도 합병안은 지배구조 조정 이상의 의미라는 분석이다. 밥캣이 보유한 글로벌 딜러망 및 고객 기반과 두산로보틱스의 로봇·자동화 기술을 접목할 경우 건설기계 자동화, 무인화 장비 등 새로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실제 글로벌 건설기계 시장에서도 무인 굴착기, 원격 제어 장비 등 자동화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다. 밥캣은 북미 소형 건설기계 시장을 주 무대로 삼고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매출은 15%, 영업이익은 18%씩 증가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그룹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회사 측은 “글로벌 시장에서 밥캣과 경쟁하고 있는 캐터 필러, 존디어 같은 건설기계 회사들도 로보틱스 업체를 인수해서 무인화, 자동화, AI 분야 시너지를 추구하고 있다”며 “로보틱스로선 최대 시장인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네트워크와 인프라를 갖춘 밥캣과 사업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성장 속도를 단숨에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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