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커뮤니티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탈팡연습이라는 내용인데 쿠팡사태를 다시한번 생각나게 한다.
주문한 김치는 나흘 만에 도착했다. 예전 같았으면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일정이다. 하지만 주말 내내 김치 없는 식탁 앞에서 괜한 초조함이 스며들었다. 혹시 주문이 누락된 건 아닐까,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곰곰 돌아보니 문제는 배송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오늘 주문하면 내일 도착’이 당연한 기준이 되어버린 삶에 너무 오래 익숙해져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쿠팡은 우리 가족의 생활 동선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김치부터 세제, 아이들 준비물까지. 필요한 건 미리 준비하지 않아도 됐다. 앱은 생활 리듬을 기억했고, 알림은 부족해질 타이밍을 정확히 짚어냈다. 우리는 “오늘 저녁은 쿠팡이 차려준다”는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았다. 편리함은 빠르게 일상이 되었고, 선택은 습관이 됐다.
▲ 기사와 관련없음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이 편리함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배송 노동자의 사망 소식, 사고가 반복되는데도 바뀌지 않는 기업의 태도. 일자리를 만들었다는 말 뒤에 가려진 과로의 구조는 소비자인 나를 불편한 위치로 끌어당겼다. 내가 누리는 빠름이 누군가의 무리한 노동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기 어려워졌다.
최근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그 불편함을 분노로 바꿨다. 대규모 사고 이후에도 경영진은 책임의 자리에 서지 않았다. 국정감사 출석 요구를 ‘글로벌 CEO’라는 이유로 피해 갔다는 소식은, 이 기업이 누구의 선택으로 성장했는지를 잊고 있는 건 아닐지 묻게 했다. 최소한의 배상 보험, 형식적인 사과. 신뢰는 그렇게 조금씩 닳아갔다.
그래서 요즘 나는 ‘쿠팡 자제’를 실천 중이다. 거창한 불매 운동은 아니다. 다만 습관을 고치는 중이다. 급해도 새벽배송 대신 일반배송을 고르고, 쿠팡이 아닌 다른 플랫폼을 먼저 찾아본다. 배송이 느려지면 그만큼 계획을 앞당긴다. 김치가 떨어질 걸 예상해 미리 주문하는 일처럼, 예전에는 당연했던 생활의 감각을 되살리는 연습이다.
불매의 위험도 안다. 기업을 멀리하는 선택이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민하게 된다. 그럼에도 소비자가 기업에 보낼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신호가 ‘소비하지 않음’이라는 사실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반복되는 사고와 무책임한 태도 앞에서, 침묵은 선택이 되기 힘들다.
나는 아직 완전히 ‘탈팡’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빠름을 기본값으로 삼아온 삶에서 한 발 물러서고 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시간을 계산하고, 미리 준비하는 삶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그래서 더 의식적으로, 더 자주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편리함은 누구의 시간을 깎아 만든 것인가.
사실 더 바라는 것은 탈출이 아니라 변화다. 소비자를 기억하고, 노동자를 존중하는 기업으로의 변화. 선택해 준 사람들 앞에서 책임의 자리에 서는 태도. 그런 기업이라면 죄책감 없이 편리함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의 빠름은 누군가를 소모하지 않는 속도가 될 테니까.
오늘도 나는 작은 소비자 한 사람으로서 습관을 고치는 연습을 이어간다. 완전한 탈팡의 날을 준비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묻는다. 과연 변화한 쿠팡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답이 돌아오기 전까지, 나는 조금 느린 삶을 선택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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