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식탁에서 초록색 파도의 역습이 시작된 이유가 뭘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식당의 구색 맞추기용 채소나 한국 영화 제목 정도로만 인식됐던 미나리(일본어 명칭은 세리)가 일본 열도의 대형마트와 신선 식품 매장을 점령하며 하나의 식문화로 안착한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17일 부산 기장군 철마면의 한 미나리꽝에서 농민이 겨울철 입맛을 돋우는 미나리를 수확하고 있다. / 뉴스1
일본 농림수산성 통계와 주요 유통 매체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산 미나리의 수입량과 일본 현지 재배 미나리의 소비량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일본 현지 매체들이 분석하는 이 열풍의 중심에는 일본인들의 건강 지향적 식습관 변화와 한국 드라마 및 예능을 통해 노출된 ‘삼겹살과 미나리’라는 필승의 조합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식품 트렌드 분석을 통해 한국식 미나리 소비 방식이 일본 젊은 층 사이에서 ‘디톡스 식단’의 대명사가 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과거 일본에서 미나리는 정월에 먹는 일곱 가지 나물인 ‘나나쿠사가유’나 나베 요리의 부재료로 소량 사용되는 정도였으나, 지금은 한국식으로 불판 위에서 고기 기름에 구워 먹거나 생으로 무쳐 먹는 방식이 주류가 됐다.
특히 일본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이온(AEON)과 라이프(LIFE) 등은 한국산 미나리 전용 코너를 신설하고 조리법 안내 책자를 배포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도쿄 시내의 주요 한식 식당가인 신오쿠보뿐만 아니라 일반 이자카야에서도 ‘미나리 삼겹살’과 ‘미나리 전’을 계절 한정 메뉴가 아닌 상설 메뉴로 올리는 곳이 급증했다.
17일 부산 기장군 철마면의 한 미나리꽝에서 농민이 겨울철 입맛을 돋우는 미나리를 수확하고 있다. / 뉴스1
일본 여성 잡지들과 건강 전문 매체들은 한국 미나리가 가진 해독 작용과 특유의 향이 주는 청량감에 주목해 왔다. 한국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미나리를 산처럼 쌓아놓고 고기를 먹는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확산하면서 일본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미나리가 ‘지방 흡수를 억제하고 몸을 정화해 주는 채소’라는 인식이 강력하게 형성됐다.
이에 따라 일본 신선 식품 시장에서 미나리는 일시적인 붐을 지나 필수 식재료로 격상됐다. 자연스럽게 일본 국내 농가들조차 한국의 육성 방식을 도입해 줄기가 굵고 향이 강한 ‘한국형 미나리’ 재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 매체들은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한류의 영향을 넘어 일본인의 입맛과 건강에 대한 기준이 한국식 식문화와 맞물리며 나타난 구조적인 변화라고 말한다.
미나리 열풍은 외식업계를 넘어 가정 내 간편식 시장까지 침투해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레시피 공유 사이트인 쿠쿠패드에는 한국식 미나리 무침과 미나리 김치 레시피가 수천 건 이상 업로드됐으며, 관련 양념장 매출도 동반 상승했다.
일본의 유통 전문지들은 한국산 미나리가 일본의 기존 품종보다 향이 진하고 식감이 아삭하다는 점이 까다로운 일본 소비자들의 취향을 저격했다고 분석해 왔다. 한류 콘텐츠가 심어준 ‘강렬한 이미지’와 실제 식재료의 ‘뛰어난 품질’이 결합해 현재 일본에서 미나리는 가장 트렌디하면서도 실질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대표적인 K-푸드로 완벽히 자리를 잡았다.
미나리 삼겹살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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