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외교부·통일부 등을 대상으로 한 업무보고에서 답답함을 강력 피력했다. "남북 간 공존공영의 길을 가야 하는 상황에서 지금은 바늘구멍 하나의 여지도 없다"며, 이러한 현실을 바꿔내는 것을 "통일부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당부했다.
최근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부처간 이견이 커진 상황에서 통일부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남북 대화는 물론이고 교류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경제협력 등 통일부의 전통적인 대북정책 영역은 이 대통령의 토로처럼 "바늘구멍"조차 막혀 있는 상황이다.
이전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가 주된 원인이었지만,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9년 이후로는 "한국을 상종하지 않겠다"는 조선의 선택이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윤석열 정부의 적대적 대북정책에 조선이 '적대적 두 국가'로 응수하면서 남북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그렇다고 바늘구멍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남북관계가 꽉 막힌 상황에서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만들려고 한다. 이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스메이커"가 되어달라며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듯 북미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개하고 이를 발판삼아 남북관계의 개선을 도모하려면, '비핵화 프레임'에서 탈피하고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을 유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 대북제재에 대한 유연성 접근도 필요하다.
그런데 비핵화 주무부처는 외교부이고, 한미연합훈련은 국방부 소관이다. 또 이들 사안은 미국과의 협의 없이 한국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대북 제재는 유엔 안보리 결의 사항이라는 점에서 한국 단독으로 돌파구를 만드는 것이 더욱 어렵다.
난관은 또 있다. 최근 케빈 김 주한미국 대사대리의 월권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한미 실무 협의 수준에서 돌파구를 만들 수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명확한 지침이 있지 않는 한, 미국 관료들은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여 바늘구멍을 찾기 위해서는 통일부의 역할에 앞서 대통령의 결단과 역할이 필요하다. 먼저 시행령을 바꿔 안보실장이 맡고 있는 NSC 상임위원장을 통일부 장관에게 맡기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통일부 장관이 NSC 상임위원장 자격으로 부처간 입장을 조율하고 '범정부 차원의 입장과 전략'을 마련토록 하는 것이다. 이 방안이 여의치 않다면, 핵심 쟁점에 대해 대통령이 숙의를 거쳐 명확한 방침을 정하고 통일외교국방라인이 '원팀'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소통에도 나서야 한다. 이를 통해 비핵화, 한미연합훈련 유예, 대북 제재 등을 놓고 한미정상 간의 입장을 조율해야 한다. 이래야만 한미간의 혼선을 최소화하고 실무협의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게 있다. 이들 사안에 대해 이 대통령의 입장을 정하는 것이다. 일단 '비핵화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북미관계의 바늘구멍을 찾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김정은-트럼프의 '결별'의 사유였던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을 고수하는 한, 두 정상의 재회의 가능성도 낮아진다.
이에 따라 내년 북미정상회담의 재개와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핵화의 대안 마련과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유예가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보여준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을 종합해보면, 바늘구멍보다 더 큰 여지는 있다.
2기 대통령 취임 이후 트럼프는 조선을 "핵보유국"이라고 부르면서 "북한의 비핵화"라는 언급은 피하고 미중러 중심의 세계 핵군축에 조선도 동참하길 바란다는 입장을 줄곧 견지해왔다. 또 1기 행정부 때 북미정상회담 흥망에서 한미연합훈련이 큰 변수로 작용했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아울러 대북제재에 대해 유연해진 태도와 평화협정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도 보여왔다.
그런데 북미정상회담 및 이를 가능케 하는 사안들은 미국의 관심사라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관심사에 가깝다. 이 대통령이 이점을 포착해 정상 차원의 소통에 나서야 할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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