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공장의 해외 이전을 결정한 후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시기를 노동쟁위 포함 기준으로 삼거나 구조조정 가능성이 크더라도 영향이 직접적이지 않을 경우 노동쟁위에 포함하지 않는 방안 등이 가이드라인에 담길 수도 있다.
그간 판례로 인정하지 않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의 결정’도 노동쟁의 대상으로 본다는 개정 노조법에 따라 회사가 구조조정을 단행하면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단체교섭이 가능해지고 교섭이 결렬되면 파업 등 쟁의행위에 나설 길도 열리지만, 노동쟁의와 관련한 판례는 없어 정부가 노동쟁의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할지 노사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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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 인정 안해 온 ‘경영상 결정’ 교섭·쟁의 가능
내년 3월 10일 시행되는 개정 노조법 내용 중 고용노동부가 다음 주 발표하는 가이드라인은 ‘사용자’ 판단과 ‘노동쟁의’ 범위 기준이다.
현행 노조법 제2조 5호는 노동쟁의를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임금, 근로시간, 복지 등 근로조건에 대해서만 교섭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개정 노조법엔 여기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라는 조문이 새로 들어갔다. 이로써 앞으로는 그간 판례상 교섭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은 정리해고나 구조조정 결정도 교섭 대상이 된다. 국회를 통과한 개정 노조법 ‘제안 이유’를 보면 “현행법은 노동쟁의 대상으로 ‘근로조건의 결정’으로만 비좁게 한정하고 있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정리해고나 구조조정 등에 대해선 쟁의행위를 할 수 없게 되는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때 좁은 쟁의행위 범위만을 인정하고 있음”이라고 적시됐다. 구조조정을 노동쟁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점을 개정 노조법 취지 중 하나로 삼은 것이다.
문제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은 구조조정뿐 아니라 사업의 인수·합병·양도, 휴폐업, 사업 축소, 경영진 임면, 업무 외주화·용역화, 사업장 이전 등 이른바 ‘경영권’에 따른 결정까지 포함한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노동부가 개정 노조법 시행 전 노동쟁의 범위와 관련한 기준을 정부 지침으로 발표하는 것은, 모든 경영상 결정에 교섭권을 부여하면 산업 현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간접영향’도 노동쟁의 포함할까
노동법 학자와 노동부 설명을 종합하면, 사업 경영상 결정과 관련한 노동쟁의 기준의 핵심은 구조조정 여부가 될 전망이다. 특히 ‘당장’ 구조조정에 나서는 경우 노동쟁의 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는 데 노동법 학자들 사이에선 이견이 없다. 사업 축소, 업무 외주화, 사업장 이전 자체가 아닌, 이러한 결정에 따른 구조조정이 곧 수반된다면 교섭권을 허용해야 한다는 게 개정 노조법 취지와도 맞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가 지금은 구조조정 계획이 없다지만 ‘훗날’ 구조조정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도 노동쟁의 범위로 봐야 할 것인지 노동부 판단은 베일에 싸여 있다.
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 현장에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노동부의 판단에 노동계와 경영계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의 의견 역시 여러 갈래로 엇갈린다.
민주노총법률원 변호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여연심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장기적으로 인위적 구조조정 가능성이 높더라도 ‘간접적’ 영향을 미친다면 노동쟁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폐업에 대해서도 “국내에 들어온 해외 기업이 폐업하고 해외로 나가는 경우가 또 다른 쟁점”이라며 “폐업 시 쟁의 대상이 사라지는데 폐업 자체가 노동쟁의에 해당하느냐 문제가 있다”고 했다.
구조조정으로 직결되는 문제가 아니더라도 현행법에서도 인정하는 임금 등 근로조건이 악화할 수 있는 경우도 교섭 대상으로 인정할지도 관심사다. 사업 축소, 사업장 이전과 같은 경영상 결정으로 임금 축소가 예상되는 경우다. 노동계는 범위를 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반면, 경영계는 경영상 결정은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노동부 지침에 따라 노사 반발이 뒤따를 수 있다.
노동쟁의 범위로 인정하는 것과 쟁의행위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별개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쟁의 개념이 확대되면서 쟁의행위가 남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지만, 노동쟁의 대상이 된다는 것과 쟁의행위 목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동일선상 문제로 보긴 어렵다”고 했다. 노동쟁의는 ‘노사 간 주장의 불일치’, 즉 분쟁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교섭 테이블에 올릴 의제와 관련한 문제인 반면, 파업과 같은 쟁의행위를 벌일 수 있는지는 노동위원회에서 별도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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