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석주원 기자 | 국내 대표 게임사 중 하나인 크래프톤은 지난 10월 ‘AI 퍼스트’ 전략을 발표하고 향후 1000억원 이상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엔씨소프트는 자체 언어모델을 개발하고 해당 사업부를 NC AI로 분사해 본격적인 인공지능(AI) 기업으로 육성 중이다.
최근 ‘더 게임 어워드’에서 멀티플레이상을 수상한 넥슨의 ‘아크 레이더스’는 개발사 엠바크 스튜디오가 거대 로봇형 적들의 행동 패턴을 학습시키는데 AI를 활용한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처럼 AI는 게임업계에서도 핵심 미래 경쟁력으로 꼽히며 점차 활용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AI 산업이 확대되면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받는 분야가 생겼다. 바로 게임 하드웨어 시장이다. AI 인프라 수요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등하면서 게이밍 하드웨어 시장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하반기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세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외신에 따르면 16GB DDR5 램(RAM)의 공급가는 지난 9월 6.84달러에서 12월 27.20달러로 3개월 만에 약 3배 올랐다. 낸드(NAND)플래시 가격도 올해 1월 대비 10월 가격이 2배 상승했다. 가장 상승폭이 큰 일본의 경우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619%까지 올랐다.
이러한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등의 원인은 AI 인프라에 대한 수요 폭증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를 제조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이 고수익의 고대역폭메모리(HBM)와 AI 데이터센터용 메모리로 생산 라인을 전환하면서 소비자용 디램(DRAM) 공급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더욱이 이달 초 마이크론이 AI용 반도체에 집중하기 위해 소비자용 메모리 사업을 철수한다고 밝히면서 향후 메모리 반도체의 공급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콘솔 게임기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 인상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다. 닌텐도 스위치2의 경우 12GB 램 원가가 4분기 단독으로 41% 상승했고 낸드플래시도 8% 올랐다. 이로 인해 닌텐도의 주가는 최근 한 달 사이 약 18% 급락했다.
구조적 비용 부담은 더 심각하다. 시장조사기업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내년 닌텐도의 메모리 비용이 전체 제조 원가의 21~23%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는 더욱 심각해 메모리 관련 비용이 35% 이상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플레이스테이션5(PS5) 프로의 경우 이미 3분기 기준으로 메모리 관련 비용이 36%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원가 인상분을 제조사가 모두 자체 부담할 수 없기 때문에 소비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내년 전 세계 콘솔 출하량을 올해 대비 4.4% 감소할 것으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기존 -3.5% 예측에서 한 단계 더 악화된 수치다. 일반적으로 콘솔 게임기는 후기 라이프사이클에 가격 인하로 수요를 자극했으나 높은 메모리 비용으로 인해 이 전략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게이밍 PC 이용자들이 직면한 현실은 더욱 가혹하다. 가격 비교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나와에 따르면 DDR5 16GB 램의 소매가는 지난 9월 8만원대에서 현재 26~28만원대로 3배 이상 비싸졌다. 고사양 게임을 즐기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GPU 역시 GDDR 메모리를 탑재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비싸질 것으로 보인다.
SSD의 가격 상승도 무시할 수 없다. 최신 고사양 게임들은 100GB를 넘는 용량을 요구하기 때문에 대용량 SSD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데 SSD 가격 역시 3개월 사이 최대 두 배 가까이 오른 상황이다.
램과 SSD의 가격 인상은 비단 게이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발사들 역시 게이밍 하드웨어의 가격 상승을 주목하고 있다.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로 유명한 라리안 스튜디오의 스벤 빈케 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램과 SSD 가격 상승이 새로운 문제로 대두됐다”고 밝힌 바 있다.
게이밍 하드웨어 가격이 급등하면서 게이머들이 고사양 게임을 위한 환경을 갖추는데 어려움이 생겼고 개발사는 이를 고려해 최적화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개발을 위한 PC 환경을 구축하는 비용도 오르게 된다. 현재 많은 게임사들이 표준처럼 사용하는 에픽게임즈의 언리얼엔진5를 원활하게 구동하기 위해서는 32GB이상의 램이 요구되는데 이미 램 가격만으로 60만원에 가까운 지출이 발생한다. 여기에 SSD와 고성능 GPU까지 갖추려면 초기 개발비가 급상승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2~3년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게이밍 PC나 콘솔 게임기를 장만하려면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구매하는 게 낫다고 조언한다. 또 한편으로는 고성능 하드웨어 없이 스트리밍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클라우드 게이밍 시대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AI 거품론이 불거지는 와중에도 AI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더 증가하는 추세로 이미 공개된 인프라 구축 계획만으로도 향후 수년간은 이러한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며 “이는 차세대 콘솔 게임기 개발에도 영향을 미쳐 차세대 콘솔의 등장을 늦추는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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