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이지영 기자 | 금융지주 계열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잇따라 연임에 성공했다. 이에 보험 손익 축소와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는 환경 속에서, 금융지주들이 급격한 변화를 선택하기 보다 검증된 리더십을 통해 조직 안정과 연속성을 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연말 임기가 만료된 금융지주 계열 보험사 5곳 가운데 KB손해보험(KB손보)·하나생명보험(하나생명)·하나손해보험(하나손보)·신한EZ손해보험(신한EZ손보) 등 4곳의 CEO가 연임됐다. 연임 대상자는 구본욱 KB손보 대표를 비롯해 남궁원 하나생명 대표·배성완 하나손보 대표·강병관 신한EZ손보 대표다.
업계에서는 이번 이사에[ 대해 단기적인 실적 성과보다는 리스크 관리 역량과 사업 구조 개선 성과를 종합적으로 반영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업황 부진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금융지주들이 검증된 CEO 체제를 유지해 전략의 연속성과 경영 안정성을 확보하려 했다는 분석이다.
구본욱 KB손해보험 대표는 리스크 관리 역량을 바탕으로 상품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장기 인(人)보험 중심의 사업 구조 전환을 추진해 왔다. 업황 악화에도 불구 비교적 안정적인 실적 흐름을 유지하며 내부 출신 CEO로서 조직 안착과 경영 연속성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KB금융지주는 지난 16일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대추위)를 열고 구 대표를 1년 연임 후보로 재추천했다. 이로써 구 대표는 금융지주 내 통상적인 '2+1년' 임기 구조에 따라 추가 임기를 확보하게 됐다.
구 대표의 연임 배경으로는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도 실적 변동성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온 점이 꼽힌다. 손해보험업계 전반에서 손해율 상승이 구조적 리스크로 부상한 가운데, 손해율 방어와 수익성 관리 역량이 핵심 판단 요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구 대표는 2015년 KB손보 출범 이후 첫 내부 출신 CEO로, 취임 첫해 창사 이래 최대 순이익을 기록하며 경영 성과를 입증했다. 구 대표 취임 전인 2023년 KB손보의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은 7269억원이었으나, 취임 첫해인 지난해 8358억원으로 증가했다.
KB손보는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7673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했다. 이는 KB금융 비은행 계열사 가운데 순이익 1위를 기록하며 확고한 실적 존재감을 입증한 성과다. 시장에서는 올해 연간 실적 역시 전년 수준을 웃돌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같은 실적 개선은 KB손보의 3분기 누적 투자손익은 340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912억원) 대비 세 배 이상 증가한 영향이 컸다. 수익성이 높은 대체자산 투자 비중을 확대하며 이자수익을 끌어올린 결과다.
업계에서는 향후 1년동안의 경영 성과가 구 대표 체제의 지속 여부를 가늠하는 핵심 기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보장성보험 중심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미래 이익의 핵심 지표인 보험계약마진(CSM) 확보 여건이 녹록지 않은 만큼, 내년 실적 개선 여부가 향후 연임 판단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구 대표는 취임과 함께 ‘회사가치성장률 1위 도전’을 경영 목표로 제시하며 고객 최우선 의사결정, 본업 경쟁력 강화, '디지털 퍼스트(Digital First)' 전략을 3대 축으로 내세웠다. KB손보는 이에 맞춰 디지털 전환을 가속하는 한편 인수·보상·비용 관리 전반의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다. 경영관리와 리스크관리 분야를 두루 거친 구 대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손해율·유지율·사업비율 등 핵심 지표를 개선해 중장기 기업가치 제고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남궁원 하나생명 대표도 연임에 성공했다. 하나생명은 올해 보장성 상품 중심의 포트폴리오 재편과 안정적인 운용 성과를 바탕으로 뚜렷한 실적 개선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월 취임한 남 대표는 2023년까지 적자를 이어오던 하나생명을 취임 직후 별도 기준 연간 124억원 흑자로 전환시켰다. 하나생명은 올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302억원(소급법 적용)으로 지난해 동기 171억원 보다 131억원(76.6%)이 증가했다.
특히 남 대표는 GA 채널에서 보장성 보험 판매를 확대하며 영업 기반을 강화했으며 방카슈랑스 채널에서도 보장성 상품 판매가 늘어나며 성장세를 뒷받침했다. 보장성 보험의 한 축인 제3보험에는 건강보험·암보험·간병보험·어린이보험·상해보험·질병보험 등이 포함된다. 이들 상품은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체제에서 수익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인 보험계약마진(CSM) 확보에 유리한 구조로 평가된다.
배성완 하나손해보험 대표는 금융권의 일부 예측과 달리 연임에 성공했다. 디지털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장기보험을 축으로 영업 구조를 재편하며 체질 개선을 가시화한 점이 이번 결정의 배경으로 꼽힌다.
하나손보는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누적 순손실은 324억원으로, 전년 동기(288억원) 대비 적자 폭이 확대됐다. 다만 별도 기준 누적 순손실은 27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억원 줄며 개선 흐름을 보였다. 다만 지난해 보험업법 시행 세칙 개정에 따른 약 100억원 규모의 기저 효과를 감안하면 실질적인 실적은 개선 국면에 있다는 것이 하나손보 관계자의 전언이다.
중장기 흐름을 놓고 보면 적자폭은 축소됐다. 하나손보는 지난해 연결 기준 순손실 308억원을 기록해 2023년(760억원) 대비 적자 규모를 59.4% 줄였다. 다만 올해 상반기에는 당기순손실이 194억원으로 집계돼 전년 동기(-176억원) 대비 적자 폭이 10.7% 확대됐다. 이에 차별화된 장기보험 상품을 앞세워 안정적인 수익 구조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장기보험이 IFRS17 체계에서는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 확보 측면에서도 전략적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병관 신한EZ손보 대표 역시 올해 그룹 정기 인사에서 3연임에 성공했다. 디지털 손보 업황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도 2022년 취임 이후 신규 사업 기회를 모색하며 중장기 성장 기반을 다져온 점이 이번 인사에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신한EZ손보는 3분기누적 순손실 272억원으로 집계되며 전년 동기 대비 적자폭이 132억원 늘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강 대표가 신한EZ손보의 흑자 전환에 실패한 점을 들어 연임 가능성을 낮게 점쳤으나, 비은행 부문 강화를 추진 중인 신한금융그룹이 급격한 변화보다는 경영 안정과 전략 연속성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강 대표는 취임 이후 신한EZ손보를 '금융과 일상을 연결하는 리스크 관리 플랫폼'으로 정립한다는 구상 아래 디지털 체질 개선을 추진해왔다. 전산 인프라 재정비와 데이터 기반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KT와의 협업을 통해 손해율 관리·보험금 지급·민원 처리 등 핵심 공정의 효율화를 병행했다.
업계에서는 신한금융지주가 강 대표를 재신임한 배경으로 디지털 손해보험 모델 특성상 본격적인 수익 창출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꼽는다. 이달 디지털 플랫폼 고도화를 마무리하면서 내년에는 실적 개선의 전환점을 맞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출범 초기 대규모 투자로 인한 비용 부담은 불가피했지만, 종합 손보사 라이선스를 바탕으로 장기·보장성 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영종 신한라이프 대표는 '2+1년' 임기를 마치고 천상영 신한금융지주 그룹재무부문 담당 부사장에게 대표직을 넘길 예정이다. 천 부사장은 최고경영자후보추천위원회(자경위) 추천을 거쳐 차기 신한라이프 사장 후보로 확정됐다.
당초 업계에서는 이영종 사장의 연임 가능성도 거론됐다. 이영종 대표는 '2+1년' 임기를 부여받은 이후에도 수익성 둔화 국면 속에서 실적 성장세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한지주는 이제는 질적 성장을 본격화할 시점으로 판단하고 CEO 교체를 단행했다. 신한라이프에는 재무·회계 전문가를 전면 배치해 수익 구조를 정교화하고 자본 효율성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천 후보자는 신한금융지주에서 장기간 경영관리와 재무 업무를 담당하며 그룹 사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금융지주 인사는 단기 실적보다 불확실한 시장 환경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해왔는지가 핵심 기준이 되고 있다"며, "외형 성장보다는 손해율·자본건전성·사업 구조 개선 등 질적 지표를 통해 수익성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지가 CEO 평가의 관건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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