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개인예산 ‘방치’
초고령사회, 기대수명은 늘었지만 건강수명과의 격차가 18년 이상 벌어지면서 복지정책의 성패가 곧 국민 삶의 질을 결정짓는 시대가 됐다. 이에 정부는 매년 예산을 늘려 다양한 사업을 내놓고 있지만 성과는 극명하게 갈린다. 일부는 제도화 단계에 진입했지만 다수는 목표 부재, 부처 조정 실패, 평가체계 미비, 예산 축소로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것. 헬스경향은 ‘2025년 보건복지 시범사업 총결산’을 통해 복지정책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실패사업
▲일차의료기관 만성질환관리사업=우리나라 주요 사망원인질환인 만성질환은 일차의료기관에서 예방·관리가 가능한 만큼 정부는 2019년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사업을 시범 도입, 2024년 본사업으로 전환했다. 문제는 전환 1년 만에 참여율이 급감했다는 것.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시범사업 당시 등록환자는 70만명을 넘었지만 본사업 전환 이후 올해 6월 기준 18만명으로 대폭 줄었다. ▲환자부담금 증액 ▲낮은 수가 ▲검진바우처 중단 등이 맞물리면서 의료기관과 환자 모두에게 매력이 떨어진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특히 환자부담 증가는 사업효용성을 크게 떨어뜨렸다. 노인외래정액제와의 충돌로 65세 이상 노인이 기존 1500원에서 최대 6900원까지 부담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서울의대 이해영 중앙심뇌혈관질환센터장은 “의원급과 공단을 연계해 데이터 거버넌스를 구축, 치료 연속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정부는 2019년부터 의료기관 방문이 어려운 환자를 대상으로 지역 일차의료기관에 소속된 의사 또는 한의사가 직접 방문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차의료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참여 의료기관이 저조하다. 지난해 9월 기준 전국 의원 총 3만6502곳 중 참여기관은 2.8%인 1007곳에 불과하며 2023년 기준 실제 청구가 이뤄진 기관은 총 209곳에 그쳤다.
방문진료 이용률도 마찬가지. 2019년 시범사업 시행 이후 지난해 상반기까지 방문진료 서비스를 이용한 환자는 의원 기준 총 2만3274명이다.
전문가들은 시범사업의 문제점으로 낮은 수익성과 법적 부담, 행정·인력 문제 등을 꼽는다. 또 환자 입장에서는 본인부담금이 매우 높다는 지적이다. 행위·약제 및 치료재료 포함 여부에 따라 12만8960원(방문진료료I) 또는 9만9720원(방문진료료II)으로 책정돼 있다.
대한재택의료학회 노동훈 간행이사(편한자리의원 원장)는 “현 체계로는 원활한 진행이 어렵다”며 “치료 연속성을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방치사업
▲장애인 개인예산제=장애인이 획일적 복지서비스 대신 필요한 물품·활동을 직접 선택하도록 하는 ‘개인예산제’는 2024년 시범 도입됐고 2027년 본사업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시범사업 1년 차부터 제도적 허점이 드러나며 사실상 방치된 사업으로 지적된다.
핵심 문제는 지출 사전 검증 시스템 부재. 참여자가 개인카드로 결제한 뒤 영수증을 제출하면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이 예산을 환급하는 구조이지만 지출 단계에서 어떤 품목이 지원 가능한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제도 포괄성 역시 떨어진다. 전체 등록 장애인(264만여명) 중 개인예산제 대상자는 ▲활동지원 15만여 명 ▲발달장애인 주간활동 1만2000명 ▲방과후활동 1만1000명 ▲발달재활서비스 9만7000명 등 소수에 불과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보윤 의원(국민의힘)은 ““장애인의 선택권 보장과 예산 집행 효율성을 위해 정말 필요한 제도이지만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으면 본사업의 실효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성공사례
▲스마트사회서비스 시범사업=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스마트사회서비스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디지털기술·AI·IoT 기반 돌봄기술을 지역사회에 적용해 새로운 사회서비스 모델을 실증하고 상용화 가능성을 검증하는 것이 목표. 4월에는 충남 당진시를 포함한 5개 지자체를 사업지역으로 선정해 6개 기업과 함께 ▲스마트 기저귀(센서) ▲노인건강·안전감지 조끼 ▲재활 로봇·자전거 ▲고독사 예방 AI 스피커 등을 지역사회에 제공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위험군 조기 감지 능력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IoT 센서·활동감지기·AI 패턴 분석을 활용해 고독사 고위험군, 만성질환 악화 위험군을 조기에 발견한 사례가 보고됐다. ‘위기 징후를 미리 탐지해 개입한다’는 스마트 돌봄의 본질적 목표가 실제로 구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