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가 일상화되면서 직장인들의 점심 풍경도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국밥·백반처럼 전통적인 점심 메뉴가 1만원을 넘어서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햄버거·피자·편의점 도시락 등이 다시 '가성비 점심'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물가 상승 압력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운 만큼 이러한 소비 패턴 변화는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7월 NHN페이코는 자사의 모바일 식권 서비스로 발생한 약 900만건의 결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평균 지출 식비가 가장 높은 지역은 삼성동(1만5000원)으로 프리미엄 외식 브랜드와 국내외 대기업 본사가 밀집된 상권 특성이 반영됐다.
이어 ▲강남(1만4000원) ▲여의도·서초(각 1만3000원) ▲마곡·판교(각 1만2000원) ▲송파·종로(각 1만1000원) ▲가산·구로(각 1만원) ▲강동·동대문(각 9000원) 순으로 집계됐다. 12곳의 주요 업무 권역 평균 지출 식비는 1만1583원으로 전체 평균인 9500원보다 2000원가량 높다.
전반적인 외식 물가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올해 서울 기준 외식 인기 메뉴 9종 평균 가격은 1만2501원으로 지난 2021년 9586원 대비 25.7% 상승했다. 특히 대표적인 서민 음식으로 꼽히는 김밥 가격은 2712원에서 3615원으로 33.3% 올랐으며 칼국수 역시 7426원에서 9657원으로 29.4% 올랐다. 이처럼 외식 물가가 치솟자 패스트푸드의 저렴한 가격이 직장인들을 사로잡았다.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 국밥과 탕류 가격도 예외는 아니다. 일례로 논현역 인근에 위치한 한 국밥집에서는 뼈해장국 1만1000원, 갈비탕 1만8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반면 맥도날드 빅맥세트는 74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단품 가격은 5400원, 맥런치 시간대에는 세트 기준으로 63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최근에는 지하철 역사 내에서 판매되는 초저가 피자도 직장인 점심 메뉴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피자 중 가장 저렴한 메뉴가 1500원, 가장 비싼 메뉴가 3500원이다. 가장 비싼 3500원짜리 피자 한 조각에 음료까지 포함해도 5000원이다. 점심시간이면 저렴한 가격으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려는 직장인들로 매장 앞이 가득하다. 최근에는 사당·잠실·여의도·수서·강남역 직장인이 많은 지역으로 매장도 늘려가고 있다.
직장인 김규림 씨(29·여)는 "월급에 식비 명목으로 20만 원이 포함돼 나오지만, 요즘 외식 물가를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며 "1만 원 안에서 먹을 수 있는 점심 메뉴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점심을 아예 안 먹을 수는 없으니 햄버거나 피자처럼 비교적 저렴한 메뉴를 찾게 된다"며 "주거비나 교통비는 줄이기 어려운 만큼 그나마 조절할 수 있는 점심값이라도 아끼려는 직장인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상호 씨(50·남)는 "예전에는 외근 때 급하게 끼니를 해결하려고 패스트푸드나 지하철 역사 내 음식을 먹었지만 요즘에는 다른 메뉴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점심으로 자주 찾게 된다"며 "많을 때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먹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햄버거나 피자뿐 아니라 편의점 도시락이나 라면, 김밥 전문점을 이용하는 횟수도 예전보다 확실히 늘었다"며 "특히 청년층은 임금이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해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이런 선택을 더 많이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직장인들 사이에서 저렴한 외식메뉴를 찾는 이유에는 외식비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5일 국가데이터처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9세 미만 가구주 가구(2030세대) 평균 소비지출은 2898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23년에 비해 25만원 감소한 수치다. 소비지출이 줄어든 것은 코로나19 여파가 컸던 2020년 이후 4년 만이며 같은 기간 다른 연령대의 소비지출이 모두 늘어난 것과 대비된다.
전체 소비는 줄어들었지만 식료품과 주거비 지출은 981만원, 448만원으로 각각 23만원, 21만원 증가했다. 식료품과 주거비 지출 비중은 전체 소비지출에서 49.3%를 차지했다. 식료품과 주거비가 전체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9.3%로 전년보다 1.9%포인트 상승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6년 이후 최고치다.
전문가들은 고물가 장기화로 직장인들의 점심 소비가 가격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홍주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물가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직장인들의 실질적인 소비 여력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며 "일반적인 백반이나 국밥보다 상대적으로 가성비가 좋다고 인식되는 패스트푸드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수요가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분간 물가 상승 기조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가성비를 중시하는 직장인들의 식사 패턴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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