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지나간 자리였는데…" 산불 뒤 고운사에 다시 나타난 '멸종위기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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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 지나간 자리였는데…" 산불 뒤 고운사에 다시 나타난 '멸종위기 동물'

위키푸디 2025-12-17 20:55: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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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자료 사진. / 국립생물자원관
담비 자료 사진. / 국립생물자원관

겨울로 향하는 산은 조용하다. 잎을 떨군 나무 사이로 그을린 흔적이 한층 또렷하게 드러난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는 모든 것이 멈춘 듯 보이지만, 숲의 시간은 전혀 다른 속도로 흐른다. 경북 의성 고운사 사찰림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사라진 듯 보였던 산에서 뜻밖의 장면이 포착됐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 ‘담비’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불탄 나무 아래서 다시 시작된 숲

고운사 사찰림에서 확인된 불탄 나무 밑동 속에서 피어나는 싸리나무 새싹 자료 사진.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사진입니다. / 위키푸디
고운사 사찰림에서 확인된 불탄 나무 밑동 속에서 피어나는 싸리나무 새싹 자료 사진.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사진입니다. / 위키푸디

지난 3월 초대형 산불은 고운사 사찰림을 크게 훑고 지나갔다. 수십만 평에 이르던 숲 가운데 극히 일부만 남고, 대부분의 나무가 불을 맞았다. 일반적인 산불 피해지라면 위험을 이유로 불탄 나무를 베어내고 인공 식재로 숲의 외형을 빠르게 바꾸지만, 고운사는 사찰림을 그대로 두는 길을 택했다.

산불 이후 환경단체와 연구진은 사찰림 전반에서 식생과 동물 조사를 이어갔다. 능선을 따라 이동하며 마주한 풍경은 예상과 달랐다. 까맣게 탄 나무 아래에서는 어린 활엽수와 침엽수 묘목이 자라고 있었고, 줄기가 그을린 나무에서도 뿌리와 그루터기 사이로 새싹이 올라왔다. 숲 바닥에는 열기를 견딘 씨앗들이 이미 싹을 틔운 상태였다.

사면 방향에 따라 숲의 모습도 달라졌다. 습기가 비교적 많은 북사면에는 신갈나무가, 햇볕이 강한 남사면에는 굴참나무가 자리 잡았고, 계곡 주변에서는 갈참나무와 개옻나무가 확인됐다. 불길이 모든 생명을 지운 듯 보였지만, 토양 속에서는 다음 세대를 향한 변화가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멧돼지 흔적 지나 '담비'가 나타났다

10월 26일 고운사 사찰림의 계곡에서 담비 두 마리가 찍혔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사진입니다. / 위키푸디
10월 26일 고운사 사찰림의 계곡에서 담비 두 마리가 찍혔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사진입니다. / 위키푸디

식생 조사 과정에서 동물의 흔적도 이어서 발견됐다. 비가 스며든 구간에는 멧돼지가 몸을 비빈 흔적이 남아 있었다. 습해진 흙은 멧돼지에게 자연스러운 목욕탕이 된다. 멧돼지는 이곳에서 몸을 굴리며 피부에 붙은 기생 생물을 털어낸다. 이동 과정에서 씨앗과 미생물을 숲 곳곳으로 옮긴다.

산자락에서는 오소리 굴도 확인됐다. 오소리는 굴 근처에 배설 공간을 따로 두고 영역을 표시한다. 먹이를 찾아 오르내리며 남긴 길은 숲에 희미하게 남는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생명의 흐름은 이어지고 있었다.

이 흐름은 계곡에서 분명해졌다. 지난 10월 환경단체와 연구진이 고운사 사찰림 계곡에 설치한 무인 카메라에 담비 두 마리가 포착됐다. 담비는 과일과 곤충, 작은 포유류까지 먹는 잡식성 포식자로 생태계 상위에 있다. 이런 동물이 다시 활동한다는 사실은 그 아래 단계의 생물들이 이미 숲에 자리 잡았다는 신호로 읽힌다. 

베어내지 않은 선택이 남긴 기록

까맣게 탄 나무 아래에서 초록색 새 줄기가 자라나고 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사진입니다. / 위키푸디
까맣게 탄 나무 아래에서 초록색 새 줄기가 자라나고 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사진입니다. / 위키푸디

고운사 사찰림 사례는 국내 온대 활엽수림이 지닌 회복 역량을 보여준다. 국내 여러 조사에서도 산불 피해 지역 상당 부분에서 자연 발아와 맹아가 확인됐다. 인공 조림 없이도 숲이 돌아올 수 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물론 모든 숲이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단일 수종 위주의 조림지나 건조한 지역에서는 회복이 더디다. 토양 자체가 손상된 지역은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자연 복원이 가능한 숲은 분명 존재한다. 이런 공간은 서둘러 손대기보다 시간을 두고 지켜볼 가치가 있다. 산불 피해를 이유로 보호 구역을 풀고 개발을 허용하려는 움직임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4컷 만화. / 위키푸디
4컷 만화. / 위키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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