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 백혈병과 심장병 이겨내고 미술공방 연 15세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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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 백혈병과 심장병 이겨내고 미술공방 연 15세 소녀

이데일리 2025-12-19 13:24:2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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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순용 기자] 급성 백혈병과 심장병으로 서울성모병원에서 5년간 투병한 끝에 미술 활동을 전문적으로 펼칠 수 있는 공방을 부산에 연 청소년이 있다. 영재 피아노 학교 진학을 꿈꾸던 예술적 재능이, ‘솔솔바람’의 돌봄 속에서 미술이라는 또 다른 꽃으로 피어난 결과다. 솔솔바람은 서울성모병원이 중증질환 환아와 가족을 위해 통합 돌봄을 제공하는 소아청소년 완화의료팀이다.

정서윤(15세) 양은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21년 여름, 갑작스러운 고열로 부산의 집 근처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열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고, 혈액검사 결과 백혈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 소아혈액질환이 의심됐다. 결국 서윤 양은 서울성모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받았다.

태어나서 처음 서울에 방문한 날 서윤 양은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코로나19로 면회 제한이 엄격했던 시기라 엄마는 병실 밖에서 애만 태워야 했다. 그때 최선희 솔솔바람 전문간호사가 다가와 엄마에게 아이의 치료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고, 홀로 무균병동 병실에 입원해있는 아이에게는 가족의 사진과 편지를 전달해주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닿을 수 있도록 솔솔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 ‘솔솔바람’이 되어준 것이다.

영재 피아노 학교를 준비하던 서윤 양에게 갑작스러운 병원 생활은 혹독했다. 게다가 고용량 항암제 치료 후 6살 때 진단받았던 발작성 상심실성 빈맥(PSVT)이 악화되어 심장 시술까지 받게 되었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열정은 음악에서 그림으로 피어났다. 힘겨운 조혈모세포이식 과정과 긴 회복기를 거치며 아크릴판 위에 가족, 의료진, 자신과 함께 병동에서 지내는 환아들을 그렸다. 한 번 입원하면 적어도 한두 달은 병원에 있어야 하는 아이들에게 서윤이의 그림은 특별한 선물이었다. 미취학 환아에게는 좋아하는 로봇과 공룡을, 청소년 환아에게는 자신을 닮은 수채화 그림을 선물하곤 해, 병동 아이들의 수액 폴대에는 좋아하는 그림이 하나씩 걸려 있었다.

첫 번째 이식 후 2023년 재발 소식을 들었을 때 서윤 양과 가족들은 크게 낙담했었다. 다시 시작된 입원생활 동안 서윤이는 열만 나지 않으면 늘 다른 병실 친구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 나눠주었다. 지난해 입원 중 맞은 생일날에는 입원한 친구들을 위한 작은 피아노 연주회를 열었다. 병동 휴게실에서 열린 자축 생일 연주회에는 가족들과 의료진이 입장료라며 과자를 들고 찾아와 서로의 투병 생활을 응원했다.

서윤 양은 그렇게 병동 곳곳에 작은 행복을 전했다. 병원 생활에 우울해하며 병실 밖으로 나오기를 꺼려하는 환아나 보호자를 보면 먼저 다가갔다. 그림을 그려 건네며 인사를 시작했고, 마음을 연 아이와 함께 보드게임을 하며 하루를 견디는 힘을 나누기도 했다. 성탄절, 설날, 생일과 같은 특별한 날 병원에서 보내야 하는 아이들과 무균병동 안 축제를 열었고, 환아와 보호자 모두 웃음을 나눌 수 있었다. 입원 생활에서 얻은 경험들을 다른 환아들과 나누고자 웹툰으로 완성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서윤이가 행복 에너지를 나눠줄 수 있었던 힘은 가족의 사랑이었다. 서윤이의 남동생은 어린 나이에 누나를 위해 큰 결심을 했다. 2022년, 체중 30kg도 채 되지 않았던 초등학생 동생이, 5시간에 걸친 조혈모세포 기증을 견뎌냈다. 재발한 2023년 또 한번의 이식은 엄마가 참여했다. 가족의 두 번의 헌신 끝에 서윤이는 건강을 회복하였다.

가족들은 조혈모세포 이식과정에서 생긴 상처를 서로 ‘영광의 상처’라 부른다. 지금도 첫 번째 동생으로부터 이식받은 날은 ‘남매의 날’, 두 번째 엄마로부터 이식받은 날은 ‘모녀의 날’이라 부르며 이야기를 나누고 끈끈한 가족애를 되새긴다고 한다. ‘입원하지 않고 집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가장 특별하다’는 서윤이 엄마는 올해 크리스마스는 부산 집에서 남매의 피아노와 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따뜻한 시간을 보낼 계획이라고 전했다.

투병으로 인해 거의 5년 동안 학교에 다니지 못했지만, 서윤 양은 포기하지 않았다. 입원 중에도 꾸준히 작품을 만들었고, 연주회를 열어 사람들을 초대했다. 내년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고 있으며, 치료 과정에서 만든 작품과 웹툰, 병동에서 그린 작품들은 미술공방에 전시하였다. 앞으로는 자신의 공방에서 다양한 디자인 상품을 만들어, 병동에서 전했던 희망을 세상에 확대 전파할 계획이다.

서윤이 주치의 혈액병원 소아청소년과 조빈 교수는 “오랜 치료 과정 속에서도 예술을 통해 자신과 주변을 위로해 온 서윤이가 이제 자신의 이름을 건 공방을 열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다”며, “앞으로도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건강하게 꿈을 넓혀가길 의료진 모두가 응원하겠다”고 전했다.

솔솔바람 전문간호사 최선희 부장은 “백혈병 치료과정에서는 감염 위험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미술도구가 제한적이지만, 서윤이는 주어진 것만으로도 받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그림을 꾸준히 그려내며 꿈을 향해 흔들림 없이 걸어왔다”며 축하와 응원의 말을 전했다.

매번 치료를 마치고 부산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이 가장 행복했다던 서윤이는 “부산에서는 눈이 거의 안 와요. 그런데 입원 중에 눈이 내릴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몸이 아파도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구나, 그런 순간을 꼭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퇴원 후 병원 시원한 바람만 맞아도 기적 같은 일상으로 느껴졌어요. 앞으로도 그림을 통해 제가 느낀 작은 행복을 전하고 싶어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심장병과 급성백혈병으로 서울성모병원에서 5년간 투병한 청소년이, 그림을 통해 희망을 전하고 싶은 소망으로 미술 활동을 전문적으로 펼칠 수 있는 ‘솔윤공방’을 부산에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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