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 달러 규모 대미 전략 투자를 전담 관리할 '한미전략투자공사'는 정부 주도 집행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보다 더 강력한 국회 통제를 받는 방향으로 설계될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초대형 해외 투자가 재정·외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반영해 국회 사전 보고·동의와 조건부 집행 원칙을 제도화한다는 구상이다.
2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14일 한미 양국이 체결한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바탕으로 한미전략투자공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한미 전략적 투자는 ▲미국 내 전략산업에 대한 대미 투자 2000억 달러 ▲조선 분야 민간투자·보증·선박금융 등을 포함한 조선협력투자 1500억 달러로 구성된다.
전략투자공사는 투자 전반에 필요한 재원을 통합적으로 조성·관리하는 한미전략투자기금을 운용하며, 개별 투자 사업의 선정부터 투자 결정, 집행 속도 조절까지 총괄하는 전담 기구로 설계되고 있다.
전략투자공사의 기본 골격은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8일 대표발의한 '대미투자특별법'이다.
이 특별법은 전략투자공사와 기금을 만들어 대미 투자가 수익성과 타당성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집행·관리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공사 안에 재정경제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한미전략투자운영위원회'를 두고, 산업통상부에는 별도 사업관리위원회를 설치해 이중으로 심사하는 구조를 법제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운영위는 투자 여부와 기금 운용을 최종 결정하고 사업관리위는 개별 투자 사업의 수익성이나 법적 위험, 미국 정부의 지원 조건 등을 사전에 점검하는 식이다. 대미 투자 결정이 한쪽 판단에 치우치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다.
아울러 ▲연간 200억 달러 송금 한도에서 사업 진척 정도를 고려한 금액을 집행한다 ▲대미투자 집행이 외환시장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투자집행의 금액과 시점을 조정하도록 요청해야 한다 등의 안전장치 준수 내용도 담겼다.
그러나 3500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해외 투자를 정부 재량에만 맡길 경우 재정·외환 리스크에 대한 통제와 민주적 책임성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국회 안팎에서 제기되면서 추가 보완 입법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커졌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집행 구조에 대한 사전 통제와 점검 장치가 없을 경우 환율 변동성 확대나 외환보유액 운용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이 잇따르자 국회에선 대미 전략 투자에 대한 사전 보고·동의 절차 등 국회 통제 장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입법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기본 구조는 정부안에 공감대가 있지만, 이 정도 규모의 해외 투자는 국회가 일정 부분 책임 있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며 "미국이 일방적으로 투자 방향을 끌고 가려 할 때, 국회 절차가 하나의 브레이크 장치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 틀을 마련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등에 따르면, 현재 정부안으로서 제출됐던 김병기 의원 대표발의안을 제외하고 추가 발의된 관련 법안은 총 3건이다.
하나는 지난 5일 홍기원 민주당 의원이, 또 다른 하나는 진성준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이다. 마지막은 지난 18일 안도걸 의원이 제출한 법안이다.
이들 법안들을 종합하면, 한미전략투자공사의 대규모 대미 투자는 한층 더 강화된 국회 통제 하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략투자공사의 연도별 투자 집행 계획과 실적을 국회에 사전 보고하고, 일정 규모(30억 달러) 이상 투자에 대해서는 국회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아울러 미국의 관세·비관세 조치 변화나 환율 급변 등 외부 여건 악화 시 투자 집행을 조정·중단할 수 있도록 한 안전장치도 함께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 규모나 한미 간 투자 비율, 수익 환수 방식 등 핵심 조건이 변경될 경우에도 국회가 다시 판단에 참여하도록 한 점도 포함됐다.
기금 운용과 투자 성과를 국회에 정기 보고하고, 집행 기관 수장에 대한 인사청문 절차를 두는 등 사전·사후 통제를 함께 강화하는 구조도 검토되고 있다.
신세돈 교수는 "한미전략투자공사는 투자 집행의 속도와 자율성을 확보하되, 국회 사전 보고·동의 같은 통제 장치를 함께 두는 절충형 구조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가 실무를 맡고 국회가 대규모 투자에 대해 일정 부분 관여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3500억 달러에 이르는 대미 전략 투자는 단순한 개별 투자 사업이 아니라 국가 재정과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며 "집행의 신속성과 함께 국회 통제와 책임성을 제도적으로 결합한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한미전략투자공사는 20년 이내 한시적으로 운영되며 초기 자본금은 3조~5조원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금은 정부 출자를 기본으로 하되, 한국은행이나 외국환평형기금 등 공공 자산을 위탁 받아 운용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공사는 일반 공공기관과는 다른 '준(準)시장형' 성격의 조직으로 설계될 가능성이 있다.
은행법이나 자본시장법, 공공기관운영법 등의 적용을 대부분 받지 않아, 국부펀드나 정책형 투자기관처럼 비교적 자율적으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투자 계약이나 자산 처분 과정에서도 국가계약법을 적용하지 않아, 대규모 해외 투자도 신속하게 집행할 수 있다.
국회와 정부는 내년 초 기획재정위원회 심사를 통해 해당 법안들을 병합 심사할 예정으로, 김병기 의원안의 기본 틀을 바탕으로 국회 통제와 투자 안전장치를 어느 수준까지 반영할지가 입법 과정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정부는 내년 조직개편을 통해 출범할 재경부 내에 혁신성장실 전략투자지원과를 신설해 대미 전략 투자 전반을 담당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대미 전략 투자는 규모가 큰 만큼 국회 논의와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제도를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며 "입법 과정에서 국회와 긴밀히 협의하면서 제도가 안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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