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신문 신디케이트는 12월 15일 잠비아 출신 경제학자 담비사 모요가 기고한 글을 통해 세계 경제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다섯 가지 구조적 추세를 짚었다. 성장 둔화나 무역 분쟁 같은 단기 이슈보다 더 깊고 장기적인 변화가 이미 진행 중이며, 이 흐름이 글로벌 질서를 재편할 수 있다는 경고다.
첫 번째 변화는 인구 구조의 급격한 전환이다. 세계 인구는 중장기적으로 증가하겠지만, 그 이면에서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생산 가능 인구 대비 은퇴 인구 비율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으며, 이는 연금 제도와 공공 재정에 심각한 부담을 준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대규모 노동 인구가 새롭게 유입되는 반면, 선진국은 인구 감소와 노동력 부족에 직면해 인구 이동 압력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에너지와 식품을 포함한 글로벌 소비 구조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두 번째는 인공지능(AI)이 노동 시장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AI는 생산성을 높이고 경제 성장을 자극할 수 있지만, 동시에 반복적·일상적 업무를 중심으로 대규모 일자리 대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고용 충격은 사회적 불안과 불평등 심화를 낳을 수 있으며, 자본이 노동보다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가 굳어질 경우 정부의 개입 요구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기술 기업을 중심으로 한 조세 부담 확대와 사회 안전망 강화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 구조적 추세는 천연자원의 한계다. 구리를 비롯해 리튬, 니켈, 코발트 등 핵심 광물은 수요 증가에 비해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투자 부족이 지속될 경우 향후 수십 년 내 심각한 공급 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여기에 물 부족 문제도 더해지고 있다. 농업 생산의 상당 부분이 물 스트레스 지역에 집중돼 있으며,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 확대 역시 수자원 수요를 급증시키고 있다. 이는 식량 가격과 에너지 전환 모두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네 번째 변화는 미국에서 두드러지는 투기적 투자 성향의 강화다. 비교적 느슨한 규제 환경 속에서 미국 자본시장은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주식시장과 사모펀드, 암호화폐, 금 등 다양한 자산으로 투기적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막대한 세대 간 자산 이전이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흐름은 쉽게 꺾이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그림자 금융을 통한 레버리지 확대는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을 키우고 통화 정책의 효과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마지막으로 유럽과 영국에서는 안전자산 선호와 위험 회피 성향이 구조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과도한 규제와 분산된 자본 시장은 성장 잠재력을 제한해 왔으며, 위험 자본 투자 규모에서도 미국과 큰 격차를 보인다.
최근 런던 금융시장의 침체와 연기금의 국내 주식 투자 축소는 유럽 기업의 자금 조달 환경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금융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혁신 경쟁력과 기술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담비사 모요는 이 다섯 가지 구조적 추세 중 어느 하나만으로도 세계 경제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무역 경로와 투자 흐름, 핵심 자원과 식품의 가격 구조까지 재편될 수 있으며, 각국 정부는 공급망 관리와 자본 배분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의 신호를 조기에 인식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정책 결정자만이 새로운 글로벌 질서 속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글은 결론짓는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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