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대가 쌓아온 46년의 시간
인천 중구 송학동. 1978년 건축가 공일곤이 설계한 한 주택이 있다. 대지면적 618㎡, 연면적 278㎡.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중정이다. 안채와 바깥채 사이에 마당을 두고 모든 방이 이 중정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1970년대 주택에서 이런 설계는 흔치 않았다. 공일곤 건축가는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의 공간을 가지면서도 마당을 통해 자연스럽게 만나도록 집을 설계했다.
이 집에서 한 가족이 46년을 살았다. 할머니, 부모, 손주까지 삼대가 같은 지붕 아래 기억을 쌓았다. 요즘 한 집에 46년을 사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재개발과 이사가 일상인 시대, 가족 구성이 계속 변하는 시대에 삼대가 한 공간을 지켜냈다는 건 그 자체로 드문 일이다.
집을 짓고 46년을 살아온 안주인에게 이 집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었다. 집을 지을 때부터 직접 손을 댔고, 가족의 모든 순간이 이 공간에 스며들었다. 아이들이 자라고, 손주가 태어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중정의 빛이 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벽 하나, 문 하나에 가족의 시간이 새겨져 있는 곳. 이 집은 건물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 처음엔 거절이었다
인천도시공사(iH)는 수년 전 이 집의 매입을 처음 제안했다. 바로 옆에 위치한 ‘이음1977’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개항장 일대 근대건축 문화자산을 통합적으로 보전하기 위해서였다.
안주인의 답은 완곡한 거절이었다. 집을 지을 때부터 손수 가꿔온 공간, 삼대에 걸쳐 가족의 모든 기억이 담긴 곳을 낯선 손에 넘기기는 쉽지 않았다. 팔고 나면 이 집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불안도 있었을 것이다. 헐리거나, 전혀 다른 용도로 바뀌거나, 집이 품고 있던 시간들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iH는 기다렸다. 그리고 바로 옆집을 먼저 변화시켰다.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 김수근의 건축 철학이 담긴 주택을 매입해 ‘이음1977’이라는 이름의 문화공간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건물을 허물지 않고 원형을 보전하면서 시민들이 방문하고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 옆집을 지켜본 시간, 그리고 신뢰
몇 년이 흘렀다. 안주인은 옆집의 변화를 매일 지켜봤다. 옆 건물은 그간 손이 안 닿은 곳까지 구석구석 보수되고 단장되었다. 다양한 시민들이 드나들었다. 전시가 열리고, 문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건물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잘 관리되었다. 오래된 건물이 방치되거나 철거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얻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안주인은 마음을 바꿨다. 그는 “iH 사람들한테 맡기면 이 집이 지켜지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거절했던 그 집이 2024년 iH의 품으로 들어왔다.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수년간 쌓아온 신뢰, 그리고 "이 집을 지켜달라"는 한 가족의 바람이다.
■ 과거와 현재를 ‘잇다’
iH의 근대건축문화자산에는 ‘이음’이라는 공통된 이름이 붙는다. 1호는 ‘이음1977’, 2호는 ‘백년이음’, 3호는 ‘이음1978’. 숫자는 건물이 지어진 해를 뜻한다. 그리고 '이음’이라는 단어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수십 년 전 지어진 건물이 지금의 시민들과 만난다. 공간과 사람을 잇는다. 한 가족이 살던 집이 이제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되었다. 기억과 기록을 잇는다. 건물만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건축가의 설계 의도, 지역의 역사적 맥락까지 아카이빙을 통해 기록으로 남기고 다음 세대에 전한다.
iH의 근대건축문화자산 재생사업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매입하는 사업이 아니다. 건물의 역사, 거주자의 삶, 설계의 맥락까지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이를 시민과 나누는 문화적 작업이다. ‘이음1978’ 역시 46년 거주 가족의 생활사, 공일곤 건축가의 설계 의도, 개항장 일대의 역사적 맥락이 아카이브로 정리됐다.
■ 집 자체가 전시가 되다
2025년 12월 12일, ‘이음1978’이 공식 개관했다. 전시 제목은 ‘첫 번째 집 (Home Where The Heart Is)’. 전시 방식이 독특하다. 방문객은 이 집의 손님이 된다. 집의 주인 역할을 맡은 안내자에게 초대받아 집 안 곳곳을 탐방하고, 46년간 이 공간에서 흘러간 시간을 경험한다.
일반적인 전시는 작품을 벽에 걸고 관람객이 지나가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음1978’에서는 집 자체가 전시다. 중정으로 연결된 방들을 거닐며 가족의 흔적을 만나고, 1970년대 건축가가 설계한 공간 구조를 직접 체험한다. 건축과 삶, 기록과 경험이 하나로 엮이는 방식이다.
앞으로 ‘이음1978’은 ‘이음1977’과 함께 더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인천시와 연계한 공동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기업의 사회적 공헌활동과도 연결해 활용의 폭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공공이 보전한 공간이 시민, 지역사회, 기업 모두와 만나는 열린 플랫폼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 개항장 문화재생 벨트의 완성
‘이음1978’의 개관은 단일 건물의 재생을 넘어 더 큰 그림의 일부다. 인천 개항장 일대에는 이제 세 개의 근대건축문화자산이 자리 잡았다. 1호‘이음1977’과 3호‘이음1978’은 송학동에 나란히 위치하고, 2호‘백년이음’은 선린동 차이나타운 인근에 있다. 세 공간은 보행동선으로 연결된다.
인근에는 인천시가 운영하는 소금창고(송학동1가 8의1)를 비롯한 근대문화유산이 밀집해 있다. 인천시민애집, 자유공원, 제물포구락부, 개항박물관이 걸어서 닿는 거리다. ‘이음1977’과 ‘이음1978’은 이 문화 벨트의 핵심 거점으로서 개항장을 찾는 시민과 방문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 재생과 문화, 시너지를 만들다
도시재생과 문화는 따로 가지 않는다. 오래된 건물을 살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공간에 사람들이 찾아오고, 머무르고, 경험할 이유가 있어야 재생은 완성된다. iH의 근대건축문화자산 사업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건물을 매입하고 보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아카이빙을 통해 건물의 역사와 이야기를 발굴하고, 이를 전시와 프로그램으로 풀어낸다. 시민들이 공간을 방문하고, 지역의 역사를 경험하고, 다시 찾고 싶은 장소로 기억하게 만든다. 재생이 문화를 만들고, 문화가 재생의 의미를 완성하는 선순환 구조다.
iH는 신도시 개발사업의 수익 일부를 원도심 재생에 환원하고 있다. 개발과 보전, 새것과 오래된 것이 공존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다. 근대건축문화자산 사업은 그 철학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 도시재생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
지방공기업의 역할이 무엇일까. 신도시를 짓고 아파트를 분양하는 것만이 아니다. 도시에 남은 역사와 기억을 보전하고, 그것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것. 사라질 위기에 놓인 근대건축물을 공공의 영역에서 안정적으로 지키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며, 시민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iH가 정의하는 '공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다.
민간이 하기 어려운 일이다. 단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업, 오랜 시간 신뢰를 쌓아야 가능한 일,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천천히 만들어가는 변화. iH는 공공이기에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고, 그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이음1978’은 그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처음 제안했을 때 거절당했던 집이 수년 후 스스로 문을 열었다. 옆집을 잘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공공이 신뢰를 쌓았기 때문이다.
46년을 지킨 가족, 그 신뢰를 얻어낸 공공. 도시재생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다. iH의 근대건축문화자산 재생사업은 그 믿음 위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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