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법] 대통령실 생중계 국정…파놉티콘의 역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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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문법] 대통령실 생중계 국정…파놉티콘의 역설법

투데이신문 2025-12-18 15:32:56 신고

3줄요약

정치, 겉보다 중요한 건 작동 방식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고유한 ‘문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의 언어, 권력의 계산, 대중의 심리, 미디어 전략과 정치 언어 등이 어떤 타이밍에 움직이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는지는 단순한 논쟁 너머의 작동 규칙을 따른다.

〈정치문법〉은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와 정국 전개를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정치 구조, 전략, 심리, 제도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정치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의 문법부터 파악하라.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식품의약품안전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br>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식품의약품안전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애경 발행인】 이재명 정부가 연일 야당의 질타를 받으면서도 국무회의·업무보고를 생중계로 밀어붙이자,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스스로 감시의 대상이 되겠다는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파놉티콘(권력의 응시)’을 꺼내 들며, 성남시장 시절 집무실 CCTV 설치 경험을 ‘자기 감시’의 기원처럼 연결했다.

정치의 관점에서 흥미로운 건, 이 선택이 단지 ‘투명성 강화’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중계는 곧바로 칭찬과 조롱, 설득과 공격이 동시에 작동하는 공간으로 변한다. 공개라는 기술(記述)이 권력과 야당의 언어를 더 날카롭게 만드는 역설이 된다.

감시의 역설

파놉티콘은 중앙의 감시자가 외곽의 수용자를 보이지 않게 감시해 수감자가 항상 감시받는 느낌을 갖게 하는 구조이다. 어원은 그리스어 ‘pan(모두)’과 ‘opticon(본다)’의 합성어로,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눈에 파악’하는 능력을 뜻한다. 이 구조는 수감자가 규율과 감시를 내면화해 스스로를 감시하게 만든다는 점이 핵심이다.

다시 말해, 파놉티콘은 권력이 설계하고 약자가 노출되는 구조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그 구조를 뒤집어 “권력이 약자의 자리에 선다”는 도식을 제시한다. ‘감시받는 권력’을 통해 신뢰를 확보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다.

강 대변인이 성남시장 시절 CCTV 사례를 꺼내들은 건, 생중계를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일관된 통치 스타일’로 어필하기 위해서다. “처음부터 감시받는 권력을 지향해 왔다”는 서사가 만들어지면, 실수·노출·정제되지 않은 장면 등 생중계의 위험은 오히려 ‘진정성의 증거’가 된다.

하지만 그 CCTV 서사 자체도 정치적 논쟁의 소재였다. 실제로 성남시장 시절 당시 CCTV 설치·운영을 두고 “부패·청탁 차단 목적”이라는 설명과 “가동이 제한적이었다”는 보도가 엇갈린 적이 있다. 정치에서 ‘상징’은 사실관계만큼이나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그럼에도 ‘감시의 역설’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권력은 원래 숨을 곳이 많지만, 숨지 않겠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통치의 문법이 바뀐다. 사소한 표정 하나까지 정책의 근거처럼 해석되는 시대에, 권력은 스스로를 카메라에 올려놓는 방식으로 정당성을 설계한다.

결국 생중계는 “국민이 판단해 달라”는 도전에 가깝다. 그 도전이 성공하려면 ‘보여준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설명하고 수정하는 능력’이 따라붙어야 한다. 감시를 자처한 권력은 그 감시의 결과에 대해서도 응답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6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식품의약품안전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br>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6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식품의약품안전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레시피 정치

대통령실이 붙인 또 하나의 이름은 ‘과정 중심 행정’이다. 업무보고를 성과 발표회가 아니라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즉 ‘레시피’를 공개하는 자리로 재정의한다. 결과보다 과정을 먼저 공개해 정당성을 선점하려는 의도다.

정치적으로 ‘레시피 공개’는 강력하다. 야당이 “투명하지 않다”고 공격할 여지를 줄이고, 정부는 “우리는 투명하다”는 브랜드를 얻게 된다. 하지만 레시피를 공개한다고 요리가 완성되지 않는다. 생중계 장면이 “대통령의 즉흥 지시”로 소비될 경우, 정책은 예산·법령·현장 등 ’절차의 언어’로 번역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된다. 공개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후속 조치’의 품질이 정부 성패를 가른다.

또 하나의 함정은 ‘준비된 사람만 살아남는 장면’이다. 생중계는 실무자에게도 평가의 조명을 비춘다. 준비가 단단한 답변은 박수를 받지만, 준비가 부족한 답변은 즉시 조롱의 밈(Internet meme)이 된다.

그래서 레시피 정치는 본질적으로 이중게임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지만, 동시에 공직사회엔 ‘실수 금지’라는 압박이 생긴다. 과정 중심을 말하려면, 실수의 낙인을 줄이는 정치적 책임이 함께 따라야 한다.

야당의 공격

야당이 겨누는 핵심은 정책이 아니라 형식이다. 국민의힘은 생중계를 ‘보여주기식’으로 규정하고, 공개 질책 장면을 ‘잡도리 쇼’라는 언어로 낙인찍었다. 생중계를 ‘국정 장치’가 아니라 ‘연출’로 만들겠다는 공격이다.

야당의 문법은 간단하다. 첫째, 생중계 장면을 공격하면 내용 토론을 피할 수 있다. 둘째, 대통령의 말투·표정·질문 방식을 ‘품격’의 잣대로 재단하면 통치 정당성 자체를 흔들 수 있다. 셋째, 생중계가 재미있을수록 ‘쇼’ 프레임은 더 잘 먹힌다.

반대로 여권이 얻는 건 ‘직접 소통’이라는 우위다. 생중계는 기자회견보다 통제가 약하고, 문장보다 표정이 먼저 전달된다. 대통령실이 “가장 많이 감시받는 건 대통령”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그 위험을 ‘진정성’으로 환치하기 위한 장치다.

여기서 생기는 역설이 있다. 생중계를 할수록 정쟁도 같이 생중계된다. 공개가 많아질수록 ‘정치적 편집’의 재료가 늘어난다. 투명성의 확장과 프레임 전쟁의 확장은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정치문법의 관점에서 보면, 이번 생중계는 “성과를 말하겠다”가 아니라 “작동 방식을 보여주겠다”는 대통령실의 선언이다. 반면 야당은 “작동 방식이 아니라 연출 방식이 문제”라며 같은 장면을 두고, 서로 다른 언어가 충돌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6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국가유산청)·국민권익위원회 업무보고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br>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6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국가유산청)·국민권익위원회 업무보고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쇼’가 아니라 ‘제도’

생중계로 인한 가장 현실적인 변화는 공직사회다. 관가에서 “국감보다 부담스럽다”는 말이 나온다는 보도에서 유추해보듯 생중계가 내부 점검을 ‘대국민 평가’로 바꿔버렸다는 뜻이다. 준비되지 않은 조직은 방어적으로 경직되고, 방어적인 조직은 혁신 대신 무난함을 선택한다.

대통령에게도 비용이 있다. 생중계는 대통령의 리스크를 줄이지 않고 늘린다. 실수 가능성, 오해 가능성, 과잉 해석 가능성이 한꺼번에 따라붙는다. 그럼에도 공개를 택했다면, 그 다음 단계는 ‘장면의 정치’를 ‘정책의 정치’로 환류시키는 기술이다.

논란이 커지는 지점은 ‘공개 질타’다. 특히 인천국제공항공사 업무보고를 둘러싼 공방은, 공개 비판이 ‘책임 행정’인지 ‘망신주기’인지를 두고 여론이 갈라지는 대표 장면이 됐다. 일부 보도에서는 대통령이 기관장을 겨냥해 강한 표현으로 재차 비판한 내용도 전해졌다.

대통령실이 이 과정에서 경계한 것이 이른바 ‘탄압 서사’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18일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입지를 위해 탄압의 서사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경계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는 생중계를 ‘탄압’ 프레임으로 역이용해 반권력 서사를 만들려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공개 비판이 쌓일수록 ‘피해자 프레임’이 더 빠르게 조립될 수 있다.

결국 생중계 국정의 성패는 한 가지로 귀결된다. 공개가 ‘신뢰의 축적’이 되려면, 방송 이후 행정이 방송보다 더 성실해야 한다. 질문·질타의 장면이 아니라, 후속 조치·수정·책임의 기록이 쌓일 때 비로소 생중계는 쇼가 아니라 ‘제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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