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위력 없는 스티커 부착은 업무방해 아냐…고의성 없어"
재물손괴죄는 유죄…"피해 크지 않아" 벌금형 선고유예 판결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인터넷 설치 업체가 엘리베이터에 붙여둔 홍보물 위에 경쟁업체가 자신들의 홍보 스티커를 덧붙여 기존 홍보물을 가려버렸다면 업무를 방해했다고 볼 수 있을까.
법원은 물리력을 쓰지 않은 데다 광고 업무를 방해할 의도는 없었다고 보고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피해업체의 홍보물이 쓸모없어지도록 만든 점은 위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A(68)씨는 2023년 10월께 강원 정선군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출입문에 인터넷·TV 가입자 모집 홍보 스티커를 붙였다.
A씨가 스티커를 붙인 곳에는 경쟁업체의 홍보물이 붙어 있었지만, A씨가 그 위에 자기 홍보물을 덧붙임으로써 경쟁업체의 홍보물을 가렸다.
인터넷 설치업체를 운영하는 B(52)씨도 지난해 7월 A씨와 같은 방법으로 경쟁업체의 홍보물을 가렸다.
두 사람이 스티커를 붙인 곳은 '손대지 마시오', '기대면 추락 위험' 등 주의 스티커 하단이었다.
광고기획사와 시설물 광고 계약을 맺고 주의 스티커 하단에 홍보물을 붙였음에도 광고 효과를 누릴 수 없게 된 경쟁업체 측은 A씨와 B씨를 업무방해죄로 고소했다.
결국 법정까지 간 이 사건의 1심을 맡은 춘천지법 영월지원은 무죄로 판단했다.
1심은 업무방해죄는 어떠한 방법으로든 업무를 방해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그 밖의 위계 또는 위력으로 업무를 방해하는 경우에만 성립한다고 봤다.
두 사람의 행위로 경쟁업체의 광고 업무가 방해되었을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위력'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업무방해죄를 묻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항소심을 맡은 춘천지법 형사1부(심현근 부장판사) 역시 1심 판단과 다르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홍보 스티커 부착 과정에서 피해 업체나 아파트 관리소와 충돌하는 등 어떠한 물리력을 행사했다거나 무형의 압박을 한 사정이 없는 점을 근거로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또 홍보물에 아파트 관리소장 직인처럼 독점적인 권리가 있음을 알 수 있는 표시가 없었고, 피고인들이 경쟁업체만 겨냥해 스티커를 붙이지 않은 점도 무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즉 피해자의 광고 업무를 방해할 목적이나 계획적인 업무방해 의도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다만 검찰이 항소심 들어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한 '재물손괴' 혐의는 인정된다고 보고 각각 벌금 75만원과 80만원의 선고를 유예하는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경쟁 관계에 있는 피해자가 설치한 홍보 스티커 위에 자신의 홍보 스티커를 붙여 광고물의 효용을 해한 것으로 죄질이 좋지 않다"며 "다만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피해 정도가 크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참작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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