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7일, 산업통상자원부 업무보고 현장.
질문은 단순했고, 요구는 명확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동해 유전 개발, 이른바 ‘대왕고래’ 프로젝트에 대해 배럴당 생산원가가 얼마로 추산되는지를 물었다. “난다고 치고 계산했을 때”라는 전제까지 붙였다. 매장량 불확실성, 탐사 리스크를 감안하더라도 정책 판단을 위해서는 숫자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동해 유전 개발은 수년간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있었고, 막대한 공적 자금 투입 가능성과 직결된 사안이다. 대통령의 질문은 “이 사업이 경제적으로 말이 되는가”라는 정책의 기본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숫자가 아니었다.
▲ 동해 가스전(기사와 관련없음)
한국석유공사 최문규 부사장은 “계산을 해봤다”고 말했지만, 정작 “정확한 수치는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대신 18년간 운영해온 동해 가스전 사례를 꺼내 들며 총투자비 1조 2천억 원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결론은 이 한 문장이었다. “해외에서 수입하는 가스보다는 상당히 저렴하다.”
이 지점에서 회의장의 공기가 바뀌었다. 대통령은 말을 끊고 다시 요청했다. “결론만 얘기해보세요.” 그럼에도 돌아온 답은 여전히 빗겨갔다. 가스 이야기였고, 비교는 추상적이었으며, 핵심인 ‘배럴당 생산원가’라는 질문에는 끝내 닿지 못했다.
이 장면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한 공기업 임원의 준비 부족 때문이 아니다. 이 대화는 공기업이 정책 결정권자 앞에서 어떤 태도로, 어떤 언어로 말하고 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첫째, 숫자가 없는 정책 설명은 책임 회피에 가깝다.
에너지 개발 사업은 정치적 수사나 낙관적 전망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배럴당 생산원가, 손익분기점, 국제 유가 변동에 따른 시나리오별 수익성 분석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저렴하다”는 표현은 판단이 아니라 인상이다. 정책은 인상이 아니라 근거 위에서 결정된다.
둘째, 질문을 바꾸는 화법은 신뢰를 깎는다.
대통령은 유전을 물었고, 답변은 가스로 흘러갔다. 물론 유전과 가스전은 기술적으로 연관돼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적 연관성 설명이 아니라, 해당 프로젝트 자체의 경제성이다. 질문의 초점을 의도적으로 흐리는 듯한 답변은, 내부에서도 아직 결론을 정리하지 못했거나, 정리된 결론을 내놓기 꺼린다는 인상을 준다.
셋째, ‘대왕고래’ 논란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거버넌스다.
그동안 동해 유전 개발을 둘러싼 논쟁은 늘 “가능성”과 “희망”의 언어로 소비돼 왔다. 매장량 추정, 탐사 성공 확률, 자원 주권 같은 단어들이 앞섰다. 그러나 대통령의 질문은 그 모든 담론을 건너뛰고 가장 현실적인 지점으로 향했다. “그래서 얼마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어떤 거창한 비전도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이날 장면은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도 함께 드러낸다.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감정적 비판도 없었다. 다만 반복해서 핵심을 요구했다. “결론만 말해보라”고 했다. 이는 정책 토론에서 수사보다 데이터, 추상보다 수치를 중시하겠다는 신호에 가깝다.
반대로 석유공사의 모습은 대비된다. 준비되지 않은 숫자, 일반론적 비교, 질문을 비껴가는 답변은 공기업이 여전히 정치적 논란을 두려워하며 ‘안전한 말’만 고르려는 습성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책 판단의 자리에 ‘안전한 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불편하더라도 정확한 수치와 그에 따른 책임 있는 설명이다.
동해 유전 개발이 계속 논란이 되는 이유는 성공 가능성 때문만이 아니다. 실패 가능성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비용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그리고 그 모든 판단의 근거가 시민에게 투명하게 제시되고 있는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날 업무보고 현장에서 오간 몇 마디 대화는, 그 신뢰의 간극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은 숫자를 요구했고, 공기업은 말을 돌렸다. 정책은 그 사이에서 잠시 멈춰 섰다.
‘대왕고래’가 진짜 문제 삼아야 할 대상은 지하의 자원이 아니라, 위에 있는 설명 방식일지도 모른다. 숫자를 말하지 않는 에너지 정책은 방향을 잃기 쉽고, 방향을 잃은 정책은 결국 국민에게 비용으로 돌아온다.
Copyright ⓒ 월간기후변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