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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법원에서 재건축 아파트의 개방형 발코니 설치와 관련하여 조합의 고지의무(설명의무) 범위를 명확히 한 판결(대법원 2025. 10. 16. 선고 2025다211583 판결)이 선고되었다. 조합원이 배정받은 평형에 실내로 확장이 불가능한 개방형 발코니가 설치되었음에도, 조합이 이를 구체적으로 알리지 않았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쟁점이 된 사안이다.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서울 강남의 한 재건축 조합은 서울시의 우수디자인 공동주택 인센티브(용적률 상향 등)를 받기 위해 설계변경을 감행했다. 그 결과 특정 평형(102㎡ B타입)의 일부 층에 외벽 돌출 형태의 개방형 발코니가 적용되었다. 문제는 이 개방형 발코니가 일반 발코니와 달리 법령상 실내 공간으로 확장해 거실이나 방으로 쓸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를 뒤늦게 안 조합원들은 “확장 불가능한 발코니라는 사실을 제대로 설명 듣지 못해 재산적·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며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심 법원은 조합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평면도만으로는 발코니 확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조합이 이를 구체적으로 고지했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조합의 손해배상 책임을 부정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의 핵심 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자기 책임의 원칙이다. 조합이 총회 자료집과 평면도를 통해 개방형 발코니가 설치된다는 사실을 명시했고, 건축 법령상 개방형 발코니의 확장이 제한된다는 점은 법령에 규정된 사항이라는 것이다. 즉, 조합원은 제공된 자료를 통해 자신의 아파트 구조를 파악하고 관련 법령을 확인할 의무가 있다는 취지다. 조합이 자료를 제공한 이상, 모든 세부적인 법적 제한사항까지 일일이 떠먹여 줄 의무는 없다고 본 셈이다.
둘째, 형평성 조정 시스템의 존재다. 재건축 사업에서 모든 조합원이 완벽하게 동일한 가치의 아파트를 배정받을 수는 없다.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감정평가와 분담금(청산금) 제도다. 개방형 발코니가 설치되어 실사용 면적에서 손해를 본다면, 그만큼 자산 평가액이 낮아져 조합원 분담금이 줄어드는 방식으로 이미 경제적 보전이 이루어진다는 논리다.
이번 판결은 재건축 정비사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조합의 설명의무를 합리적인 선에서 제한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조합이 사업시행계획 변경을 통해 용적률 상향이라는 전체 이익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부 평형의 불이익은 정비사업의 구조적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판결이 조합에게 면죄부만 주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여전히 거래의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고지의무가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다만 그 정보가 총회 자료 등을 통해 충분히 제공되었고, 조합원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알 수 있었던 내용이라면 별도의 구체적 설명이 없었다 하여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건축 조합원이라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조합이 알아서 잘 해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다. 총회 책자에 수록된 깨알 같은 평면도, 배치도, 마감재 리스트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내 재산의 가치를 결정짓는 법적 효력이 있는 문서다. 특히 개방형 발코니, 필로티, 측벽 등 특이 사항이 기재되어 있다면, 그것이 실제 거주나 자산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스스로 꼼꼼히 따져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언은, 수십억 원이 오가는 재건축 시장에서 더욱 냉정하게 적용된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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