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원장회의에 이어 전국법관회의까지 열렸지만, 사법부를 향한 국민의 기대는 허공에서 증발했다. 회의는 열렸고 결론도 나왔다. 그러나 그 결론에는 사과도, 책임도, 자기반성도 없었다. 남은 것은 내란전담재판부의 위헌 소지에 대한 문제 제기뿐이었다. 사법부 스스로 신뢰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인식은 끝내 언어로 등장하지 않았다.
법원장들과 평판사 대표들이 불과 사흘 간격으로 같은 방향의 메시지를 내놓은 장면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사법부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가 실종된 상태에서, 상층부의 인식이 하층으로 그대로 관철되는 구조를 드러낸다. 애초 법관회의의 공식 안건은 법관 인사와 평가 제도였지만, 법원장회의 직후 급히 변경됐다. 내란전담재판부 논란이 국회 문턱을 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법관회의는 법원장회의의 결론을 재확인하는 절차로 기능했다.
▲ 조희대 대법원장
이 과정에서 사법부는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는 단결했지만, 국민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내란재판부와 법왜곡죄 신설이 사법권 침해라는 주장에는 힘을 실었지만, 왜 국민이 이런 논의를 요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국민의 불신이 어디서 비롯됐는지에 대한 성찰도 보이지 않았다. 사법부의 시선이 국민이 아니라 자기 조직을 향하고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법관회의 내부에서조차 “위헌성만 강조해서는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지만, 이는 소수 의견에 그쳤다. 공식적으로 남은 문장은 “국민의 우려를 인식하고 있다”는 원론적 표현뿐이었다. 사법부 개혁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법관회의에서 나온 최대치의 언어가 이 정도였다는 사실은, 사법부 내부의 자기 인식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보여준다.
이런 장면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월 열린 법관회의에서도 ‘사법 신뢰 훼손’이 논의됐지만 결론은 없었다. 5월에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주도한 이재명 후보 공직선거법 상고심 처리 문제를 두고, 대선 개입 논란을 우려한다며 입장 발표를 미루다 끝내 무산시켰다. 사법 불신을 촉발한 당사자의 책임을 묻는 논의는 한 번도 본격화되지 않았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사법부는 여전히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법원장들이 ‘위헌적 비상계엄’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계엄 직후 열린 회의들에서는 계엄의 성격조차 규정하지 않았다. 일선 판사들 역시 사법개혁 법안에는 집단적으로 반대하면서도, 내란과 계엄에 대한 공개적 입장 표명은 거의 하지 않았다. 지귀연 재판부의 이른바 ‘침대 재판’, 잇단 구속영장 기각, 법정에서 벌어지는 내란 피의자 측의 조롱과 소동에도 침묵은 이어졌다.
이 침묵의 중심에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있다. 그러나 사법부 내부에서 그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언급 자체가 금기인 존재처럼 보인다. 이번 법원장회의와 법관회의는 조 대법원장이 대통령 초청 오찬에서 사법제도 개편에 우려를 표한 직후 열렸다. 대법원장의 문제의식이 사법부 전체의 기조로 전이되는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비상계엄에 대해 조희대 대법원장이 단 한 차례도 공개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최고 사법기관의 수장이 헌정 질서를 뒤흔든 사안에 침묵하는 동안, 사법부 구성원 전체의 판단 기준 역시 흐려졌다. 만약 계엄 직후 대법원이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면, 내란재판부 설치나 법왜곡죄 논의가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문제는 제도다. 대법원장이 인사와 사법행정을 사실상 독점하는 구조에서는, 내부 비판이 구조적으로 억제될 수밖에 없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내년 초 예정된 법관 인사가 판사들의 침묵을 강화하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대법원장의 인사권이 법관 독립의 보루가 아니라 통제 수단으로 작동해 왔다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법부의 개혁 의지 실종은 역설적으로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를 그대로 드러낸다. 반성과 사과 없는 자정은 공허하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선언이 아니라 구조를 바꿔야 한다.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하고, 사법행정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제도 개편 없이는 사법부의 환골탈태는 불가능하다. 사법부가 진정으로 묻고 답해야 할 질문은 여기에 있다. 조희대는 정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절대 존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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