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김병조 기자] 정치권을 둘러싼 통일교의 조직적 로비 의혹은 단순한 종교 단체의 일탈 문제가 아니다. 이 사안은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해 온 ‘정교유착의 관성’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종교는 왜 정치에 접근하고, 정치는 왜 종교의 문을 두드리는가. 통일교 논란은 그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통일교의 정치권 로비 논란은 종교 단체의 과도한 정치 개입으로 설명될 수 없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정치권은 왜 그 문을 열었는가. 종교는 언제나 권력에 접근하려 하지만, 정교유착은 정치가 허용할 때만 성립한다. 이번 사안의 중심에 정치권 책임을 놓아야 하는 이유다.
▲통일교 논란의 본질...통일교는 왜 정치권을 향했나
이번 논란의 핵심은 교리나 신앙의 자유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종교 단체가 조직력·자금·국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정치권에 체계적으로 접근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책·입법·외교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다.
통일교는 일반적인 대중 종교와 달리 강한 내부 결속 구조, 장기간 축적된 자금력, 해외 정치·외교 네트워크 경험을 동시에 갖춘 종교 조직이다. 이 점에서 통일교의 정치 접근은 단순 지지 표명이나 집회 동원과 성격이 다르다. 이는 ‘엘리트형 정교유착’의 전형에 가깝다.
통일교의 정치적 행보는 돌발적 사건이 아니다. 창립 이후 통일교는 일관되게 정치·외교 영역을 종교 활동의 확장 공간으로 인식해 왔다. 반공 이념, 국제 보수 네트워크, 한미 관계, 대북 인식 등은 통일교가 정치권과 접점을 형성해 온 주요 고리였다.
종교적 신념이 정치적 목표와 결합하는 순간, 신앙은 사적 영역을 벗어나 공적 권력에 접근하게 된다. 통일교 논란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했다.
▲로비의 출발점은 정치...정치권은 왜 통일교를 외면하지 못했나
정치권의 책임은 통일교 못지않게 무겁다. 선거와 권력 유지라는 현실 앞에서 정치인은 종교 단체의 조직력과 인적 네트워크를 유혹으로 받아들여 왔다.
특히 보수 이념과의 친화성, 국제 행사·외교 채널 제공 가능성, 안정적 후원 기반은 정치권 입장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요소였다. 이 과정에서 ‘종교 단체와의 거리 유지’라는 헌법적 원칙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정치권은 종교 단체의 접근을 ‘피해’처럼 말해 왔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로비는 요청이 아니라 수락의 문제다.
종교 단체가 정치에 접근하는 것은 예외적 현상이 아니다. 문제는 정치권이 이를 관리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는 점이다.
통일교 논란에서 드러난 핵심은 정치인의 행사 참석, 종교 행사에서의 정치적 메시지 교환, 지속적 관계 유지라는 구조다. 이는 단발성 실수가 아니라, 선택의 결과다.
이처럼 정치가 종교에 기대는 이유는 명확하다. 조직력, 자금력, 도덕적 외피, 국제 네트워크 때문이다. 정당 정치가 약화되고, 정치 불신이 심화될수록 정치인은 종교의 권위를 빌리려 한다. 종교는 신뢰를, 정치는 권력을 교환한다. 이 거래 구조가 정교유착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통일교는 이 구조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활용해 온 조직이다.
▲‘몰랐다’는 정치권의 상투적 변명...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정치권은 같은 말을 반복한다. “개인적 인연일 뿐”, “종교 행사인지 몰랐다”, “정책과는 무관하다” 등이 대표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고위 정치인의 일정, 발언, 국제 행사 참석은 모두 공적 행위다. 특히 외교·안보·대북 이슈와 연관된 단체라면, 무지 자체가 책임이다. 몰랐다는 해명은 면책이 아니라 관리 실패의 고백에 가깝다.
한국 정치에는 종교 로비를 관리하는 명확한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다. 종교 단체의 로비 활동 공개 의무 부재, 정치인의 종교 행사 참여 기준 불명확, 비공식 외교 채널에 대한 통제 부재가 제도적 허점이다. 이 공백 속에서 정교유착은 음성적으로 확장됐다. 통일교 논란은 제도 부재가 만든 결과다.
문제는 특정 정치인 몇 명의 도덕성에 있지 않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교유착은 반복돼 왔다. 이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의 산물이다. 정당은 표와 자원을, 종교는 영향력을 추구한다. 이 이해관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제어 장치가 없다면, 책임은 구조적으로 정치권 전체에 귀속된다.
미국, 유럽 등 다수 민주국가에서도 종교의 정치 참여는 허용된다. 그러나 차이는 관리다. 로비스트 등록 제도, 정치 자금·후원 투명성, 공직자의 종교 행사 참여 공개 등을 통해 최소한의 경계선을 유지한다.
한국은 종교의 자유를 이유로 사실상 방치해 왔다. 그 결과 정교유착은 관행이 됐다.
▲정치권이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
통일교 논란 이후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종교 단체 로비 활동의 제도적 규율, 정치인의 종교 행사 참여 기준 마련, 외교·국제 행사에서의 종교 개입 차단, 관련 정보의 투명한 공개 등이다. 이는 종교 탄압이 아니라 민주주의 관리다.
이번 사안을 종교 문제로만 몰아갈 경우, 정치권은 다시 빠져나갈 수 있다. 정교유착은 종교가 만들어내는 문제가 아니라, 정치가 허용한 결과다. 통일교는 문을 두드렸고, 정치는 문을 열었다. 책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기획기사는 통일교 논란을 특정 종교의 일탈이 아니라, 한국 정치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종교를 단죄하는 것으로 끝낼 것인지, 정치의 책임을 묻는 출발점으로 삼을 것인지가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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