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 내전은 2023년 4월 시작됐다. 수단군(SAF)과 신속지원군(RSF)의 무력 충돌이다. 표면적으로는 아프리카의 또 하나의 내전이지만, 지정학적 파급은 중동과 홍해를 거쳐 아시아까지 이어진다. 수단은 홍해 서안에 위치한 국가다. 홍해는 수에즈 운하로 연결된다. 한국 수출입 물동량의 핵심 해상 동맥이다.
20일 국제 전략·안보 연구기관 THE GEOSTRATA에 따르면, 수단의 국가 붕괴 가능성은 단순한 인도적 위기를 넘어 홍해 항로 전반의 구조적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기관은 이날 보고서에서 “수단의 재건 실패는 홍해 연안의 장기적 불안정성을 고착화시키며,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글로벌 교역국에 직접적인 비용을 전가한다”고 분석했다.
핵심은 전쟁의 ‘종식’이 아니라 그 이후다. 수단이 직면한 과제는 총성을 멈추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도로·항만·전력망 같은 기반시설, 물류와 공급망, 의료와 식량 접근성이 복구되지 않으면 폭력은 다른 형태로 재생산된다.
국가 기능이 복원되지 않은 홍해 연안은 해적과 무장세력, 비국가 행위자의 활동 무대가 된다. 한국 상선과 원유·LNG 수송선이 직접적인 위험에 노출된다. 이 과정에서 걸프 국가들의 역할이 부상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다. 사우디의 최우선 목표는 홍해 수역의 안정이다.
아랍에미리트는 항만과 물류를 중심으로 상업적 이해관계를 축적해 왔다. 카타르는 이슬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장기적 영향력을 구축해 왔다. 그러나 각국의 이해가 중첩되는 만큼, 직접적인 개입은 수단 재건이 아니라 수단 정세 불안을 고착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단 재건의 첫 번째 관문은 비무장이다. 국제사회는 RSF의 실질적 무장 해체 없이는 안정적 재건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는 유엔의 무장해제·해산·사회복귀(DDR) 원칙과도 맞닿아 있다. 민병대가 무기를 보유한 채 재건 자금이 유입되면, 자금은 곧 권력과 폭력으로 전환된다. 남수단이 독립 이후 겪은 경로다. 한국으로서는 이 실패 사례가 반복되는 것을 방관하기 어렵다. 홍해 수역 불안의 장기화는 해운·조선·에너지 산업 전반에 구조적 부담으로 남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과제는 전쟁 자금이 수단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원천 차단하는 일이다. 금광, 토지, 국경을 넘는 무역 통제권이 무장 세력의 손에 남아 있으면, 재건 자금은 ‘전시 이익집단’을 ‘전후 엘리트’로 굳힐 가능성이 높다. 조건 없는 지원은 가장 빠른 부패의 경로다. 이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강조해 온 규칙 기반 질서와도 배치된다.
세 번째는 정치적 정당성이다. 수단 군부는 2021년 과도정부를 전복하며 민주화 흐름을 끊었다. 2019년 거리에서 변화를 요구했던 수단 시민들이 배제된 채 재건이 진행될 경우, 불만은 다시 폭력으로 돌아온다. 이는 한국 입장에서 가장 비용이 큰 시나리오다. 수단 전쟁 리스크 증폭과 정세 불안정은 항로를 뒤흔든다.
외교 환경도 복잡하다. 서방 국가, 걸프, 아프리카연합, 이외 주변국들이 자국의 이익대로 움직이면, 책임은 분산되고 수단 재건 가능성은 낮아진다.
GEOSTRATA 복수의 관계자는 "사우디가 안보 보증 역할을 맡고, UAE와 카타르가 자본을 분담하는 '역할 분담형 재건'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단, 그들은 “민간 정부 복원과 구조 개혁이라는 정치적 조건이 결합되지 않으면 재건은 지속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 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의 선택지는 명확하다. 수단 재건을 ‘먼 나라의 분쟁’으로 볼 것인지, 홍해 수역 안정이라는 국익의 문제로 인식할 것인지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무역국이자 수출 물량의 99.7%가 해상 교역을 통해 이뤄진다.
해상 교통에 생존이 걸린 나라가 한국이다. 수단 재건이 실패하면, 그 비용은 운임·보험료·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한국 경제에 전가된다. 반대로 재건이 성공하면, 한국은 안정된 항로와 예측 가능한 물류 환경을 확보한다.
수단 재건은 걸프 지역 맹주들의 책임을 시시험하는 분수령이자, 대한민국 국익의 바로미터다. 조건 없는 자금은 또 다른 전쟁을 낳는다. 조건과 책임 있는 재건만이 홍해를 지키고, 한국 경제의 대동맥을 수호할 수 있다. 지금 수단에서 내려지는 선택은 머지않아 부산항과 울산항, 평택 앞바다의 비용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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