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논의를 하다 보면 늘 등장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IPCC, UNFCCC, 파리협정… 그 중에서도 COP, 즉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는 매년 말 전 세계 최대 규모로 열리는 기후변화 정상 회의입니다. COP에서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수많은 협약과 협상, 부대행사가 동시에 진행되며 주요 기후 이슈를 중심으로 다양한 액션이 이뤄집니다. 올해는 11월 10일부터 21일까지 제30차 COP가 브라질 벨렘(Belém)에서 개최됐습니다.
하지만, 국가 정상과 협상가들이 오가는 복잡한 논의 구조, 하루에도 수십 개씩 병렬로 진행되는 세션, 전문 용어로 가득한 회의 내용은 많은 사람들에게 COP을 여전히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게 합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COP에 모이는지,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이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번 [GEYK의 COP30 탐방기 in 아마존] 시리즈에서는 기후변화청년단체 GEYK(이하 GEYK)가 COP30 현장에 직접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청년의 시각에서 현장의 분위기와 논의의 핵심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COP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누가 어떤 역할을 하는 자리인지 그리고 왜 이 공간이 기후문제 해결에서 중요한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기후변화청년단체 GEYK】이번 글은 ‘GEYK의 COP30 탐방기 in 아마존’ 시리즈의 마지막 글입니다.
앞선 아홉 편에서 각 의제별 협상 과정과 현장의 분위기를 함께 살펴보았는데, 이번 글에서는 그 흐름을 한 번에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함께 고민해 보려 합니다. 먼저 COP30의 주요 결과를 간략히 정리하고 앞으로 어떤 지점을 유심히 지켜봐야 할지 그리고 청년의 시각에서 COP30을 어떻게 기억할지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협상 결과, 무엇이 남았나?
이번 COP30은 ‘이행의 COP’라는 별칭에 걸맞게 재정·적응·자연·감축 부문에서 이행 로드맵을 정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종합적으로는 약속의 포부에 비해 실행력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가 이루어졌습니다. 왜 이러한 평가가 나오게 됐는지 주요 의제 별 결과를 간략히 짚어보겠습니다.
기후금융의 경우, COP29에서 새 기후재정 목표(NCQG, New Collective Quantified Goal)로 ‘연간 최소 3,000억 달러 공적 재원, 공·사 합산 1조 3천억 달러 동원’이 합의된 바 있습니다. ‘바쿠-벨렘 로드맵’이라는 이름으로 향후 단계와 수단을 정리했지만 선진국 부담 및 민간금융 인정 기준에서 이견이 커 구체적인 숫자·책임 분담까지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한편,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 역사상 처음으로 ‘무역(Trade)’이 공식 결정문에 들어가면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같은 무역 규제와 기후 정책이 본격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한 변화입니다.
적응재정은 2035년까지 현 수준의 3배, 연간 약 1200억달러로 확대한다는 목표가 합의문에 담겼습니다. 다만 최빈국과 시민사회가 요구해 온 ‘2030년까지 3배 확대’ 보다 5년 늦춰졌다는 한계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주변부에 오래 머물던 적응을 기후재정 논의의 중심축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 글로벌 적응 목표(GGA, Global Goal on Adaptation) 지표 59개가 채택되면서 파편화돼 있던 국가별 적응 정책을 정량화해서 점검할 수 있는 공통 기준이 마련됐습니다. 이 지표는 법적 의무나 이행 보고 부담을 부과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고 실제 적용 및 운영 방식은 2026-2027년 ‘벨렘-아디스 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추가 논의할 예정입니다.
자연 의제에서는 열대우림 영구 기금(TFFF, Tropical Forest Forever Facility) 출범이 기후변화 대응과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핵심 성과로 꼽힙니다. 열대우림 보존·복원에 집중하고 기금의 최소 20%를 원주민·지역사회에 환원하며 산림국과 나머지 국가가 동등하게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모델을 지향합니다. 장기적으로는 1250억달러 조성이 목표이지만 기존 1조 3천억달러 목표와의 중복·분산 우려가 존재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은 ‘2030년까지 산림 벌채 중단’이 약속된 바 있고 90개국 이상이 지지했으나 최종 합의문에 산림 벌채 중단 로드맵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마존의 한 가운데에서 열린 회의라는 상징성을 생각하면 실망스러운 결과입니다.
마지막은 화석연료 퇴출 로드맵 합의 실패입니다. COP28에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이라는 문장이 처음 포함된 이후, 이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 반대로 최종 결정문에 ‘감축’이나 ‘퇴출’이라는 표현조차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의장국인 브라질이 COP의 틀 밖에서도 화석연료 전환 로드맵 논의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힌 점은 작은 위안으로 남습니다.
GST-NDC-BTR, 앞으로 무엇을 봐야 할까?
파리협정 발효 10주년을 맞은 지금, 중요한 것은 ‘새로운 약속’을 내놓는 일뿐 아니라 ‘이미 한 약속’이 실제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일입니다. 파리협정에 따른 첫 번째 전 지구적 이행점검(GST, Global Stocktake)은 2023년 COP28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전 세계 기온 상승 예상치는 산업화 이전 대비 약 4℃에서 2.1~2.8℃ 수준으로 하향 조정됐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GST는 현재의 이행 수준이 여전히 1.5℃ 목표와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고 결론지었고, 이에 따라 2025년까지 상향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3.0, 2035 NDC) 제출이 요구됐습니다.
하지만 기고문 ⑤에서 살펴보았듯 2025년 NDC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새롭게 제출된 NDC 3.0 역시 1.5℃ 목표 달성에는 여전히 부족한 수준입니다. 감축 부문에서는 2035년 감축목표가 이전 NDC 대비 얼마나 상향됐는지, 석탄 감축이나 재생에너지 확대와 같은 핵심 정책이 실제로 반영됐는지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너지 전환을 강조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 NDC에 담긴 목표가 국내 에너지·산업 정책과 얼마나 정합적인지 점검해볼 수 있습니다. 적응 부문에서는 기후위기 영향을 줄이기 위한 국가 적응계획의 구체성,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조치가 얼마나 명확히 제시돼 있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것만큼이나, 그 목표가 실제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격년투명성보고서(BTR, Biennial Transparency Report)입니다. BTR은 각국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조치의 이행 상황, 재정·기술 지원 현황 등을 주기적으로 보고하는 제도로, 파리협정의 신뢰성과 이행 점검을 떠받치는 핵심 도구입니다. 파리협정의 공통 투명성 체계(ETF, Enhanced Transparency Framework) 하에서 첫 번째 BTR은 2024년 말까지 제출됐으며, 원칙적으로 각 국가는 2년에 한 번 BTR을 갱신해야 합니다. 계획대로 2026년 말에 두 번째 BTR이 제출된다면, 가장 최신에 제출된 NDC 3.0 경로를 각국이 얼마나 충실히 따라가고 있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GST는 세계가 현재 어디에 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나침반이고, NDC는 각 국가가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약속한 계획서이며, BTR은 그 약속이 실제로 지켜지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보고서입니다. NDC 3.0이 제출된 지금, 청년과 시민사회는 GST가 제시한 과학적 경로와 각국, 특히 우리나라의 NDC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고 그 차이를 줄이기 위한 추가적인 목표 상향이나 정책 수정을 요구해야 합니다. 앞으로 약속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정부와 기업, 국제사회에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 그리고 시민과 청년의 목소리를 어떻게 모아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벨렘 이후, 청년의 자리에서
현장에서 느낀 COP30은 거대한 협상과 수많은 이벤트 사이에서, 청년과 시민사회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 어디서부터 벽이 존재하는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공간이었습니다. 참여를 위한 공식 통로와 세션은 분명 존재했지만, 그 자리에 서기 위해 필요한 언어, 정보, 시간과 비용은 사람마다 크게 달랐습니다. 협상문서를 읽고 발언문을 준비할 수 있을 만큼의 영어 실력 뿐 아니라 파리협정을 기반으로 한 협상 구조에 대한 배경지식,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의장과 여러 세션을 오갈 수 있는 체력, 항공권과 숙소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여유까지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조건 앞에서 청년의 시선에서는 두 감정이 공존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여전히 변화의 속도가 느리고 목표와 현실 간 격차를 보며 답답함과 불안이 쌓이는 감정이 들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각자의 자리에서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며 희망과 책임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복잡한 감정 사이에서도 우리는 무엇보다 기후위기가 혼자 감당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불안과 무기력감은 부족함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따라서 그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이야기로 꺼내 보는 것 그리고 이야기로부터 다음 행동을 찾아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현실적인 기후위기 대응의 시작점일 것입니다.
COP는 길어야 2주에 불과한 회의지만 그 안에서 수많은 협상과 교류가 압축적으로 오갔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각국이 합의한 문장과 숫자 하나하나가 향후 몇 년간의 정책 방향과 예산, 산업 구조를 좌우할 만큼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COP30에서 무엇이 합의됐는지 확인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약속이 이행되고 있는지 지켜보는 일입니다. 이행 과정을 시민과 청년이 관심 있게 지켜보고, 필요할 때에는 비판하고 제안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약속과 현실 간 간극을 조금이라도 더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장면을 더 보고 싶은가 생각해 보았을 때, 야심찬 목표나 새로운 약속뿐 아니라, 결정 과정에 누가 참여하고 있고 그 과정이 얼마나 투명하고 공정한지, 그 변화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끊임없이 물어보고 고민해야 합니다. ‘GEYK의 COP30 탐방기 in 아마존’ 시리즈가 이러한 질문을 각자의 자리에서 좀 더 편하게 꺼낼 수 있는 계기가 됐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