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지방에 영업소를 설치하면서 B로 하여금 지방 영업소에 기간제 근로자로 근무하게 했다. A는 위 지방 영업소를 폐점하기로 하면서 B의 근로계약기간이 끝나면 더 이상 연장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기로 하고, 이러한 내용을 B에게 통보하는 과정에서 B의 동의 없이 대화내용을 녹음했다. 이후 B와 법적 분쟁이 발생하자 A는 위 대화내용을 증거로 제출했다. B는 A가 불법적으로 대화 내용을 녹음해 자신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A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사안에서 B의 청구는 인용될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자기 의사에 반해 함부로 녹음, 재생, 녹취, 복제, 방송, 배포 등이 되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이러한 음성권은 헌법 제10조 제1문에 의해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는 인격권에 속하는 권리다. 따라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그의 음성을 녹음하거나, 녹음한 음성을 방송, 배포하는 등의 행위는 원칙적으로 음성권에 대한 침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민사소송에서 대화 상대방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했더라도 그 녹음한 파일이나 녹취록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실체적 진실 보존 또는 자기 방어를 위해 상대방 대화의 녹음이 필요한 경우가 있음을 고려하면, 상대방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러한 녹음행위가 음성권을 위법하게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상대방의 명시적인 반대 의사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기망 또는 협박해 녹음을 하는 등 침해방법이 부당한 경우, 또는 녹음행위 자체는 부당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녹음한 음성을 상대방의 동의 없이 방송, 배포하는 등의 경우에는 이로 인해 달성하려는 이익의 내용과 필요성, 상대방이 입게 되는 피해의 성질과 정도 등에 비춰 위법성이 인정되면 불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위 사례의 녹음 행위는 A가 B에게 영업소 폐점에 관한 입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B가 명시적으로 녹음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B를 기망 또는 협박해 녹음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A는 위 녹음행위를 통해 영업소 폐점에 관한 B의 반응을 확인해 둠으로써 분쟁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위 대화 내용은 근로계약 기간의 종료를 통지하면서 갱신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리는 취지에 불과하고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관한 것이 아니므로 B가 입게 되는 피해의 정도가 크다고 볼 수 없다. A는 녹음파일을 법적 분쟁과 관련해 노동위원회나 법원에 제출했을 뿐, 다른 목적으로 방송, 배포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녹음파일 등의 제출로 인해 B가 입을 수 있는 피해의 정도는 수인할 수 있는 범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대법원(2025년 10월16일 선고 2025다204730 판결)은 이러한 이유로 B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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