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승호 선임기자 = 한때 지옥을 뜻하는 '헬'(Hell)과 한국을 지칭하는 '조선'(朝鮮)을 붙여 '지옥과 같은 한국'이라는 뜻이 담긴 용어가 널리 쓰였다. 2014년 갑자기 퍼지기 시작하더니 2~3년 만에 유행어로 올라섰다. 급속히 번진 데는 2014년 4월 생때같은 학생들의 희생을 부른 세월호 참사가 한몫하기도 했다.
집단적 절망의 언어인 헬조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파면 이후 등장한 문재인 정부 때 거의 사라졌다. 그렇다고 이 용어를 태동시킨 취업난을 비롯한 생활고와 이념과 세대 갈등으로 얽힌 사회 문제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자기비하식 표현 자체에 거부감이 있었고 유행어로서의 생명력도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다.
12·3 계엄사태 전후 시기 일부 지표를 보면 사라진 표현이 다시 나올까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올해 10월 기준 대졸 이상 고학력인 20~30대 장기 백수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려웠던 2021년 10월 이후 4년 만에 가장 많았다. 또 전체 실업자 중 장기 실업자 비율은 18.1%나 됐다. 지난 4월(9.3%)에 비해 2배 수준으로 높아졌다.
국가데이터처가 최근 발표한 '아동·청소년 삶의 질 2025'에서 2022년 기준 만 15세 청소년들의 삶 만족도는 6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최하위권인 30위에 머물렀다. 건강, 학습, 주거환경 등 아동·청소년의 전반적인 삶의 질을 측정한 결과다. 보건복지부는 고립·은둔 청년이 최대 54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017년부터 2023년까지 발생한 고독사 사망자 2만1천897명 중 74.8%가 40~60대에 집중됐다. 50대가 31.1%로 가장 많았고, 60대(27.9%)와 40대(15.8%)가 뒤를 이었다. 사회적으로 가장 활발해야 할 나이에 실직, 가족관계 단절 등 복합적인 위기를 겪으며 사회적 관계망에서 이탈하는 중장년이 심각한 위험에 처해있음을 보여준다.
'2025 청년 삶의 질 보고서'에서는 청년층 소득 만족도가 27.7%에 그쳤다. 10년 전(12.8%)보다는 훨씬 높아졌지만 사회 진입 후 체감하는 경제적 현실이 그만큼 팍팍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제적 불만족이 심리적 위기로 이어져 청년층의 극단적 선택도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수도권 선호도 심해지고 있다. 여전히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2022∼2023년 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층의 평균소득은 비수도권에 있던 전년보다 22.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수도권에서 이동하지 않은 경우 소득 증가율(12.1%)보다 2배가량 높았다.
세계 곳곳 젊은이들이 K-드라마, K-팝, K-뷰티, K-푸드에 열광하면서 방문하고 싶은 나라로 꼽는 한국에서 젊은이들은 정작 신음 소리를 내고 있는 양상이다. 문화 콘텐츠에 대한 선호와 삶의 질로 연결되는 생활 문제를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없지만 탈출을 꿈꾸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대통령 업무보고가 이어지고 있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에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청년 도약계좌, 벤처·스타트업 육성 등 다양한 정책들이 제시돼 있다. 하지만 헬조선과 같은 고통스런 아우성이 다시 들릴지 여부는 미지수다. 국민 중심의 불편부당한 정책 추진으로 체감할 수 있는 혁신과 변화를 이끌어내느냐 못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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