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랑거리로 살아온 딸, 그녀가 잃어버린 것들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엄마의 자랑거리로 살아온 딸, 그녀가 잃어버린 것들

나만아는상담소 2025-12-17 19:24:00 신고

3줄요약

엄마의 자랑거리로 살아온 딸 그녀가 잃어버린 삶

명절이나 가족 모임이 되면 으레 벌어지는 풍경이 있다. 거실 한가운데 앉은 엄마가 상기된 얼굴로 딸의 성취를 나열하기 시작한다.

어느 대학을 나왔고, 어떤 대기업에 들어갔으며, 사위가 얼마나 유능한지, 혹은 딸이 이번에 승진을 해서 연봉이 얼마가 되었는지.

친척들의 부러움 섞인 탄성과 칭찬이 쏟아지면 엄마의 어깨는 한껏 올라간다. 그 순간 엄마의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희에 차 있다.

하지만 정작 그 칭찬의 주인공인 딸의 표정은 어떠한가. 겉으로는 수줍게 미소 짓고 있을지 몰라도, 속으로는 알 수 없는 공허함과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을지 모른다.

마치 진열장에 갇힌 인형이 된 듯한 기분, 혹은 주인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잘 닦여진 트로피가 된 듯한 불쾌감.

엄마의 자랑거리로 살아온 딸들은 세상이 보기엔 완벽한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다. 흠잡을 데 없는 스펙, 반듯한 직장, 성실한 태도.

누가 봐도 잘 자란 딸이자 부모의 영광이다. 그러나 그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자신의 진짜 얼굴을 잃어버린 채 서성이는 길 잃은 영혼이 있다.

엄마는 딸을 독립된 인격체로 사랑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텅 빈 내면을 채워줄, 그리고 남들에게 자신을 과시할 수단으로 딸을 소비했을 뿐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자란 딸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지독한 자기 상실감에 시달린다.

이 글은 엄마의 트로피로 사느라 정작 자신을 잃어버린 딸들을 위한 애가이자,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정의 시작점이다.

우리가 성공하면 할수록 왜 마음은 더 가난해지는지, 그 서글픈 비밀을 파헤쳐보려 한다.

자아의 실종, 엄마라는 거울에 갇히다

나르시시스트 엄마에게 딸은 자신과 분리된 타인이 아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아의 확장이라 부른다. 엄마는 딸을 자신의 분신, 혹은 자신의 연장선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딸의 성취는 곧 엄마의 성취가 되고, 딸의 실패는 곧 엄마의 수치가 된다. 엄마에게 중요한 것은 딸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니다.

남들이 우리 딸을, 그리고 그 딸을 키워낸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시선만이 유일한 관심사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나르시시즘적 투사다.

어린 시절부터 딸은 엄마의 기대라는 좁은 틀에 자신을 구겨 넣어야 했다. 엄마가 의사를 원하면 의사를 꿈꿔야 했고, 엄마가 얌전한 요조숙녀를 원하면 활달한 본성을 죽이고 다소곳이 앉아 있어야 했다.

엄마의 욕망이 곧 나의 욕망이어야만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유한 감정이나 취향을 드러내는 순간, 엄마의 차가운 외면이나 비난이 쏟아졌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딸은 자신의 진짜 자아를 서서히 지워나간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언제 슬픈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묻는 법을 잊어버린다.

대신 엄마가 좋아할 만한 것, 엄마가 칭찬할 만한 것, 남들에게 보여주기 좋은 것들로 자신의 껍데기를 채워나간다.

그렇게 성인이 된 딸의 내면은 텅 비어 있다. 겉보기엔 그럴듯한 직함과 성취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내가 아닌 것 같다는 이질감에 시달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엄마가 연출한 연극 무대 위에서 엄마가 정해준 배역을 충실히 연기해왔을 뿐이다.

그 연극이 화려할수록,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커질수록, 배우인 당신의 공허함은 깊어만 간다. 무대 뒤편의 초라한 진실을 아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기 때문이다.

멈출 수 없는 질주, 성취라는 이름의 마약

엄마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했던 딸들은 필연적으로 과잉 성취자가 되기 쉽다. 이 책에서는 이를 메리 마블 유형이라 칭한다.

이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존재 그 자체가 아닌 행위와 성과로 증명하려 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뿌리 깊은 무의식이 이들을 지배한다.

엄마는 딸이 1등을 했을 때, 상을 받아왔을 때, 좋은 학교에 합격했을 때만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 미소는 딸에게 생존을 위한 산소와도 같았다.

따라서 딸은 엄마의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즉 사랑받기 위해 쉼 없이 달려야 했다. 성취는 사랑을 얻기 위한 티켓이자, 버림받지 않기 위한 방패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 패턴은 반복된다. 직장에서 워커홀릭이 되어 몸을 혹사하거나, 완벽한 아내와 엄마가 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잠시라도 쉬면 불안감이 엄습한다. 마치 자전거 페달을 멈추면 쓰러질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린다. 남들은 대단하다고 추켜세우지만, 정작 본인은 늘 부족하다고 느낀다.

이것은 일종의 사기꾼 증후군으로 이어진다. 객관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럴 자격이 없으며 언젠가는 무능함이 탄로 날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자신의 성취가 온전히 자신의 욕망과 재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엄마의 인정을 받기 위한 연기였음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칭찬을 들어도 기쁘지 않다. 오히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다음에는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을 느낀다.

성공의 사다리를 높이 올라갈수록 고립감은 깊어진다. 아무에게도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완벽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약점은 곧 죽음과도 같다.

이들은 겉으로는 화려한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가지만, 속으로는 만성적인 피로와 우울, 그리고 타버린 재 같은 소진 증후군을 앓고 있다.

엄마의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 바친 노력의 대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자신의 소멸이었다.

정서적 유대의 부재, 텅 빈 거울

가장 비극적인 것은 엄마와의 관계에서 진정한 정서적 교감이 부재했다는 사실이다. 엄마는 딸의 성취는 사랑했지만, 딸이라는 존재 자체는 사랑하지 못했다.

딸이 힘든 일을 털어놓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면, 엄마는 위로 대신 비난이나 무관심으로 일관했을 것이다.

“네가 정신을 똑바로 안 차려서 그래”, “그 정도 일로 징징대지 마,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엄마에게 딸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딸이 기능적으로 우수한가,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가 하는 것뿐이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텅 빈 거울이라고 표현한다. 아이는 엄마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자아를 형성한다. 엄마가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며 공감해 줄 때, 아이는 비로소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임을 느낀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 엄마라는 거울에는 딸의 모습이 비치지 않는다. 오직 엄마 자신의 욕망과 허영심만이 가득 차 있다. 딸은 그 거울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지 못한 채 투명 인간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정서적 방임 속에서 자란 딸들은 자신의 감정을 신뢰하지 못한다. 슬픔, 분노, 기쁨 같은 자신의 감정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거나 억누른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사치이자 약점이라 여기며, 오직 이성적이고 효율적인 기계처럼 살아가려 애쓴다.

심지어 엄마는 딸이 자신보다 더 빛나거나 행복해지는 것을 질투하기도 한다. 딸이 젊고 아름다울 때, 혹은 아빠와 사이가 좋을 때 엄마는 미묘한 경쟁심을 드러내며 딸을 깎아내린다.

자랑거리로 삼으면서도 동시에 질투하는 이 모순적인 태도는 딸을 깊은 혼란에 빠뜨린다.

엄마의 사랑은 언제나 조건부였고, 그 조건조차 엄마의 기분에 따라 수시로 변했다. 딸은 그 변덕스러운 기준을 맞추기 위해 평생을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딸이 잃어버린 것은 단순히 어린 시절의 추억만이 아니다. 타인과 깊은 정서적 유대를 맺는 능력,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 그리고 삶을 온전히 누리는 능력을 상실했다.

전리품 진열장을 박차고 나오라

지금까지 당신은 엄마의 화려한 전리품으로 살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해 왔다. 당신의 시간, 당신의 감정, 당신의 꿈, 그리고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쳤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당신이 그토록 갈구했던, 성취와 상관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엄마는 없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뼈아픈 진실을.

이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엄마가 사랑을 줄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내면이 공허했기에 당신을 도구 삼아 그 구멍을 메우려 했을 뿐이다.

엄마의 자랑거리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번듯한 직함이 없어도, 매일같이 1등을 하지 않아도 당신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이제 그만 엄마를 위한 트로피 역할을 내려놓아라. 엄마가 만들어 놓은 좁은 진열장을 박차고 나와, 당신만의 거친 들판을 달려라.

엄마를 실망시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것은 불효가 아니라, 당신의 독립 선언이다.

  • - “엄마, 나는 엄마의 장신구가 아니에요. 나는 나예요.”

이 말을 마음속으로, 그리고 언젠가는 엄마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설령 엄마가 당신을 비난하고 외면할지라도 흔들리지 마라.

당신이 되찾아야 할 것은 엄마의 인정이 아니라, 잃어버린 당신 자신이다. 내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 내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아주 사소한 것부터 다시 물어보라.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울을 깨뜨리고, 당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 그것이 진짜 당신의 삶이라면, 그 자체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당신은 누군가의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기쁨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나만 아는 상담소 프리미엄 콘텐츠 에서 더 깊이 있는 심리학적 조언을 확인하세요.

또한, 나만 아는 상담소 네이버 블로그 에서도 다양한 주제의 심리 칼럼을 만나보세요.




The post 엄마의 자랑거리로 살아온 딸, 그녀가 잃어버린 것들 appeared first on 나만 아는 상담소.

Copyright ⓒ 나만아는상담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