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과 서울시청을 지하로 잇는 소공지하쇼핑센터가 최근 보기 드문 풍경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서울의 핵심 관광 동선이자 외국인 관람객과 직장인이 하루 종일 오가는 공간에 상점마다 동일한 항의성 인쇄물이 일제히 부착되면서 도시 이미지 훼손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상인들과 서울시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 가운데 오랜 임대 관행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가 부상하고 있다.
소공지하쇼핑센터 내에 있는 모든 점포에 최근 "오세훈과 서울시는 상가임대차보호법 위반하는 지하도상가관리조례로 지하상가 영세상인 죽이지 마라", "오세훈은 불법전대 묵인 말고 합법적인 지하상인 때려잡는 악질적인 말살정책 즉각 중단해라", "김성보 행정부시장 어리석은 상가정책 지하상인 다 죽인다" 등의 인쇄물이 붙어있다.
갈등의 발단은 서울시가 수십 년간 유지해 온 '상가단위 공동입찰제'를 폐지하고 '점포별 개별입찰제'로 전환하려는 방침을 본격화하면서 시작됐다. 그동안 공동입찰제는 상인들이 상가 전체 또는 여러 점포를 묶어 입찰해 사실상 내부 수의계약으로 유지돼 왔으며, 자금력이 부족한 영세 상인들에게는 생계 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반면 개별입찰제가 도입되면 자본력 있는 신규 사업자나 외부 업체의 유입 가능성이 커지고 기존 상인들의 생존 기반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러한 불안감이 집단행동으로 표출된 것이다.
문제는 지하상가가 상인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명동·덕수궁·종각 등을 연결하는 핵심 관광 동선이라는 점이다. 유동량이 많은 이곳은 특히 겨울철 외국인 관광객의 이동 경로로 널리 활용된다. 관광객뿐 아니라 인근 직장인도 이곳을 오가며 서울 도심의 일상적 풍경으로 받아들이는 만큼, 갈등 메시지가 시각적으로 노출되는 데 따른 부정적 인상도 적지 않다.
오랜 기간 이곳에서 장사를 해온 박순금 씨(70·여·가명)는 "그동안 상인들이 일정 규모의 점포를 함께 낙찰 받아 공동으로 운영하고 비용을 분담하는 방식이었는데 몇 달 전 갑자기 운영 방식을 바꾸겠다고 하면서 이런 상황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어 "상인 입장에서는 임대료를 서울시에 직접 내든 누군가를 한 번 더 거치든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며 "오히려 지하상가를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만 끌어 분위기를 더 나쁘게 만드는 것 같다"고 밝혔다.
지하상가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 중인 전연희 씨(50·여·가명)도 비슷한 우려를 전했다. 전 씨는 "상인회에서 지하상가 내 모든 가게에 해당 부착물을 붙이라고 했다"며 "최근 은 값이 크게 오르면서 장사가 예년보다 더 어려워진 상황인데 이런 부착물까지 붙여두니 손님들이 들어오다가도 나가는 경우가 더 많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박호성 씨(48·남)는 "매일 이 길을 이용하고 있는데 한국인 입장에서 지나가면서 봐도 딱히 유쾌하게 느껴질 내용은 아니라 자연스럽게 외면하게 된다"며 "외국인 관광객들 눈에도 좋게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박 씨는 "야근으로 늦게 퇴근할 때면 지하상가 불은 다 꺼져 있다 보니 하얀 종이만 더 눈에 띈다"며 "서울시와 지하상가 모두 각자의 입장은 있겠지만 관광객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스페인에서 온 알레호(Alejo·25·남)는 "이게 어떤 이유로 붙어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좋아 보이는 내용은 없는 것 같다"며 "어떤 가게는 한 장, 어떤 가게는 여러 장도 붙어 있다 보니 내용을 알지 못하는 관광객 입장에서는 조금 무섭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서울이 전 세계적으로 K팝·K콘텐츠 인기에 힘입어 주요 관광도시로 부상한 상황에서, 지하상가와 같은 대량 유동 공간에 부정적 메시지가 노출되는 것은 도시 이미지 관점에서 리스크가 크다고 지적했다.
김영국 강원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관광객들 입장에서는 여행 도중 눈에 보이는 것 하나하나가 모두 관광 콘텐츠로 인식될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부정적인 내용이 담긴 인쇄물이 곳곳에 붙어 있는 것은 관광객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요즘은 휴대전화로 즉시 번역이 가능한 만큼 이러한 문구들이 한국이나 해당 지역 전체의 관광 이미지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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