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본다이 총기 난사, ‘혐모’와 ‘증오’의 끝은 오는가?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시드니 본다이 총기 난사, ‘혐모’와 ‘증오’의 끝은 오는가?

독서신문 2025-12-18 06:00:00 신고

3줄요약
시드니 총기난사 총격범 나비드 아크람(24).(사진=호주 ABC 홈페이지 캡쳐)
시드니 총기난사 총격범 나비드 아크람(24).(사진=호주 ABC 홈페이지 캡쳐)

2025년을 마무리하는 12월, 인류사에 또다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중동도, 미국이나 유럽도 아닌 호주 시드니에서다. 지난 12월 14일 오후 6시 40분경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이자 호주를 상징하는 시드니 '본다이 비치'에서 대규모 총기 난사 테러가 발생했다. 현장에는 유대교 명절 ‘하누카’의 시작을 기념하는 행사로 1000여명이 모여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용의자를 포함해서 16명이 사망하고 약 40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 중엔 홀로코스트 생존자도 있었다고 한다.)

사건의 용의자는 아버지인 사지드 아크람(50))과 그의 아들 나비드 아크람(24) 무슬림 부자로, 아버지는 현장에서 사살되었고 아들은 중상을 입고 검거되었다. 호주 정부는 이 사건을 극단주의 이슬람(IS) 이념에 영감을 받은 유대인 표적 테러로 규정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지난 15일 “어제 우리가 목격한 것은 순수한 악행이자 반유대주의 행위였으며 기쁨과 가족 모임, 축하 행사로 유명한 호주의 상징적 장소 본다이 비치에서 벌어진 테러 행위였다”며 “모든 형태의 반유대주의를 근절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호주 정부는 이번과 같은 테러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총기 규제책을 발표했다. 주별로 흩어진 총기 정보를 통합 관리하고, 오직 호주 시민권자만(?) 총기 면허 소지가 가능하게 하며. 또한 1인당 소유 가능 총기 수 제한과 대용량 탄창 등 개조 부품 규제를 강화하고 총기 면허가 영구적이지 않도록 기간을 한정하는 방안이다.

사람들은 이번 총기 사건으로 자연스럽게 호주 역사상 단일 괴한에 의한 최악의 참사였던 1996년 4월 28일의 ‘포트 아서 학살 사건’을 떠올렸다, 이 사건은 호주가 엄격한 총기 규제 국가로 거듭난 계기가 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35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을 당했다. 당시 존 하워드 정부는 국가 총기법(National Firearms Agreement)을 제정하여 자동 및 반자동 총기 소유를 금지하고, 약 65만 정 이상의 총기를 사들이는 '총기 바이백(Buyback)'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사진=호주 ABC 홈페이지 캡쳐)

그런데 지난 하워드 정부의 이런 강력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30여 년 만에 또다시 총기 참사가 일어났다. 그렇다면 이번 호주 정부의 총기 규제 또한 그 효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열 형사가 한 사람의 도둑을 막기 어렵 듯이 규제 또한 반드시 그 한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결국 대립과 갈등, 혐오와 증오가 이어지는 한 인류사의 비극은 반복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번 사건 또한 유대인 혐오를 그 주된 원인으로 보고 있다. (호주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반유대주의 범죄가 급증했다) 그동안의 세계사적 상황을 차지하고 인류사에서 유대인은 늘 뜨거운 감자였다. 그 결과 유대인은 어느 민족보다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되어 수많은 희생을 치렀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안네의 일기』, 『쥐』, 『죽음의 수용소에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등 수많은 책만 봐도 그 사실은 자명하다.

물론 유대인들 또한 혐오와 증오의 ‘희생양’이자 ‘가해자’였다. (전 세계의 모든 유대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란 파페의 저서 『팔레스타인의 인종 청소』에 따르면 유대인은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약 100만명을 대규모로 강제 추방하거나 학살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를 "인종 청소"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해는 2023년 10월에 시작된 가자 지구 전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 등 국제 사회 인사들은 1948년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제2의 인종 청소'를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혐오와 증오 안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없다. 모두가 가해자일 수 있고 또한 피해자 일 수 있다. 그 안에는 합리적 사고나 객관적 사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 공동체, 국가, 나아가 세계가 모두 상처를 입고 피해를 당한다.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이 끔찍한 인류의 악순환의 쳇바퀴를 멈추어야 하는 이유다.

‘법구경’에서는 "증오는 증오에 의해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사랑에 의해서만 사라진다. 이것은 영원한 법칙이다”라고 했다. 기독교의 예수 또한 증오가 아닌 사랑을 설파했다. 이런 예수가 탄생했다는 12월에 일어난 본다이 참사가 더욱더 안타까운 이유다. 진정 인류는 혐오와 증오를 넘어 단 한 발짝도 대화합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일까? 그날이 요원하다.

Copyright ⓒ 독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