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두산이 세계 3위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 SK실트론 인수에 한 발 더 다가섰다. SK㈜는 17일 공시를 통해 SK실트론 지분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두산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SK㈜는 "세부적인 사항은 우선협상대상자와의 협의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며 관련 사항은 확정 시점 또는 3개월 이내 재공시하겠다"고 설명했다.
양측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계기로 최종 인수 계약을 위한 본격적인 협상에 돌입할 예정이며 업계에서는 절차가 원활히 진행될 경우 이르면 올해 3분기 내 거래가 마무리될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 인수금액 3조 이상, 최태원 회장 지분은 미정
매각 대상은 SK㈜가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70.6%이다. 업계에서는 SK실트론의 기업가치를 약 5조원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두산 측은 인수 금액으로 3조원 이상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해 SK가 반도체 특수가스 제조사 SK스페셜티 지분 85%를 약 2조6000억원에 매각한 규모를 훨씬 상회하는 규모다.
다만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개인적으로 보유한 나머지 지분 29.4%가 이번 거래에 포함될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SK그룹 내부에서도 최태원 회장의 지분 처리 방식을 두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국내 유일 웨이퍼 제조사, 글로벌 경쟁력 갖춘 기업
SK실트론은 반도체 칩의 핵심 기초소재인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하는 국내 유일의 전문기업이다. 12인치 웨이퍼 기준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 3위에 올라 있으며 1위는 일본의 신에츠화학, 2위는 섬코다.
SK실트론은 2017년 LG그룹에서 SK로 편입된 후 급속도로 성장했다. 매출은 2017년 9331억원에서 2024년 말 2조1268억원으로 증가했고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같은 기간 2409억원에서 6400억원으로 성장했다. SK그룹 편입 이후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알짜배기' 계열사로 자리 잡았다.
SK실트론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주요 반도체 제조사들을 고객으로 확보해왔으며, 차세대 전력반도체 시장을 겨냥해 2020년 미국 듀폰으로부터 실리콘 카바이드(SiC) 웨이퍼 사업부를 인수하는 등 미래 성장동력을 준비해왔다.
SK그룹은 올해 초부터 사업 재편의 일환으로 SK실트론 매각을 적극 추진해 왔다. 지난 6월에는 국내외 사모펀드(PEF)를 포함해 5~6곳이 예비실사에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참여 기관들로는 스틱(STic), 한앤코(Han&Co), IMM에 이르는 주요 PEF들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인수 조건을 두고 이견이 이어지면서 협상이 지연됐다. 특히 기업 가치 평가에서 의견 차이가 크게 났던 것으로 전해졌다. PEF들은 SK실트론의 기업가치를 4조원 수준으로 평가하려 했지만, SK그룹은 5조원대를 고집했다. 매각 조건이 맞지 않으면서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전기를 마련한 것은 두산의 적극적인 진출 의사다. 두산은 지난 10월 SK실트론 인수 검토 사실을 공식 발표하면서 협상에 속도가 붙었다. 이후 두산은 경북 구미에 위치한 SK실트론 본사와 공장에 대한 실사(실태조사)에 최근 착수했으며 경영진과의 면담을 통해 구체적인 사업 현황과 미래 계획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두산의 반도체 전략, 사업 포트폴리오 완성
두산그룹은 2022년 반도체 후공정 테스트 기업 두산테스나를 인수했고 자회사 엔지온을 편입하는 등 반도체 소재와 장비 분야를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짜고 있다. SK실트론 인수가 성사되면 반도체 분야에서의 입지가 대폭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은 올해 초 에너지와 기계, 반도체를 그룹의 3대 핵심 사업축으로 재편했다. 반도체 부문에서는 ▲두산테스나(비메모리 반도체 테스트) ▲두산 전자BG사업부(반도체 기판용 동박적층판) ▲SK실트론(맞춤형 웨이퍼 공급) 등 3축 구도를 완성하게 된다.
업계에서는 두산테스나 등 기존 반도체 계열사와 SK실트론 간의 직접적인 사업 시너지는 뚜렷하지 않다고 분석하고 있다. 두산테스나는 반도체 검사 및 테스트 분야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 SK실트론은 원재료 공급 단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에너지와 기계, 반도체를 그룹의 3대 축으로 가져간다는 두산의 큰 방향성에 SK실트론 인수가 힘을 싣는다고 평가했다. 특히 반도체 사업 부문의 외형 확대와 글로벌 위상 강화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SK㈜에게 SK실트론 매각은 그룹 재무 구조 개선의 주요 수단이다. 거래가 성사되면 최소 3조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그룹의 순차입금(Net Debt) 감소와 부채비율 개선에 직결된다.
SK그룹은 지난 3월 반도체 특수가스 제조사 SK스페셜티 지분 85%를 약 2조6000억원에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한 바 있다. SK실트론 매각으로 인한 추가 현금 유입은 SK그룹이 목표로 삼고 있는 부채비율 100% 이하 달성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SK는 이렇게 확보된 유동성을 인공지능(AI), 에너지 플랫폼, 첨단소재 등 미래 성장 사업에 집중 투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두산은 현재 SK실트론의 본사와 공장에 대한 실사를 진행 중이며, 본격적인 실사 작업을 통해 SK실트론의 재무 건전성, 기술력, 고객 기반, 계약 현황 등을 점검할 예정이다.
양측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계기로 매매계약안 작성, 감시위원회 심의, 임직원 노조 협의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업계에서는 절차가 원활히 진행될 경우 이르면 올 3분기 내 거래가 마무리될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으나 엄격한 경쟁법 심사와 노동조합 협상 등으로 인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거래가 완료되면 두산은 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의 본격적인 도약을 이루게 될 것으로 전망되며 SK그룹은 확보한 유동성으로 그룹 구조 개선과 미래 사업 투자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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