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의 잔인한 LG배터리 손절매···'LG 폴란드 공장'에 몰아친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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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의 잔인한 LG배터리 손절매···'LG 폴란드 공장'에 몰아친 공포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12-18 06:42: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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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폴란드 브로츠와프 산업단지에 위치한 LG에너지솔루션(옛 LG화학)의 배터리 공장은 한때 유럽 전기차 혁명의 전초기지이자 한국 배터리 산업의 자존심으로 불렸다. 구광모(47) 회장이 진두지휘한 LG엔너지솔루션이 폴란드 배터리 공장에 투입된 총 투자 규모는 약 5조 안팎(28억~30억 유로)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25년 12월 현재, 이 공장을 감싸고 있는 기류는 매서운 폴란드의 겨울바람보다 더 차갑다. 미국 자동차 거인 포드가 LG에너지솔루션에 통보한 9조 6,030억 원(약 65억 달러) 규모의 공급 계약 해지는 단순히 서류상의 숫자가 증발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장비들이 쉼 없이 돌아가야 할 폴란드 공장의 미래 가동률이 통째로 잘려 나갔음을 의미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17일 공시를 통해 포드와 맺었던 전기차 배터리 장기 공급 계약이 상대방의 해지 통보로 종료되었다고 밝혔다. 해지된 물량은 2027년부터 2032년까지 공급하기로 했던 75기가와트시(GWh) 규모다. 이는 최근 LG에너지솔루션 연간 매출액의 28.5%에 달하는 막대한 비중이다. 2024년 10월 양사가 손을 맞잡으며 유럽 전기 상용차 시장을 호령하겠다고 선언한 지 불과 1년여 만에 벌어진 일이다. 당시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전기 상용차 시장에서도 높은 기술력과 혁신적인 제품 경쟁력을 입증하여 유럽 시장 내 선도적 지위를 강화하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으나, 시장의 냉혹한 현실은 그 약속을 허락하지 않았다.

출처=구글 캡처
출처=구글 캡처

포드의 잔혹한 산수와 28조 원의 손실 처리

포드의 이번 결정 뒤에는 처참한 재무적 성적표와 전략적 후퇴가 자리 잡고 있다. 포드는 계약 해지 발표 직전, 전기차 사업 부문에서 무려 28조 8,200억 원(195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 상각과 특별 비용 처리를 단행했다. 이는 자동차 산업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손절매다. 포드의 최고경영자 짐 팔리는 블룸버그 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솔직하고도 잔인한 결론을 내놓았다. 그는 돈을 벌지 못하는 제품에 수십억 달러를 계속 쏟아붓는 것은 무의미했으며, 우리는 이 선택을 해야만 했다고 강조했다.

포드가 내린 선택의 핵심은 수익성이 없는 순수 전기차 비중을 줄이고,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로 회귀하는 것이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공장의 배터리가 탑재될 예정이었던 차세대 전기 상용 밴과 전기 픽업트럭 개발 계획이 전격 취소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포드는 전기차 수요가 예상만큼 따라주지 않는 상황에서 보조금마저 줄어들자, 순수 전기차 대신 가솔린 엔진을 발전기로 사용하는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와 하이브리드 모델에 집중하기로 했다. 포드 전기차 부문 책임자인 앤드루 프릭은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대형 전기차에 수십억 달러를 더 쓰는 대신, 그 자본을 수익성이 더 높은 분야에 재배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폴란드 공장에 닥친 볼륨 갭의 공포

이번 사태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는 LG에너지솔루션의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이다.  이 공장은 이미 유럽 전기차 수요 둔화로 인해 가동률이 60%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2027년부터 가동률을 끌어올릴 핵심 동력이었던 75기가와트시 물량이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폴란드 공장은 거대한 유휴 설비를 안고 가야 하는 볼륨 갭(공백기) 위기에 처했다. 공장 가동률 저하는 고정비 부담 급증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기업 전체의 수익성을 갉아먹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의무 공시 대상이 될 정도의 대규모 계약이 이토록 단기간에 파기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입을 모은다. 한 산업 전문가는 공시된 해지 금액이 9조 원을 넘는다는 것은 폴란드 공장에 그만큼의 전용 생산 라인이 구축되었거나 계획되었다는 뜻이라며, 당장 재무적 타격이 없더라도 공장 운영 효율성에는 치명적인 상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르노 등에 공급할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생산으로 라인 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나, 포드가 남긴 구멍을 메우기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정치적 풍향계와 정책의 배신

배터리 업계의 장밋빛 전망을 꺾어놓은 것은 소비자뿐만이 아니다. 대서양 양안에서 불어오는 정치적 풍랑은 기업들의 계산기를 무력화시켰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은 전기차 세액 공제 폐지와 배출가스 규제 완화라는 거대한 불확실성을 몰고 왔다. 포드의 짐 팔리 CEO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가 연비 규정을 시장 현실에 맞추는 것이라며, 이는 고객과 상식의 승리라고 치켜세웠다. 이는 전기차 전환을 외치던 자동차 기업들이 이제는 규제 완화를 생존의 돌파구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연합 역시 2035년 내연기관 판매 금지 목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유럽 시장을 겨냥했던 폴란드 공장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흔들리고 있다. 보조금이 사라지고 규제가 헐거워진 시장에서 약 4,434만 원(3만 달러)대의 저가형 전기차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배터리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위약금 협상과 이별의 대가

이제 남은 것은 법적 분쟁과 보상금 산정이다. 통상적인 배터리 장기 공급 계약에는 주문 물량이 미달할 경우에도 대금을 지급하는 테이크 오어 페이(Take-or-Pay) 조항이나 임의 해지 시 투자비를 보전해주는 규정이 포함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폴란드 공장에 투입된 설비 투자비와 기대 이익 손실에 대해 포드 측에 강력한 보상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포드와 합작법인을 해산하기로 한 SK온의 경우, 합작 관계를 청산하는 대가로 상당한 비용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 또한 포드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법적 대응을 검토할 것이나, 포드가 여전히 34기가와트시 규모의 별도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고객사의 전동화 전략 변경으로 특정 모델 개발이 중단됨에 따라 일부 물량이 해지된 것이며, 고객사와 중장기적 협력 관계는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는 당장의 충돌보다는 실리를 챙기는 협상을 우선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배터리 산업의 새로운 생존 방정식

폴란드 공장의 위기는 한국 배터리 산업 전체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특정 완성차 업체에 의존하는 대규모 수주 방식이 정책 변화와 수요 정체라는 변수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지가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용 배터리를 넘어 에너지 저장 장치(ESS)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포드 역시 폐쇄하거나 전환하려던 공장을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를 위한 에너지 저장 장치 생산 시설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배터리 산업의 생존 방정식은 양적 팽창에서 질적 유연성으로 이동하고 있다.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이 맞이한 이번 겨울은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전기차라는 단일 품목의 환상에서 깨어나, 에너지 솔루션이라는 더 넓고 험난한 바다로 강제로 떠밀려 나가는 변곡점이 될 것이다. 9조 원의 계약 파기는 그 고통스러운 진화의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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