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김병조 기자] “정치는 신을 부르고, 종교는 권력을 탐한다.”
한국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이 문장은 반복적으로 현실이 됐다. 최근 통일교를 둘러싼 정치권 로비 의혹은 단일 종교 집단의 일탈을 넘어,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정교유착(政敎癒着) 구조를 다시 드러내고 있다. 이는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정치와 종교는 해방 이후 줄곧 긴장과 결합을 반복해 왔다. 헌법은 분리돼 있지만, 현실은 분리되지 않았다.
▲헌법 위의 현실, ‘정교분리’의 이상과 실제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정교분리는 제도적 선언에 머물렀다. 국가 권력이 특정 종교를 국교로 삼지 않는다는 소극적 의미는 지켜졌지만, 정치와 종교가 상호 이용하는 관행은 끊이지 않았다.
정치권은 종교의 조직력, 도덕성, 동원력이 필요했고, 종교는 정치권을 통해 제도적 영향력과 사회적 확장을 도모했다. 이 비공식적 결합이 한국형 정교유착의 본질이다.
▲반공 이데올로기와 결합한 개신교 권력
정교유착의 출발점은 해방 직후 이승만 정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냉전 초기, 반공은 곧 정치적 생존의 언어였다. 이승만 정부는 반공을 국시로 삼았고, 보수 개신교는 이를 신앙의 사명처럼 받아들였다.
이 시기 개신교는 반공주의의 도덕적 정당성을 제공했고, 정치권은 개신교를 핵심 지지 기반으로 대우했다.
그 결과 불교와 천주교는 상대적으로 주변화됐고, 종교 간 불균형은 구조화됐다. 이는 종교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국가 권력이 특정 종교와 정치적 이해를 공유한 전형적 정교유착 사례였다.
▲박정희 정권, ‘유착’보다 ‘관리’의 시대
박정희 정부 시기 정교 관계는 보다 국가 주도적이었다. 종교는 통제와 동원의 대상이었다.
정권은 종교를 체제 안정의 수단으로 활용했고, 정치에 협조적인 종교 지도자와는 유화적 관계를 유지했다. 불교계 정화운동 개입, 관변 종교 행사 확대는 이 시기의 단면이다.
동시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일부 개신교 인권 세력은 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이 시기는 정교유착과 정교저항이 공존한 시기였다.
▲민주화 이후, 선거형 정교유착의 등장
1987년 이후 정교유착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다. 권위주의적 통제는 사라졌지만, 선거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때부터 종교는 ‘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대형 교회, 종교 단체는 후보 초청 강연, 특정 이슈에 대한 집단적 지지 선언, 사실상 선거운동에 가까운 설교를 통해 정치에 개입했다.
정치권 역시 이를 묵인하거나 적극 활용했다. 정교유착은 더 은밀해졌고, 동시에 더 일상화됐다.
▲이명박 정부와 종교 편향 논란
정교유착 논란이 대중적으로 폭발한 시기는 이명박 정부였다. 개신교 신자 대통령, 특정 교회 인맥 중심의 인사 구조, 불교계 소외 논란은 ‘종교 편향 국가’라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사찰 위치 누락 사건, 불교계 대규모 시위는 정교유착이 단순한 인식 문제가 아니라 사회 갈등으로 번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통일교 논란, 정교유착의 또 다른 얼굴
최근 불거진 통일교 정치권 로비 의혹은 한국 정교유착의 새로운 유형을 보여준다. 이는 다수 종교의 대중적 동원이 아니라, 국제 조직, 자금력,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엘리트형 정치 접근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통일교는 오랜 기간 ‘종교·정치·외교’를 결합한 활동을 이어왔다. 문제는 신앙의 자유가 아니라, 종교 단체가 특정 정치 세력과 이해를 공유하며 정책·입법·외교에 영향을 미치려 했는가 여부다. 이 지점에서 종교는 더 이상 신앙 공동체가 아니라 정치 행위자가 된다.
▲왜 정교유착은 반복되는가
한국 사회에서 정교유착이 반복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치의 취약한 정당성, 선거 중심 권력 구조, 종교의 강한 조직 동원력 때문이다.
정치가 종교의 도덕성을 빌리려는 순간, 종교는 권력의 언어를 배우게 된다. 이 상호 의존이 끊어지지 않는 한 정교유착은 형태만 바꿔 계속 등장할 수밖에 없다.
▲종교의 정치 참여와 정교유착의 경계
중요한 것은 모든 종교의 사회적 발언을 정교유착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차이는 분명하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의견 표명은 자유지만, 특정 후보·정당에 대한 조직적 동원은 유착이다. 국가 권력이 종교를 제도적으로 활용하는 순간 헌법 위반이다.
정교유착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다. 통일교 논란은 단지 하나의 종교 단체를 둘러싼 스캔들이 아니다. 이는 한국 정치가 여전히 종교를 권력의 우회로로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종교가 신앙을 넘어 정치 권력이 되려 하는지를 묻는 사건이다.
정교분리는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권력과 신앙 사이의 거리 유지, 그것이 민주주의의 최소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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