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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노조법(제2조 2호)은 사용자를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까지 포함한다.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아닌 원청 사용자와 하청 노조 간에도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된다면 해당 하청 노조의 사용자로 인정하겠다는 의미다.
노동부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실질적 지배력’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최근의 판례를 바탕으로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와 교섭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서울행정법원(2021년 1월) 및 서울고법(2024년 1월) 판결, 지난 7월 현대제철과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서울행정법원 판결이 대표적이다.
법원이 이들 원청을 하청 노조의 실질적 사용자라고 판단하며 제시한 기준은 △교섭요구 의제에 대해 원청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는지 △하청 노동자들의 노무가 원청의 사업 수행에 필수적이고 사업체계에 편입돼 있는지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등을 원청과의 단체교섭으로 결정할 필요성과 타당성이 있는지 등 3가지다.
여기에 △하청 노동자들의 업무가 원청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 △하청 노동자의 근무방식과 원청의 직·간접적 관여 정도 △원청과 하청업체와의 관계 △하청업체의 경제적 독립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3가지 판단 기준과 4가지 고려 요소를 열거식으로 제시한 것이다. 지난 10월 말 백화점·면세점 12곳에 입점한 판매·서비스직 노동자들에 대해 12개사가 실질적 사용자라고 판단한 1심 법원 판결도 같은 맥락이었다.
노동부는 이러한 기준을 더 세분화해 발표할 전망이다. 예컨대 임금과 관련해선 도급비 총액, 단가, 이윤율 등을 원청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거나 원가 구성까지 지정하는 경우엔 사용자성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하청의 임금 재원을 실질적으로 통제한다고 볼 수 있어서다. 한화오션 판결에서도 이러한 구조로 하청 사용자의 임금 지급능력이 구조적으로 제약된다는 점이 인정됐다.
비임금 부문에선 안전 설비 기준, 필수 투입 인력, 작업 속도 및 패턴 강요, 원청 교육 의무화가 기준이 될 수 있다. 노동 안전과 같은 중요한 근로조건을 원청 사용자가 결정한다고 판단할 수 있어서다. 이는 현대제철 판결에서 필수 대형설비 관리처분권을 인정하며 내세운 기준이기도 하다.
노동부가 원청 사용자-하청 노동조합 유형별로도 판단 기준을 구체화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원청 핵심 사업 연계 하청(사내하청) △원청 상시 필요업무 위탁(시설관리형 하청) △모회사-자회사 관계(그룹사 지배) △공공부문 민간위탁 관계(다층적 통제) 등의 형태로 나누고, 유형별 특성에 맞는 기준을 구체화하는 식이다.
한화오션과 현대제철 판결은 사내하청 유형으로, 백화점·면세점 판결은 일부 시설관리형 하청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룹사 지배형의 경우 노동부가 어떠한 기준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국내 그룹사에 미칠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개정 노조법상 사용자성 판단과 파견법상 불법파견 기준을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두 기준이 유사할 경우 노조법상 사용자는 불법파견 사용자가 돼 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할 수도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교섭 책임은 고용 책임보다 더 낮은 문턱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연심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노조법상 사용자는 파견법상 사용자보다 범위가 넓어야 한다”고 했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하청 노동자의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판단할 때 ‘간접적’ 지배력도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도급계약서, 과업지시서, 업무매뉴얼 등을 포괄해 직접고용 책임을 묻는 불법파견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사용자성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다.
한편 노동부는 ‘교섭창구 단일화’ 및 ‘분리교섭’ 관련한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을 놓고 보완 입법 작업에 나섰다. 특히 분리교섭과 관련해 노사 의견을 더 담는다는 방침이다. 보완 입법 후 시행령 설명서를 추가로 내놓을 예정이다.
노동부는 현행 노조법상 개별 사업장 내 노조가 여럿이면 교섭창구 단일화가 원칙인 점을 근거로, 하청노조 역시 원청노조와 교섭대표노조를 구성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원·하청노조가 창구 단일화를 원하지 않으면 분리교섭을 원칙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하청노조가 복수일 경우 하청노조 간 교섭창구를 통합(단일화)할지, 분리할지를 노동위원회가 판단하도록 했다. 이를 두고 노동계에선 하청노조의 원청 대상 교섭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비판이, 경영계에선 무분별한 교섭으로 산업현장이 혼란에 빠질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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