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직 구성원 간의 소통 기피 현상이 기업의 잠재적 위협 요인으로 급부상했다. 과거와 달라진 개개인의 성향, 사회적 분위기 등으로 조직 내 소통이 크게 줄어들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 우려도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통 부재·단절이 현상 만연해질 경우 저연차 직원들의 잦은 이직과 퇴사, 고연차 직원들의 신입 기피 및 경력직 선호 등을 불러일으켜 종국엔 채용비용 증가, 인재육성 차질 등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사원은 관심 없고 팀장은 부담 되고…소통·대화 기피 일상인 요즘 직장인들
몇 해 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와 각종 SNS 중심으로 '급여체'라는 단어가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급여체'는 초·중·고등학생들이 주로 쓰는 말투인 이른바 '급식체(급식을 먹는 사람들이 쓰는 말투)'와 유사한 뜻을 가진 신조어로 월급(급여)를 받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투를 의미한다. 급여체 중에서 가장 유명한 단어는 '넵'이다. 직장 동료나 상사와의 메신저 대화에서 답변을 할 때 주로 쓰이지만 묻거나 따지면 소통이 길어질 것을 감안해 소통을 빨리 끝내려는 의도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넵 병'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직장 내 소통에 대한 부담은 전 세대가 겪고 있는 공통된 문제로 분석된다. 앞서 데이터 컨설팅 기업 피앰아이(PMI)가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간관계 스트레스 인식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40.5%가 최근 3개월 내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자주 느꼈다고 답했다.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대상은 '직장 내 동료 또는 상사'(41.5%)였으며 스트레스 유발 요인으로는 '의사소통 부족'(51.6%)이 가장 많이 지목됐다. 특히 소통 부족으로 인한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론 '인간관계를 최소한만 유지한다'(36.7%)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다만 소통 부담에 대한 이유는 직책이나 직급, 세대에 따라 다른 면모를 보였다. 우선 저연차 직장인의 경우 타인을 불신하는 개인의 성향 때문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연구원이 발표한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청년 세대에서 타인을 믿지 못하는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일반적인 사람들을 믿을 수 있다'는 대인신뢰도는 지난해 기준 19~29세 53.2%, 30~39세 54.7% 등으로 10년 전에 비해 19~29세는 21.5%p 30~39세는 20.0%p 각각 하락했다.
지난해 한 대기업 계열사 취업에 성공한 유정수 씨(29·남)는 "요즘 나를 비롯해 주변 친구들을 봐도 회사나 직장 동료가 나를 책임져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며 "그래서인지 대부분이 영어나 대학원 준비 등 꾸준히 자기 개발을 통한 몸값 키우기를 시도하는 편이다"고 귀띔했다. 이어 "아무래도 신입 시절부터 자기 개발에 몰두하다 보니 일이나 성과에 몰입하거나 회식, 대화 등 직장 동료와의 관계 개선 노력에는 소홀해 질수밖에 없다"며 "수년 전부터 '조용한 퇴직'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지 싶다"고 덧붙였다.
관리자 또는 중간 관리자급의 고연차 직장인의 소통 부담 이유는 저연차 직장인과 사뭇 달랐다. 그들은 직장 선배나 상사에 대한 조롱이 만연한 사회적 분위기를 이유로 꼽았다. 정당한 업무 지시나 조직 규율에 대한 전달만으로도 '꼰대' '빌런' 등으로 치부돼 버리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소통 자체를 꺼리게 된다는 반응이 많았다. 조직이나 사회, 업무 적응 등은 모두 개인에게 보탬이 되는 요소들인데 같은 직원 입장에서 굳이 싫은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도와줄 필요성은 못 느낀다는 설명이다.
한 중견기업 팀장으로 재직 중인 한재석 씨(43·남·가명)는 "요즘 사원들 중엔 업무 관련 내용에 대해 설명 해주려 해도 싫은 티를 내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러다가 괜히 기분 나쁜 소리라도 내면 '꼰대' '빌런' 식으로 매도해버리니 굳이 싫은 소리까지 들어가며 가르쳐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업무나 조직 부적응의 피해는 개인의 몫인데 왜 같은 직원인 내가 피해를 보면서까지 알려줘야 하나"라며 "요즘 몇몇 신입들을 보면 마치 자신의 생각이 모두 옳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한데 보통 그런 친구들을 보면 얼마 못가 회사를 관두는 경우가 많다"고 부연했다.
신입도 팀장도 서로 "못 믿어"…소통부재가 낳은 불신에 제2, 제3의 부작용 가능성
다수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조직 구성원 간 소통 기피 현상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에서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할 사안으로 평가된다. 소통 기피 현상이 만연해질 경우 저연차 직원들의 잦은 이직과 퇴사가 빈번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고 고연차 직원들의 신입 기피 및 경력직 선호 또한 짙어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이들 모두 내부 직원들의 동요, 가능성 있는 인재 발굴 기회 박탈, 기업의 채용·교육비용 증가, 로열티를 갖춘 인재 육성 차질 등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사안들이다.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20~40대 정규직 근로자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중 무려 65%가 '이직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특히 20대 직장인의 경우 이직 고려 비중이 무려 83.2%에 달했다. 이직을 고려하는 이유로는 금전적 보상, 과도한 업무량, 기대보다 낮은 평가, 회사실적 부진, 미래에 대한 불안, 개인적 성장, 직무적성 불일치, 대인관계 어려움 등이 지목됐다. 이 중 기대보다 낮은 평가, 개인적 성장, 대인관계 어려움 등은 모두 소통과 관련 깊은 사안들로 분류된다.
기업과 직장인들의 경력직 직원 선호 기조도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상반기 채용시장 특징과 시사점'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채용공고 가운데 순수 신입직 채용은 2.6%에 불과했다. 반면 경력직만 채용하는 공고 82%, 신입과 경력을 모두 허용하는 공고 15.4% 등이었다. 비슷한 기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됐다. HR테크 기업 원티드랩이 국내 153개 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2026 채용 트렌드 서베이'를 한 결과, 내년 인재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복수 응답)로 '직무 전문 역량'(64.7%)이 꼽혔다. 이어 '팀워크·협업 능력'(37.9%), '조직 기여 의지'(28.1%) 등의 순이었다. 기업 대부분이 소통 능력과 의지, 업무 전문성을 동시에 갖춘 인재를 선호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소통 단절·부재로 인한 저연차 직원들의 입·퇴사 반복, 그로 인한 경력직 선호 현상 심화가 지속될 경우 기업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김계수 세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저연차 직원들이 조직 안에서 성장 경로를 그리지 못하고 조기 이탈하는 구조가 반복되면 기업은 자체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회사 내부에 소속감과 충성도가 높은 인재풀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이는 개별 기업의 문제를 넘어 노동시장의 생산성 저하로 이어져 중장기적으로 국가 경제 전반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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