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우리나라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재사용발사체’ 개발에 나선다. 우주항공청은 지난 12일 열린 내년도 업무보고에서 기존 차세대 발사체 개발 사업을 재사용발사체 개발로 전환하고, 내년부터 예비설계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내 기술로 스페이스X의 팰컨9과 같은 재사용발사체를 개발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세계는 이미 ‘팰컨9 방식’으로 가고 있다
재사용발사체 기술은 스페이스X 팰컨9이 사실상 세계 표준을 만들었다. 팰컨9은 분리된 로켓 1단의 엔진을 다시 점화해 속도를 줄이고 지상 또는 해상 바지선에 수직으로 세워 착륙시키는 방식이다. 별도의 날개나 큰 회수용 모듈을 붙이지 않고, 기존 엔진을 재점화해 감속과 착륙을 동시에 해결하는 구조다.
팰컨9 이전에는 러시아의 ‘바이칼(Baikal)’, 인도의 기술실증용 재사용발사체(Reusable Launch Vehicle-Technology Demonstrator, RLVT), 유럽의 ‘애드라인(Adeline)’ 등 다양한 재사용 방식이 개발됐다. 이들 중에는 엔진 모듈만 분리해 회수하거나, 날개를 펴 활공하는 방식도 포함됐다. 이후 실제 개발과 운용 단계에 들어가면서 대부분 팰컨9과 같은 수직 이착륙 방식으로 자리잡는 추세다. 박순영 우주항공청 재사용발사체프로그램장은 이 같은 흐름에 따라 한국도 같은 방식을 택했다고 밝혔다.
현재 팰컨9 방식과 같은 재사용발사체는 미국 블루오리진의 뉴글렌(New Glenn)과 중국 랜드스페이스의 주취-3(ZQ-3)이 꼽힌다. 이 중 뉴글렌은 올해 1월, 1차 발사에서 바지선 착륙에 실패했지만, 지난달 13일, 2차 발사에서 나사의 쌍둥이 화성 탐사선 에스커페이드(ESCAPADE)를 목표 궤도에 투입한 데 이어, 1단 로켓도 대서양의 해상 바지선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해 궤도급 로켓을 수직 착륙시킨 세계 두 번째 민간사업자가 됐다.
랜드스페이스의 주취-3은 지난 3일 내몽골 알샤 인근 시험장에서 처음 발사돼 예정대로 궤도에는 진입했지만, 발사 시 추진력을 제공하는 1단 추진체가 착륙 지점으로 제대로 복귀하지 못하고 추락했다. 랜드스페이스 측은 “착륙 단계에서 1단 엔진이 점화된 후 이상 현상이 발생해 지정된 회수 패드에 연착륙할 수 없었다”면서 “향후 임무에서 재사용 발사체 기술의 검증 및 적용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누리호 발사체 90%에,재사용 기술 10% 더한 구조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가 팰컨9과 같은 재사용발사체를 개발하는 것이 가능한 목표인지가 쟁점이다. 이에 대해 박 프로그램장은 재사용 발사체는 (누리호와 같은) 소모성 발사체와 완전히 다른 발사체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재사용 발사체는 소모성 발사체 90%에 재사용 기술 10%를 더한 것”이라며 “형상도 거의 같고, 엔진도 추력 조절이나 재점화 기능 등 차이는 있지만 방식 자체는 같다”고 설명했다. 즉 기본 구조와 핵심기술 대부분은 기존 발사체와 공유하고, 일부 기능만 추가로 개발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누리호 4차 발사 성공을 통해 재사용 발사체 개발에 필요한 기술의 약 90%를 확보한 상태다. 박 프로그램장에 따르면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다단 발사체 설계, 대형 엔진 제작과 시험, 추진제 탱크 제작, 구조·단열 기술, 발사장과 시험 설비 등 로켓 발사에 필요한 핵심 요소를 이미 검증했다. 그는 “누리호 4차 발사가 성공했다는 것은 엔진 기술, 탱크 제작 기술, 단열 기술, 추진제 기술, 발사장과 시험 설비까지 이미 갖췄다는 의미”라며 “이 기반에서 재사용 발사체 개발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차세대 발사체는 누리호의 단순한 연장이 아니다. 더 큰 추력과 더 많은 엔진, 한층 강화된 경량화가 요구된다. 박 프로그램장은 “차세대 발사체는 누리호보다 훨씬 커지고, 엔진 수도 기존 4기에서 9기로 늘어나는 등 도전 과제가 분명히 있다”며 “현재 발사체 기술의 80~90%는 확보한 상태지만, 여기에 10~15% 정도의 추가 개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같은 기술을 확보하고 시행착오를 거쳐 추가 기술을 축적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재사용 발사체 개발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박 프로그램장에 따르면 추가 10% 기술은 재사용을 위한 것들이다. 여기에는 발사체가 착륙하는 과정에서 추력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엔진 추력 조절 기술, 엔진을 다시 켜는 재점화 기술, 하강하는 동안 발사체를 수직으로 세우기 위한 정밀 유도·자세 제어 기술과 그리드핀 등 공력 제어 기술, 착륙 장치 전개 기술, 그리고 전체 구조를 가볍게 만드는 경량화 기술 등이 포함된다.
◇ 10회 재사용 목표… 2035년 재사용 발사 노린다
특히 경제성이 중요한 재사용 발사체의 핵심 지표는 몇 번까지 다시 쓸 수 있느냐다. 스페이스X는 팰컨9을 설계할 당시 10회 재사용을 목표로 했다. 이후 발사 횟수와 경험이 늘면서 최근에는 30회까지 재사용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또한 유럽과 다른 후발 주자들은 대략 20회를 목표 수명으로 잡는 분위기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출발선을 현실적으로 설정했다. 박 프로그램장은 “이제 막 출발하는 단계인 만큼 초기 목표 수명은 10회 정도로 보고 있다”며 “기술이 축적되면 재사용 횟수를 늘릴 수 있고, 발사 수요의 성장 추이를 보면서 운용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재사용 수명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세대 발사체 발사 일정도 윤곽이 잡혔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차세대 발사체는 국가 주력 발사체로서 달 탐사 임무를 우선 수행할 예정이다. 2030년대 초반 달 궤도선과 착륙선을 발사하는 역할을 맡게 되는 만큼, 초기 단계에서는 ‘재사용’보다는 ‘달 탐사 임무 수행’이 우선된다. 박 프로그램장은 “차세대 발사체 사업을 통해 재사용 운용이 가능한 발사체를 확보하고, 그 과정에서 핵심 기술을 연구·개발하겠지만, 첫 번째 임무는 달 탐사”라며 “2032년까지는 재사용 발사체 개발을 진행하되 이 시점까지 착륙 시도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사용 비행과 착륙 시험은 이후 단계에서 본격화될 예정이다. 박 프로그램장에 따르면 2033년부터 차세대 발사체가 지구 저궤도 임무를 수행하면서 재사용 비행을 시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우선 1단 로켓을 재점화해 자세 제어 성능을 확인한 뒤, 해상에 낙하시키는 방식으로 시험을 진행한다. 이어 2034년에는 해상 바지선을 활용한 착륙 시험에 나서고, 2035년에는 착륙 이후 재발사까지 시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같은 일정이 다소 늦어 보일 수 있지만, 박 프로그램장은 한국이 후발 주자라는 점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페이스X는 참고할 선례가 없는 상태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느라 여덟 차례 실패한 뒤 아홉 번째에 성공했다”며 “우리는 세컨드 무버로서 블루오리진과 중국 랜드스페이스, 유럽 등 다양한 사례를 참고할 수 있는 만큼, 일정을 일부 앞당길 여지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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