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의 가장 번화한 쇼핑 거리인 난징서로에 들어선 행인은 거대한 강철 선체와 마주하게 된다. '더 루이스'라고 명명된 이 구조물은 축구장보다 긴 114.5미터의 길이를 자랑하며, 높이는 30미터에 달한다. 항구 도시 상하이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이 거대한 선박은 단순한 매장이 아니다. 이는 세계 최대의 럭셔리 제국인 LVMH, 그중에서도 루이비통이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펼치고 있는 랜드마크화 전략의 결정체다.
서울에서는 유서 깊은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한쪽 날개 전체를 인수해 6개 층을 브랜드의 서사로 채웠고, 파리 샹젤리제에서는 역사적인 호텔 건물을 통째로 매입해 새로운 형태의 플래그십을 준비 중이다. 럭셔리 산업의 문법이 제품 판매에서 '경험의 공유'로, 쇼핑몰에서 '문화의 집'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럭셔리 시장의 패러다임은 이제 소유를 넘어선 경험의 경제로 진입했다. 베인 앤 컴퍼니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중국 내 개인 사치품 소비는 18%에서 20%가량 감소했다. 약 3,500억 위안(약 64조 7,500억 원) 규모로 추산되던 시장의 위축은 경제적 불확실성과 부동산 시장의 침체에서 기인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브랜드에 대한 열망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비자의 욕망은 물건에서 기억으로 옮겨갔다. 프라다 카페를 방문한 한 고객이 "나는 더 이상 물건을 사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카페에서의 경험에는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현상은 현대 럭셔리가 직면한 새로운 현실을 대변한다. 소비자는 이제 브랜드의 공동체에 소속되기를 원하며, 그 통로로 미식과 예술, 그리고 압도적인 건축적 경험을 선택한다.
이러한 변화의 선두에 서 있는 인물은 루이비통의 최고경영자 피에트로 베카리(58)다. 루이 비통 회장 겸 CEO 피에트로 베카리는 내년 1월 1일부터 LVMH 패션 그룹의 회장 겸 CEO로 승진한다. 루이 비통 등을 소유한 LVMH그룹은 지난 2일 이 같은 내용의 인사를 발표했다.
그는 "사람들은 이제 단순히 가방을 사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문화 운동의 일부가 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피에트로 베카리의 비전 아래 루이비통은 패션 브랜드를 넘어 환대 산업과 예술을 아우르는 '문화의 집'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에게 스포츠는 문화이며, 미식 또한 브랜드의 가치를 전달하는 핵심 수단이다. 피에트로 베카리는 "성공하려면 약간은 미쳐야 한다며, 과거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거대하게 생각할 것"을 주문한다.
◇상하이의 더 루이스는 이러한 거대한 생각의 물리적 결과물이다. 설계자인 OMA의 파트너 쇼헤이 시게마츠는 이 설치물을 두고 기존의 임시 구조물 개념을 초월한 도시적 랜드마크라고 정의했다. 은빛으로 빛나는 모노그램 선체는 상하이의 햇살과 야경을 반사하며 도심 속에 비현실적인 경관을 만들어낸다. 선체 내부로 들어가면 브랜드의 170년 역사를 탐험하는 비저너리 저니스 전시가 펼쳐진다. 270개의 모노그램 모자 상자로 이루어진 아치형 터널인 트렁크스케이프는 관람객을 현실 세계에서 루이비통의 환상적인 여정으로 인도하는 입구다.
상하이 프로젝트의 경제적 함의는 명확하다. 온라인에서 탐색하고 오프라인에서 구매하는 이른바 '연구는 온라인에서, 구매는 오프라인에서(ROPO) '전략이다. 압도적인 시각적 임팩트는 중국의 소셜 미디어인 샤오홍슈나 더우인에서 폭발적인 공유를 유도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매장으로의 발길로 이어진다. 루이비통은 위챗 미니 프로그램을 통해 전시 예약을 받고 고객 데이터를 수집하며, 이를 바탕으로 고단가 제품인 가죽 제품이나 주얼리 구매로 연결되는 정교한 디지털 깔때기를 구축했다. 상하이의 더 루이스 건립에 투입된 비용은 1억 위안(약 185억 원) 이상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단순한 매장 인테리어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한 브랜드 자산 구축 투자로 봐야 한다.
◇서울에서의 행보 또한 예사롭지 않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백화점인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더 리저브 윙 전체를 점유한 루이비통은 6개 층에 걸쳐 수직적 브랜드 허브를 완성했다. 이곳의 내부 디자인은 한국 전통의 색동 무늬에서 영감을 받은 다채로운 스트라이프 패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5층에서 4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광장에는 모노그램 패턴이 새겨진 한지로 제작된 거대한 트렁크 기둥들이 설치되어 한국적 미학과 브랜드 정체성의 조화를 보여준다.
서울 프로젝트의 정점은 6층에 위치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JP 앳 루이비통이다. 뉴욕의 미쉐린 투스타 레스토랑 아토믹스를 이끄는 박정현 셰프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이 공간은 브랜드의 미학이 식탁 위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간장게장과 한우 안심을 활용한 5코스 메뉴는 샤프란 톤의 맞춤형 식기에 담겨 제공된다. 4층의 르 카페 루이비통에서는 2025년 세계 최고 페이스트리 셰프로 선정된 막심 프레데릭이 한국의 구운 베니하루카 고구마를 활용한 디저트를 선보인다. 커피 한 잔의 가격이 20달러(약 2만 7,000 원) 수준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은 이 특별한 경험을 누리기 위해 기꺼이 긴 대기 시간을 감내한다. 이는 브랜드가 고객의 일상적인 감각까지 점령하겠다는 고도의 라이프스타일 장악 전략이다.
LVMH의 수장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일찍이 수익성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일을 잘 해내면 수익성은 따라오기 마련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럭셔리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세계백화점이라는 유산 위에 세우는 창의성이라고 믿는다.
◇루이비통의 아르노 회장의 철학은 파리 샹젤리제 거리 103-111번지 프로젝트에서 가장 웅장하게 실현되고 있다. 1896년 엘리제 팔라스 호텔로 지어진 아르누보 양식의 이 건물은 루이비통 역사상 최초의 호텔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매장, 그리고 3,500제곱미터에 달하는 예술 전시 공간을 포함하는 복합체로 거듭나고 있다.
파리 프로젝트는 공사 기간조차 마케팅의 기회로 활용하는 브랜드의 대담함을 보여준다. 루이비통은 공사 중인 건물을 흉물스러운 가림막 대신 거대한 모노그램 트렁크 형상의 구조물로 덮어버렸다. 이 거대 트렁크는 그 자체로 샹젤리제의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되어 전 세계 관광객들의 카메라 셔터를 멈추지 않게 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루이비통이 이 건물을 사용하기 위해 연간 약 6,000만 유로(약 876억 원)에 달하는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천문학적인 비용임에도 불구하고, 아르노 회장은 미국 뉴욕에 타워를 세울 때 그것은 우리 그룹의 현대성과 창의성을 반영하는 상징이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파리의 이 호텔이 브랜드의 절대적인 위상을 상징하는 기념비가 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파리 호텔의 내부는 더욱 화려하다. 지하부터 3층까지 이어지는 갤러리에는 1854년 창립 당시부터 수집해 온 아카이브와 현대 미술품들이 전시될 예정이다. 10개의 럭셔리 스위트 객실 중 일부는 복층 및 3층 구조로 설계되었으며, 에투알 개선문과 에펠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파노라마 뷰를 제공한다. 하룻밤 숙박료가 최고 1만 유로(약 1,460만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전 세계의 초고액 자산가들에게 이는 단순한 숙박이 아닌 루이비통이라는 문화적 제국 내부로 초대받는 독점적인 입장권이다.
루이비통의 랜드마크화 마케팅 전략은
디올과 프라다도 유사한 전략으로 대응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루이비통의 이러한 행보는 한계 효용의 법칙을 교묘하게 비켜가는 전략이다. 단순히 가방의 디자인을 바꾸거나 소재를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소비자의 지갑을 계속 열게 할 수 없다. 하지만 브랜드가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이 되고, 그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잠을 자고, 예술을 감상하게 된다면 가치는 무한히 확장된다. 명품 가방 한 개가 3,000달러(약 405만 원)라고 할 때, 그 가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희석될 위험이 있지만, 브랜드와 함께 공유한 감동적인 기억은 감가상각되지 않는다.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사용 가치보다 이야기 가치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전략은 브랜드의 권위를 강화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상하이의 선박 디자인이 항구 도시의 역사를 소환하고, 서울의 신세계 본점이 한국 근대 백화점의 시초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루이비통이 단순히 외부에서 온 이방인이 아니라 각 도시의 역사와 맥락을 함께하는 문화적 주체임을 선언하는 행위다. 럭셔리는 이제 지역 사회와 맥락적인 대화를 나누어야 하며, 그 대화의 도구가 바로 건축과 예술이다.
루이비통의 랜드마크화 전략은 경쟁사들에게도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디올이 파리 몽테뉴가 30번지에 박물관과 레스토랑, 숙박 공간을 결합한 복합 공간을 선보이고, 프라다가 상하이의 역사적 저택인 롱자이를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루이비통은 그 스케일과 과감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0,000제곱미터에 달하는 파리 프로젝트나 축구장보다 긴 상하이의 선박은 자본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브랜드의 문화적 영토 확장에 대한 강력한 의지의 발로다.
우리는 이제 럭셔리 매장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루이비통이 큐레이팅한 한 편의 연극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제품은 그 연극의 일부이자 소품일 뿐이다. 진정한 주인공은 그 공간에서 감각의 확장을 경험하는 소비자 자신이며, 루이비통은 그 무대를 제공하는 가장 정교한 무대 감독의 역할을 수행한다. 루이비통의 피에트로 베카리 최고경영자는 당신의 직관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비즈니스에서 가장 큰 실수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루이비통이 상하이와 서울, 그리고 파리에 정박시킨 것은 단순한 건물이나 배가 아니라, 럭셔리 산업이 가야 할 새로운 항로 그 자체다. 이 거대한 항해가 2026년 파리 호텔 완공과 함께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전 세계의 이목이 샹젤리제의 거대 트렁크로 쏠리고 있다. 이 변화무쌍한 럭셔리의 바다에서 루이비통은 스스로 등대가 되어 다른 이들이 따라올 길을 밝히고 있다. 아르노 회장이 말했듯, 20년 후에 사람들이 여전히 아이폰을 쓸지는 알 수 없지만, 20년 후에도 사람들이 루이비통이 제안하는 우아한 삶의 방식을 동경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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