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을 내어줬는데, 그들은 나를 빈손으로 홀로 남겨두었습니다'…영웅으로 인정받지 못한 우크라이나 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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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편을 내어줬는데, 그들은 나를 빈손으로 홀로 남겨두었습니다'…영웅으로 인정받지 못한 우크라이나 군인들

BBC News 코리아 2025-12-17 20:04:24 신고

3줄요약
흰색 티셔츠를 입은 남성의 뒷모습과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군복에 붙이는 배지와 국기
BBC
자살로 사망한 우크라이나 군인 수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자료가 없다

이 기사에는 자살에 대한 언급 등 불편을 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신원보호를 위해 일부 인물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카테리나는 아들 오레스트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눈물을 참지 못한다. 특히 아들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된 경위를 설명할 때면 분노로 목소리가 떨린다.

오레스트는 지난 2023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차시우 야르 근처 전선에서 숨을 거뒀다. 군 당국의 공식 조사에 따르면 사인은 자살이다.

카테리나는 우크라이나 사회의 자살과 정신 건강을 둘러싼 낙인을 우려해 자신과 죽은 아들의 이름을 가명으로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오레스트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학자가 되기를 꿈꾸던 조용한 성격의 25세 청년이었다. 카테리나에 따르면 워낙 시력이 나빠 전쟁 초기만 해도 군 복무가 불가능했다.

그러던 2023년, 징집 순찰대가 거리를 걷던 그를 불러 세웠다. 시력 재검사를 통해 전투에서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게 됐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통신병으로 전선에 배치됐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차시우 야르 인근 지역 전선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대전차 지뢰와 각종 장애물을 설치하는 모습
EPA
동부 도네츠크주 차시우 야르 인근 전선의 우크라이나 군인들

전사한 우크라이나 군인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어렵다. 다만 올해 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자국 군인과 장교 중 약 5만6000명이 숨졌다고 인정한 바 있는데, 서방 세계 전문가들은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으리라 추정한다.

그리고 이 그늘 속에 또 하나의 조용한 비극이 이어진다. 바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군인들 그리고 슬픔과 사회적 낙인, 침묵 속에 남겨진 유가족들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우크라이나 군인 수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통계 자체가 없다. 당국은 이를 개별적인 사건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인권 운동가들과 유가족들은 그 수가 수백 명에 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카테리나는 고통에 찬 목소리로 "오레스트는 소집된 게 아니라 붙잡혀 간 것"이라 강조했다.

이들 모자가 살던 지역의 징집 센터는 BBC에 위법 행위는 없었다면서, 오레스트는 시력 문제로 인해 "부분적 복무 적합" 판정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테리나에 따르면 오레스트는 차시우 야르 근처로 배치된 이후부터 점차 더 내성적이고 우울해졌다.

카테리나는 지금도 아들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지금껏 쓴 편지가 650통이 넘는다.

그는 법이 아들의 죽음을 규정하는 방식에 더욱 깊은 슬픔을 느낀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자살을 전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자살로 사망한 군인의 가족은 그 어떠한 보상도, 군인으로서의 명예도, 공식적인 인정도 받지 못한다.

카테리나는 "우크라이나에서는 마치 둘로 나뉜 느낌"이라면서 "누군가는 올바르게 죽었고, 누군가는 잘못 죽었다"고 표현했다.

"국가가 제 아들을 데려가 전쟁터에 보냈습니다. 제게 돌아온 것은 가방에 담긴 시신이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 어떠한 도움도, 진실도 없습니다."

군인들이 한 병사의 장례식에서 관 위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덮는 모습
Reuters
전사한 어느 군인을 위한 장례식이 르비우에서 거행됐다

보이지 않는 피해

카테리나의 사연은 군 복무 중 BBC가 자살 사망 군인 유가족으로부터 취재한 3가지 사례 중 하나다. 이들 모두 고통스러운 심리적 탈진 상태를 호소하며 사회 제도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호소했다.

수도 키이우 출신 마리야나의 사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리야나 또한 자신과 숨진 남편의 신원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의 남편 아나톨리는 2022년 자원해서 전쟁에 나섰다. 마리야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남편이 처음에는 군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으나, "받아줄 때까지 계속 찾아갔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아나톨리는 가장 치열한 전선 중 하나인 바흐무트 근처에서 기관총 사수로 배치됐다.

마리야나는 "남편이 한번은 약 50명이 죽었다고 했다. 전투에서 돌아온 그는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너무나도 조용하고 멀어진 느낌이었다"고 했다.

팔 일부를 잃은 아나톨리는 병원으로 이송됐다.

어느 저녁, 아내와의 통화를 마친 그는 병원 마당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마리야나는 눈물을 흘리며 "전쟁이 그를 망가뜨렸다. 그는 자신이 목격한 것들을 안고 차마 살아갈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그런데 아나톨리의 사인이 자살이라는 이유로, 당국은 군 차원의 장례식을 거부했다.

마리야나는 "남편이 전선에 있을 때는 쓸모 있었지만, 이젠 영웅이 아니라는 소리냐"며 배신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어 "국가는 나를 그저 길가에 내다 버렸다. 나는 남편을 내어줬는데 그들은 나를 빈손으로 홀로 남겨두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다른 군인 유가족에게서조차 낙인을 느꼈다고 말했다.

마리야나의 뒷모습
BBC
마리야나는 우크라이나 사회의 자살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우려해 자신의 신원을 공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현재 마리야나의 유일한 버팀목은 자신처럼 자살로 생을 마감한 군인 남편의 아내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다. 이들은 정부가 법을 개정해 자신과 같은 유가족들도 다른 군 유가족과 동등한 권리와 인정을 누릴 수 있길 바란다.

한편 취재진이 르비우에서 만난 빅토리아는 사회의 비난이 두려워 남편의 죽음에 대해 선뜻 말하지 못했다. 빅토리아와 남편 모두 가명을 사용했다.

남편 안드레이는 선천성으로 심장이 좋지 않았으나, 입대를 고집했다. 그렇게 정찰 부대의 운전병이 된 그는 헤르손 탈환 등 가장 치열했던 전투들을 직접 목격했다.

2023년 6월, 빅토리아는 남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당시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10일 뒤 시신이 운구됐으나, 빅토리아는 시신조차 볼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 빅토리아가 고용한 변호사는 안드레이의 사망 관련 조사에서 몇몇 불일치점을 발견했다. 현장 사진들을 보며 빅토리아는 남편의 공식 사인에 의문을 품게 됐다. 이에 우크라이나 군 당국 또한 실수를 인정하며 재조사하겠다고 했다.

"저는 그의 명예를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위해 변호할 수 없으니까요. 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낙인

옥사나 보르쿤은 군인 유가족 지원 커뮤니티를 운영한다. 이 단체에는 자살로 가족을 잃은 가구만 해도 약 200가구에 달한다.

보르쿤은 "사람들은 자살로 숨졌다면 영웅이 아니라고 말한다"면서 "일부 교회는 장례식 집전도 거부한다. 자살로 숨진 이들의 사진은 추모의 벽에 게시하기 거부하는 마을들도 있다"고 했다.

다수의 유가족은 공식적인 사인에 의문을 제기한다. "일부 사건의 경우 너무 빨리 종결됐다"는 것이 보르쿤의 설명이다.

한편 군종신부인 보리스 쿠토비 신부는 전면적인 침공 이후 자신이 담당하는 부대에서만 최소 3건의 자살을 목격했다면서, 자살은 단 1건만으로도 엄청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누군가 그러한 선택을 했다는 건 우리가 어디에선가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쿠토비 신부는 직업 군인과 달리 징집병들은 특히 심리적으로 취약하다고 본다.

보르쿤과 보리스 신부 모두 자살로 사망한 이들 또한 영웅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했다.

진실 규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제도

인터뷰 중인 올하 레셰틸로바
BBC
우크라이나 최초의 군 인권 도우미인 올하 레셰틸로바

우크라이나 최초의 군 인권 도우미인 올하 레셰틸로바는 매달 최소 4건의 군인 자살 신고를 접수한다면서 조치가 미흡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어 "그들이 본 것은 지옥이었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할지라도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레셰틸로바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군은 체계적인 개혁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제대로 된 군 심리 학교를 세우는 데만 수년이 걸린다"는 설명이다.

레셰틸로바는 "유가족들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면서 "이들은 수사 당국을 신뢰하지 않는다. 일부 사건은 자살로 위장된 살인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레셰틸로바는 모든 군인들이 영웅으로 존중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나, 분명 그의 마음가짐은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레셰틸로바는 "지금부터 전쟁이 끝난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여러분의 이웃이자 동료였습니다. 지옥을 걸어온 이들입니다. 우리가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할수록 비극은 줄어들 것입니다."

추가 보도: 케빈 맥그리거, 올렉시 나자룩, 피비 홉슨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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