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학생 A군은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유튜브 쇼츠(숏폼) 영상을 넘기다 새벽 2시가 돼서야 스마트폰을 내려놓는다. 아침이 되면 등굣길 내내 하품하는데 수업 시간에는 꾸벅꾸벅 존다. A군 어머니 B씨는 "스스로 숏폼을 끊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사회가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2. 고등학생 C양은 인스타그램에서 또래들의 외모·일상 게시물을 보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교한다. "나만 뒤처진 것 같다"고 불안해 하는 C양. 하지만 SNS를 끊고 싶어도 학교·학원·친구 관계가 모두 SNS를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혼자만 빠져나오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C양 부모는 "아이의 자존감이 무너지는 걸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나. 법적으로 모든 청소년의 SNS 사용을 제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 중학생 자녀를 D씨도 자녀의 유튜브 중독에 고민이 크다. 그렇다고 유튜브 이용을 법으로 막는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는 게 D씨 생각이다. D씨는 "유튜브를 막으면 나한테 '부모 계정으로 가입해 쓸 수 있게 해달라'며 또 다른 갈등이 생길 것 같다"며 "부모와 학교가 함께 관리하는 현실적인 대안이 더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 인스타·유튜브, 강제로 끊어야 할까
호주가 세계 최초로 아동·청소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접속을 전면 제한한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의 SNS 접속 제한 필요성을 둘러싼 논쟁이 불붙고 있다.
김종철 방송미디어통신위원장이 지난 1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호주와 같이 청소년 SNS 이용 금지법 추진 가능성을 밝히면서부터다. 국내 도입 필요성을 묻는 소속 위원의 질의에 김 위원장은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후 SNS 이용 금지법이 '제2의 셧다운제'라며 반발이 일자 곧바로 해명에 나섰다. 그는 "현 시점에서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이용 제한을 검토한다는 의미가 아니며 법정대리인의 동의 권한 강화 등 다각적인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19일 취임 후 첫 출근길에서도 "청소년은 보호 대상자이기도 하지만 기본권 향유자이기도 하다"며 "권리도 보호하고 피해에 대해 우리가 조속히 어떤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측면, 부정적인 측면 종합적으로 살펴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16세 미만 SNS 접근 금지 카드 내놓은 호주 "SNS 알고리즘은 마약"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 SNS 이용 금지법 논쟁이 나온 이유는 청소년 SNS 중독 문제가 전세계 국가들의 공통과제이기 때문이다. 일부 연구와 전문가들은 폭력성, 우울감 등 정신적 문제와 SNS중독과의 상관관계를 지적하고 있다.
호주의 경우 지난해 4월 시드니 한 교회에서 16세 소년이 주교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기폭제가 됐다. 호주 현지 외신에 따르면 이 소년은 극단주의 단체에 속해 있었는데 이 단체가 SNS를 통해 활동하며 세력을 확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올해 초 호주 정부가 의뢰한 한 연구에 따르면 호주 10~15세 아동·청소년의 96%가 SNS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SNS 이용자 10명 중 7명이 유해 콘텐츠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호주 정부는 세계 최초로 극단 처방을 내렸다. 법안 제정을 통해 16세 미만 호주 국민이 앞으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레드, 유튜브, 틱톡, 엑스 등을 이용할 수 없도록 한 것.
아니카 웰스 호주 통신부 장관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아이들이 또 다른 마약으로 불리는 SNS의 알고리즘에 의한 중독에 빠지는 걸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다른 국가도 호주를 벤치마킹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내년부터 16세 미만 미성년자의 SNS 이용 금지를 추진할 계획이다. 유럽연합(EU) 의회는 지난달 SNS 이용 최소 연령을 16세 이상으로 하는 결의안을 통과했다.
우리나라 역시 청소년 SNS 중독 문제가 사회적 과제가 된 지 오래다. 정부가 실시한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 2명 중 1명(47.7%)이 SNS 이용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답했다.
이에 국회에서도 규제 논의가 이어졌다.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청소년 SNS 일별 이용 한도 설정 등을 담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SNS 알고리즘 추천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 과제가 추진됐다.
◆"인스타는 막고 카톡은 안 막고?" 형평성 논란…'제2 셧다운제' 우려도 나와
하지만 법으로 제한하는 방식에 대해 실효성과 형평성 논란이 나온다. 과거 '게임 셧다운제'처럼 기술적 우회가 가능해 규제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게임 셧다운제는 청소년의 심야 온라인 게임 과몰입을 막기 위해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접속을 제한한 제도다. 하지만 부모 명의 계정 사용, 가상사설망(VPN) 우회 접속 등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인식 속에 도입 10년 만에 폐지됐다.
SNS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호주는 ▲두 명 이상의 사용자 간 온라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제공하는 걸 주요 목적으로 하는 서비스 등을 기준으로 규제할 SNS를 설정했다. 하지만 이 역시 모호한 정의에 입법 초기 유튜브를 규제 대상에 제외했다가 이후 포함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평균 이용자 수 등 기준을 둘 수는 있겠지만 플랫폼별 10대 이용자 비율이나 이용 행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며 "인스타그램은 접속 금지하고 카카오톡은 열어두는 등 규제 기준이 자의적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정보보호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IT업계가 일제히 반대 의견을 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SNS 정의가 광범위해 사실상 모든 정보통신서비스가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 상황에서 청소년이 보호자 동의 없이 정보통신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도 "포괄적인 입법 규제보다 가이드라인 등 자율규제를 통해 사적 질서 형성을 우선시하는 접근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검토 의견을 냈다.
학계에서도 신중론이 나온다. 전지원 가톨릭대 의료정보학 교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뇌 영상 연구에서 과도한 SNS의 사용이 청소년기 뇌 건강을 위협한다는 결과는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SNS의 사용은 심리적 취약성을 갖는 청소년에게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 교수는 SNS 이용 제한 등 법적 규제 도입에 대해서는 실효성 점검 등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청소년들이 안전한 온라인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실질적 교육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도 법적 차단보다 청소년 스스로 SNS 이용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돕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올바른 SNS 이용 습관과 알고리즘 이해, 유해 콘텐츠 대응 방법 등을 학교 정규 교육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이 보다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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