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實錄조조] 소설 연재 안내
본 소설은 현 정세의 사건들을 조조, 손권 등의 인물과 탁류파, 청류파 등의 가상 정치 세력으로 치환하여 재구성한 팩션(Faction)물입니다.
서라, 짐짓 '대의를 앞세우나' 실은 사사로운 이익과 권력을 좇는 자들을 탁류파(濁流派)라 칭하고, 그 반대편에서 '청명한 정치를 부르짖으나' 실은 권문세족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들을 청류파(淸流派)라 부르노라. 현재 탁류파는 여당인 주민당, 청류파는 야당인 민국의힘이니라. 조조(曹操)는 탁류파의 우두머리이자 대선을 통하여 대권을 잡은 당대 제일의 웅걸 명재이 대통령이다. 조조의 대적이자 청류파가 밀던 인물은 곧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던 손권(孫權, 열석윤 전 대통령)이었다.
초겨울의 찬 공기가 가득한 정부서울청사 별관. 단상 중앙에 앉은 명재이 대통령, 아니 환생한 魏武帝 조조의 눈빛은 형형했다. 그의 앞에는 영동정 통일부 장관이 올린 두툼한 상소, 아니 업무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조조는 특유의 짧고 굵은 손가락으로 노동신문이라 적힌 대목을 짚었다.
"영 통일부 장관. 내 한 가지 묻겠소. 이 종이 뭉치가 무엇이기에 우리 백성들의 눈과 귀를 이토록 철저히 막고 있는 것이오?"
평화교류실장 석진홍이 몸을 낮추며 답했다.
"주공, 현행법상 노동신문은 이적의 기운이 서린 불법 자료이옵니다. 일반 백성들이 실시간으로 이를 접할 길은 막혀 있으나, 조정의 서리들인 언론인들과 연구자들은 매일같이 이를 들춰보고 있사옵니다."
조조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에는 냉소와 위엄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참으로 가당치 않구려! 언론인들은 봐도 안 넘어가고, 우리 백성들은 홀딱 넘어가서 빨갱이가 될까 봐 걱정하는 것이오? 이것이야말로 백성들의 기개와 의식 수준을 천하게 여기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조조의 뇌리에는 과거 관도대전(官渡大戰)의 불꽃이 스쳐 지나갔다. 원소(袁紹)의 압도적인 70만 대군을 무너뜨린 뒤, 원소의 막사에서 발견된 것은 조조 휘하의 장수와 신하들이 원소와 내통했던 수많은 편지 꾸러미였다.
당시 참모들은 "배신자들을 모두 찾아내어 목을 쳐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그러나 그때 조조는 어떠했던가. 그는 그 편지들을 읽지도 않고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당시에는 나조차 원소의 기세에 겁을 먹고 마음이 여러 번 바뀌었거늘, 하물며 그들이야 오죽했겠느냐."
그렇게 말하며 부하들의 허물을 덮었던 조조의 관용은, 이제 현대의 대한민국에서 '정보의 전면 개방'이라는 형태로 부활했다. 국민이 북한의 선전에 잠시 흔들릴지언정, 결국은 자유의 소중함을 깨달을 것이라는 절대적인 신뢰. 그것은 조조만이 가질 수 있는 거대한 야심이자 실리적 계산이었다.
唯才是擧와 勞動新聞의 共通分母
조조는 자신을 '탁류파(濁流派)'라 부르는 세간의 시선을 잘 알고 있었다. 과거 후한 말기, 환관의 손자로 태어나 기득권인 청류파(淸流派) 유생들로부터 끊임없이 멸시받았던 그였다. 그러나 조조는 그들의 공허한 도덕적 명분보다는 실질적인 힘과 재능을 사랑했다.
"영 통일부 장관, 국정원이나 법무부의 선비들은 여전히 '특수자료 지침'이니 뭐니 하는 낡은 명분에 매달려 백성들을 보호해야 할 어린아이 취급을 하고 있구려. 국정원은 안 넘어가는데 백성은 넘어간다? 그들이 무슨 대단한 도를 닦은 신선들이라도 된단 말이오?"
조조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 내가 구현령(求賢令·현자라면 따지지 말고 모셔오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청류파들은 '불효하고 불인한 자를 어찌 등용하느냐'며 거품을 물었소. 하지만 나는 오직 재능(才)만을 보았소.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것은 선비들의 고결한 척하는 낯짝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실질적인 칼날이기 때문이오."
노동신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조조에게 하나의 '정보적 인재'와 같았다. 북한이 스스로를 선전하기 위해 내놓은 자료 속에서 오히려 그들의 빈곤과 모순을 읽어낼 수 있는 국민의 혜안을 조조는 믿었다.
"이런 걸 무슨 국정과제로 하느냐. 그냥 열어놓으면 된다. 원칙대로 하시오!"
대통령의 단호한 한마디는 국정원의 낡은 지침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의천검(倚天劍)의 서슬과 같았다. 그는 국민을 '지키는 대상'이 아닌 '함께 싸우는 주체'로 격상시켰다.
강동의 碧眼兒, 尹權과의 守成 戰役
조조의 파격적인 행보에 가장 격렬하게 반발한 것은 야당인 '청류파(淸流派)' 세력이었다. 그들의 배후에는 강동의 손권(孫權)과 같이 수성(守成)의 리더십을 보였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유산이 짙게 깔려 있었다.
손권은 조조로부터 "아들을 낳으려면 손권 같아야 한다"는 칭찬을 들을 만큼 견고한 기반을 다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보수적 지지층의 명분에 갇혀 새로운 변화보다는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데 주력했던 수성의 군주이기도 했다.
청류파 선비들은 조조의 노동신문 개방 지시를 두고 "나라의 안보 빗장을 열어젖혀 빨갱이 세상을 만들려 한다"며 매일같이 상소를 올렸다. 그들은 도덕적 결벽증과 반공(反共)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조조를 '간웅'이라 몰아세웠다.
"조조 저 자가 필시 북의 무리와 내통하여 백성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려 하는구나! 어찌 적의 궤변을 우리 안방에 들인단 말이냐!"
그러나 조조는 용산 집무실 창가에서 저 멀리 광화문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남침이 두렵소? 북한이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선전에만 익숙해져서 그런 것이오. 현실을 보시오. 북한은 지금 우리가 북침할까 봐 3중 철책을 치고, 탱크가 넘어올까 봐 평원 지역에 방벽을 쌓고 다리를 끊고 있소. 겁에 질린 것은 오히려 저들인데, 어찌하여 우리가 먼저 겁을 먹고 정보를 통제한단 말이오?"
이는 마치 적벽대전(赤壁大戰) 전야, 주유(周瑜)와 유비(劉備)의 연합군을 마주하고도 "천하의 모든 물이 장강으로 흐르듯, 인심 또한 내게로 흐를 것"이라 호언장담하던 조조의 기개와도 같았다. 다만 이번의 전장은 강 위가 아니라 국민의 스마트폰 액정 위였다.
短歌行 - 實利의 노래, 인재의 바다
밤이 깊어지자 조조는 집무실에서 독주 한 잔을 기울였다. 그의 곁에는 그가 사랑하는 시집이 아닌, 실시간 여론 동향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그는 나지막이 자신의 시 '단가행(短歌行)'을 현대적으로 읊조렸다.
"술을 대하며 노래하노니, 우리 정치의 수명은 얼마나 되겠는가. 아침 이슬처럼 짧은 지지율, 지나간 날들엔 진영 논리만 가득했구나."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실용주의적 개방이 기득권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의 결의는 단호했다.
"밝은 달 같은 국민의 지혜를 어느 때에 다 거둘 수 있으랴. 내 가슴 속 근심은 오직 이 나라의 실질적 번영뿐이로다. 산은 높아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바다는 깊어지는 것을 꺼리지 않는 법(山不厭高 海不厭深). 나 조조는 북한의 자료 한 톨도 사양치 않고 백성들이 이를 씹고 뜯어보게 하리라."
조조에게 있어 노동신문은 단순한 신문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거대한 '집단 지성'이 소화해내야 할 영양가 있는 먹잇감이었다. 그는 주공(周公)이 어진 선비를 맞이하기 위해 먹던 음식을 세 번이나 뱉어냈듯이(周公吐哺), 자신 또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자신의 정치적 안위를 세 번이라도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조조는 다시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영동정 장관이 언급한 '비전향 장기수' 문제였다. 조조는 망설임 없이 붓을 들어 '인도적 조치'라는 글자를 써 내려갔다.
"자기 고향으로 가겠다는데, 길을 열어주는 것이 하늘의 도리 아니겠소? 우리는 소인배가 아니오. 대국의 도량으로 적의 백성조차 품어야 천하가 우리를 따를 것이오."
그의 목소리는 다시금 엄숙해졌다.
"과거에는 이 노동신문을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옥에 갇히고 고초를 겪던 시절이 있었소. 하지만 그것은 힘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요. 이제 대한민국은 북한의 종이 쪼가리 몇 장에 흔들릴 그런 약한 나라가 아니오."
그는 통일부와 국정원을 향해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
"원칙대로 하시오. 국정원 자기들만 보겠다고 백성의 눈을 가리는 것은 국가를 사유화하는 짓이오. 당장 빗장을 여시오. 백성들이 북한의 실상을 보고 '저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라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백 권의 안보 교과서보다 나을 것이오."
보고를 마친 관료들이 물러가자, 조조는 홀로 창밖의 눈 내리는 서울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현대판 간웅'이라 불리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간웅'은 곧 '능력을 가진 영웅'의 다른 말이었다.
"나를 빨갱이라 부르든, 역적이라 부르든 상관없다. 나는 백성의 눈을 뜨게 할 것이며, 그 눈으로 진실을 보게 할 것이다. 그것이 위무제(魏武帝) 조조가 21세기 대한민국에 다시 태어난 이유가 아니겠느냐."
淸流의 反擊과 魏武帝의 冷笑
조조의 지시가 내려진 직후, 서초동과 여의도는 그야말로 벌집을 쑤셔놓은 듯했다. 청류파를 자처하는 야당의 중진 의원들은 한자리에 모여 조조의 '망동'을 규탄했다. 그들은 과거 조조를 '한나라의 역적'으로 몰아붙였던 원술(袁術)이나 원소(袁紹)의 후예들처럼 거룩한 분노를 쏟아냈다.
"보시오! 조조 저 자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소. 백성들을 북한 김정은의 선전장에 밀어 넣다니, 이것은 명백한 이적행위요! 손권(열석윤) 주공께서 쌓아 올린 안보의 성벽을 하루아침에 허물려 하고 있소!"
그들은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보검을 꺼내 들며 조조를 위협했다. 하지만 조조는 그들의 공격을 예상했다는 듯, 미리 준비한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응수했다.
"청류파들이 안보를 걱정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이 독점해온 '정보의 권력'을 놓치기 싫은 것이 아니오? 백성들이 똑똑해지면 자신들의 선동이 먹히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 아니냐 말이오!"
조조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과거 서주(徐州) 공방전에서 보여주었던 냉혹하면서도 정확한 타격력을 정치적으로 재현했다. 국정원의 '특수자료 지침'을 전면 재검토하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이를 방해하는 관료들을 향해 "능력이 없으면 물러나라"는 추상같은 명을 내렸다.
"내가 인재를 구할 때 그들의 행실을 묻지 않았듯, 백성들에게 정보를 줄 때도 그들의 사상을 미리 재단하지 않겠다. 정보는 빛이며, 빛은 어둠을 몰아내는 법이다. 북한의 선전이 어둠이라면, 국민의 상식은 그 어둠을 비추는 등불이 될 것이다."
명재이 대통령, 아니 조조의 노동신문 개방 정책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유례없는 실험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남북 관계의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전술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동반자'로 인정하는 민주주의의 성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조조가 위나라를 세우며 둔전제(屯田制)를 실시해 백성들의 배를 불리고, 법치를 세워 기강을 잡았듯이, 현대의 조조 또한 정보의 둔전제를 실시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 각자가 정보의 경작자가 되어 무엇이 곡식이고 무엇이 잡초인지를 스스로 가려내게 하는 것. 그것이 그가 꿈꾸는 진정한 강대국의 모습이었다.
"인생은 짧고, 할 일은 많다(對酒當歌 人生幾何)."
조조는 다시금 술잔을 채웠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 뒤에는 늘 '간웅'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닐 것임을.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훗날 역사가 그를 어떻게 평가하든, 그가 열어젖힌 '정보의 문'을 통해 국민들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더 단단한 안보 의식을 갖게 된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나는 한나라의 승상이었고, 이제 위나라의 왕이다. 그리고 지금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명분은 껍데기일 뿐, 오직 백성의 눈과 귀를 밝히는 실질만이 나의 유일한 길이다."
조조의 독백은 차가운 겨울밤의 정적을 깨고 청와대(곧 청와대로 이사할 예정임), 아니 대통령실의 복도를 따라 길게 울려 퍼졌다. 그의 앞에는 노동신문이 아닌, 대한민국 백성들의 밝은 미래가 한 폭의 지도처럼 펼쳐져 있었다.
조조의 노동신문 전면 개방 주문은 대한민국 사회에 두 가지 중대한 질문을 던졌다. 첫째, 국가는 국민의 판단력을 어디까지 신뢰하는가? 둘째, 낡은 안보 체제의 기득권은 변화하는 기술적·사회적 현실을 수용할 준비가 되었는가?
조조가 삼국시대의 혼란 속에서 실용주의를 통해 승리했듯이, 현대의 대한민국 또한 이념의 대립을 넘어 실질적인 정보 주권을 확립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조조가 지적했듯, 국민을 "선전·선동에 넘어갈 존재"로 폄하하는 관료적 엘리트주의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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