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이 오피스가 이방인의 시선으로 만든 사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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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이 오피스가 이방인의 시선으로 만든 사물들

엘르 2025-12-20 00:01:51 신고

서울에서 출발해 제주를 거쳐 베를린에 이르기까지. 에이이 오피스의 작업엔 늘 ‘이동’이 있다. 낯선 환경에 머무르며 관찰한 재료와 풍경, 지역의 오랜 제작 방식 등 일상에 스며든 요소를 세심하게 관찰한다. 그 감각은 디자인의 형태와 물성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탄생한 사물은 새로움을 드러내기보다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방인의 시선을 잃지 않기 위해 기꺼이 모험을 택한 에이이 오피스의 두 디자이너, 최희와 김명년을 만나 에이이 오피스의 작업 방식과 태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Pipe Chair(2025)

Pipe Chair(2025)

에이이 오피스가 시작된 계기가 궁금하다

최희 각자 여러 디자인 회사에서 산업디자이너로 경험을 쌓아오다가 SWNA에서 서로를 알게 되었다. 평소 나는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과 기획적 측면에 관심이 있었고, 김명년 디자이너는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접하고 사용할 수 있는 대량 양산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다. 함께 일하며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과 디자인의 기틀이 되는 관점이 자연스럽게 맞닿는 부분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2021년부터 에이이 오피스를 시작하게 되었다.


‘Ae’라는 스튜디오 명에는 무슨 의미를 담았나

김명년 사실 스튜디오 이름에 특별한 의미를 붙이지 않으려고 했다. 큰 메시지가 들어간 이름은 오히려 부담스럽기도 하고, 방향을 너무 정해버리는 느낌이 들어서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도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조용한 물건들이라, 이름도 그런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소나 모음처럼 아주 기본적인 단위를 상상하며 모음인 ‘a’와 ‘e’를 조합했다. a와 e가 가볍게 풀풀 날아다니다가 어디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역할은 어떻게 다른가? 각자 주력하는 분야가 있다면

김명년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주력하고 있는 분야가 다르다. 나는 보통 어떤 제약이나 목표가 주어졌을 때 그 안에서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일을 좋아하는 편이다. 현재 자동차 라이트, 하이트 진로 켈리 병, 참이슬 페트병, 리그 오브 레전드 트로피 디자인 등 외부에 아직 공개되지 않은 양산 중심의 제품 프로젝트를 주로 맡아 진행하고 있다.

최희 나의 경우 전시 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션, 스튜디오의 내부 프로젝트처럼 개념을 세우고 확장시키는 파트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 빈 종이가 주어졌을 때 즐거워하는 편이랄까. (웃음) 물론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서로 역할을 바꿔서 하기도 하고, 언제나 많은 의견을 주고받으며 더 나은 과정과 결과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에이이 오피스는 의도적으로 낯선 환경을 찾아 지역을 옮겨 왔다. 이러한 방식을 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김명년 누구나 어떤 지역에 속해 있는 만큼, 그 주변을 잘 돌보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자연스럽게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감각을 유지하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방인이 되었을 때 보이는 것들이 있지 않나. 새로운 장소에 가면 기본적인 생활 도구나 쓰레기통 같은 작은 것도 새롭게 보이고, 그 너머에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나 생각을 관찰하게 된다. 그런 감각이 우리에게 큰 영감이 되었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나 가구도 마치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느끼기를 바라며 디자인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재료, 이야기,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본다.

BUL(2022)

BUL(2022)

제주에서의 첫 프로젝트였던 캔들 홀더 에디션 ‘Bul’은 제주 옹기의 형태와 질감를 현대적으로 번역한 작업이었다.

최희 제주에 처음 이주했을때 눈에 특별하게 들어왔던 것이 제주 옹기였다. 철분을 지닌 제주 땅에서 화산흙을 직접 파내고 장작불에 구워내기 때문에 유약 없이도 붉고 검은 땅의 색과 질감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주변에 수소문해 장인분들을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프로젝트가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여전히 매력적인 재료에 비해 현대적인 해석이 많지 않다는 점이 아쉽더라.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현대의 쓰임을 번역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김명년 제작 과정에서는 장인분들의 연령대와 작업 환경을 고려해, 오래 만들어오던 ‘물허벅’의 주둥이 형태를 그대로 가져오는 방식을 택했다. 장인들에게 익숙한 제작 방식 안에서 새로운 오브젝트를 만드는 것이 부담이 없도록 하고 싶었고, 동시에 제주 옹기 고유의 선과 비례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BUL)’’을 출시하게 되었고, 이후에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알코바에서 전시로 선보였다.

월 후크 ‘Gori’도 형태가 재미있다. 제주 귤 창고와 농기구, 철물점 문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최희 제주는 밭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 문화가 인상적이었다. 제주 곳곳에 밭을 일구는 다양한 농기구와 건축 자재를 취급하는 대형 철물점이 있고, 서울에서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도구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어서 우리도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이런 풍경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면서, 철물점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을 것 같은 심플한 리빙 오브젝트를 떠올리게 되었다. 못 두개로 벽에 설치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만, 제주 환경 안에서 자연스럽게 존재감을 갖는 형태를 고민했다. 제주의 돌벽 구옥과 귤 창고, 그리고 그 벽에 오랫동안 쌓여온 철물들을 떠올리며 알루미늄 샌드캐스팅이라는 방식을 선택했고, 물건을 걸 수 있는 단순한 후크 철물 형태의 작업으로 연결됐다.


재활용 플라스틱 패널을 활용한 가구 ‘Pipe Chair’에서 가장 중시한 요소는

김명년 재활용 플라스틱 패널 한 장 사이즈인 1x1m 안에서 최대한 로스 없이 의자 한 개가 완성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 재활용 플라스틱을 다루는 업체들은 대량 생산 방식이 아니라 거의 수공예에 가깝게 패널을 만들고 있어서, 소재를 수집하고 재가공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한 장의 패널을 만들면, 그 한 장이 그대로 하나의 결과물로 이어지는 구조가 중요했다. 또한 플라스틱을 녹여 만들 때 생기는 아름다운 패턴과 질감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형태를 고안했다.


베를린이라는 도시는 에이이의 시선을 어떻게 바꿔놓았나

최희 놀랍게도 베를린은 제주와 비슷한 면이 많다. 자연이 풍부하고, 이주해 와서 생활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고, 각자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만의 자유를 찾기 위해 모인다는 점에서 닮았다. 각자의 문화가 뒤섞이는 과정에서 ‘제주스럽다’, ‘베를린스럽다’ 같은 정체성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또한, 평가로부터의 해방감도 두 지역 모두 느껴진다. 무엇을 하든, 어떻게 입든, 누구나 자신의 방식 대로 살아가는 걸 존중하는 태도가 있다. 반대로 다른 점을 꼽는다면, 베를린에는 독일 문화 특유의 실용적인 면모, 절제된 분위기가 있다.

Land(2024)

Land(2024)

베를린에서 탄생한 의자 ‘Land’, 목재 조명 ‘Eule’에는 어떤 디자인적 의도가 담겼는지

김명년 독일 전역에는 알프스 스타일에서 비롯된 테라스 장식이 흔하게 보이는데, 이 장식이 이미 레디메이드 목재 패널 형태로 대량 생산되어 판매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과거에는 지역 장인들이 자신만의 시그니처를 새겨 제작하던 장식이었지만, 지금은 규격화된 산업 재료로 기능하고 있더라. 이 독일 고유의 장식 모듈을 조합해 락킹 체어와 테이블이 결합된 타입의 의자 ‘Land’를 선보였다.

최희 독일은 나무가 풍부한 만큼 다양한 수종의 베니어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데, 수종마다 각기 다른 개성의 아름다운 패턴을 가진 베니어 시트가 종이처럼 다양하게 판매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다양한 수종의 베니어를 조합해 스템부터 갓까지 모두 나무 색이 부드럽게 확산되는 조명을 떠올렸다. 부엉이 클립은 갓의 각도나 모양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간단한 조인트 역할을 하고, 내부 철제 구조와 베니어까지 모두 일반 서류봉투에 들어가는 패키징이 가능하도록 디자인했다.

Eule(2024)

Eule(2024)

모듈형 컵인 'Egg Block'으로 계란을 유쾌하게 즐기는 방법을 제안했는데

김명년 독일에서는 삶은 계란을 귀여운 계란컵에 올려 소중하게 깨 먹는 문화가 있고, 종교적 맥락 때문인지 계란 모양의 모티브가 자주 보이곤 한다. 축복과 부활 등 작은 알 하나에 다양한 의미가 중첩되어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여기서 착안해 독일에서 흔한 나무 블록에 간단히 구멍을 뚫어 계란을 올릴 수 있는 장난감 같은 컵을 만들었다. 계란을 여러 개 올릴 수 있거나, 계란 자체가 블록이 돼 더 큰 구조를 만들 수도 있다.

〈Bread and Butter〉 (2025)

〈Bread and Butter〉 (2025)

밀라노 디자인 위크, 코펜하겐 디자인 위크 등 글로벌 페어에서 꾸준히 작업을 선보였다. 올해 참여한 전시에서는 어떤 프로젝트를 펼쳤고, 또 어떤 인사이트를 얻었나

최희 올해 ‘3daysofdesign’에서 〈브레드 앤 버터(Bread and Butter)〉 전시를 기획하고, 테이블웨어를 선보였다. 덴마크, 한국, 네덜란드의 12명의 디자이너들이 생각하는 테이블 위의 완벽한 한쌍을 보여주는 프로젝트였다. 여기서 인상 깊었던 건, 과도할 만큼 큰 소리로 외치는 디자인이 넘치는 시대에 오히려 작은 오브젝트를 다룬 이번 전시가 큰 공감을 얻었다는 점이다. 페어의 인포 센터에서도 이 전시를 제일 처음 가봐야 할 곳으로 안내하는 등 첫 참여임에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김명년 또 하나 새롭게 느낀 점은 덴마크 디자인 산업의 규모와 생태계였다. 참여한 덴마크 디자이너들을 통해서도, 전시를 방문해준 많은 가구 업계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가구 산업이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전시 지원이나 소재 지원, 협업이 매우 활발함을 느꼈다. 다음 세대를 대표할 디자이너는 누구인가에 대한 논의도 계속 이어지는 것 같다. 산업이 일정 이상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다양한 담화와 실험의 폭을 현장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협업은

김명년 언젠가는 브랜드와 조금 더 확장된 사용의 컨텍스트 전체를 함께 디자인해보고 싶다. 예를 들면 테이블과 그 위에 놓이는 오브젝트를 제안하거나, 책을 읽기 위한 소파와 조명처럼 사물들을 하나의 장면으로 구성하는 작업 말이다.

최희 무엇보다 한국의 풍부한 공예 방식과 재료를 이용하거나 그걸 오래 다뤄오셨던 장인들과의 협업은 언제나 꿈꾸고 있다. 지역성과 손작업이 가진 힘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맥락 안에서 협업을 해보고 싶다.

〈Bread and Butter〉 (2025)

〈Bread and Butter〉 (2025)

최근 준비 중인 프로젝트는

최희 요즘에는 2026년 코펜하겐과 서울에서 열릴 〈브레드 앤 버터〉 전시를 이어서 준비하고 있다. 내년 6월 코펜하겐 3daysofdesign에서는 목욕에 관련된 사물을 선보일 예정이며, 11월에는 새로운 주제로 브레드 앤 버터의 첫 서울 에디션을 선보이려고 한다. 더 많은 한국 디자이너들을 초대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 중이다.

앞으로 오래 머물러 보고 싶은 도시는 어디인가

김명년 핀란드나 일본처럼 지역의 목재 문화를 중심으로 생활이 형성된 곳에 오래 머물러보고 싶다. 그들이 나무를 길러내고 가공하는 과정 자체도 흥미롭고, 생활 방식에도 자연스럽게 목재를 다루는 감각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아 배우고 싶다. 물론 요즘은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커지고 있다. 서울의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레이어만큼이나 언제나 새롭게 보이는 지점이 많고, 제작환경이 잘 갖춰져있어 협업과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이어지는 분위기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지역이 바뀌더라도 일관성을 지니고 싶은 태도 혹은 지키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최희 관찰하는 감각과 낯선 시선을 잃지 않는 태도. 다양한 지역을 경험하면서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고 서로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사람들이 주는 에너지가 얼마나 큰지 배웠고, 그런 사람들과 부대끼며 큰 행복을 느꼈다. 에이 오피스는 앞으로 호기심을 유지하며, 꾸준히 배우고 확장하는 스튜디오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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