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정책의 무게중심이 수도권과 개별 기업 중심에서 지역과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역 성장, 제조업 AI 전환, 통상 전략 재편을 하나의 축으로 묶은 산업정책 대전환 구상이 정부 업무보고를 통해 구체화됐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7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내년도 산업정책 방향으로 지역 성장 전략과 제조업의 AI 전환, 국익 중심 통상 전략을 제시했다. 단기 처방이 아닌 산업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겠다는 점에서 기존 산업정책과 결이 다르다는 평가다.
핵심은 '5극 3특'으로 요약되는 지역 성장 전략이다. 산업부는 내년 2월까지 전국을 5개 권역과 3개 특별지역으로 나눠 권역별 성장엔진 산업을 확정할 계획이다. 선정된 산업에는 규제 완화, 인재 공급, 재정·금융 지원, 혁신 인프라를 묶은 범정부 지원 패키지가 집중 투입된다.
특히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가운데 60조원을 지역에 우선 배정하는 방안은 그동안 수도권에 집중됐던 투자 흐름을 지역으로 돌리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성장엔진 특별보조금 도입, 규제 프리존 확대, 지역 거점 국립대를 활용한 인재 공급도 함께 검토된다.
지역을 잇는 '메가 산업 벨트' 구상도 병행된다. 광주·구미·부산을 연결하는 남부권 반도체 혁신벨트, 새만금·청주·포항·울산을 잇는 배터리 삼각벨트가 대표적이다. 산업부는 지역별로 첨단 패키징, 전력반도체, 배터리 소재 등 특화 분야를 나눠 중복 투자를 피하고, 연결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제조업 경쟁력 강화의 키워드는 AI다. 산업부는 제조와 인공지능을 결합한 '제조 AI 전환(M.AX)'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1000개 산·학·연이 참여하는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AI 팩토리 500개를 단계적으로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대기업과 협력사가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AI 선도 모델과 실증 산업단지도 함께 조성된다.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국내 마더팩토리 구축, 해외 양산' 전략이 강조됐다.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조선, 방산 등 주력 산업의 핵심 기술은 국내에서 확보하고, 글로벌 생산은 효율적으로 분산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AI 반도체, 차세대 배터리 등 전략 기술 지원과 제도 개선도 추진된다.
통상 정책 역시 방향 전환이 예고됐다. 대미 투자 확대 기조 속에서도 투자금 회수와 국내 환류를 고려한 구조 설계가 강조됐다. 수출 시장 다변화, 신흥국 협력 확대, 에너지·방산·전력기자재 등 전략 품목 중심의 통상 전략도 병행된다.
이번 업무보고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정책 내용뿐 아니라 이를 실행하기 위한 조직 개편 방안이다. 김 장관은 불필요한 보고와 관행적 업무를 줄이기 위한 '가짜 일 30% 줄이기' 프로젝트를 공식화했다. 정책 추진력을 높이기 위해 내부 행정부터 손보겠다는 의미다.
산업부 안팎에서는 "정책의 방향성보다 중요한 것은 실행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규모 지역 투자와 제조업 AI 전환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예산, 규제, 인재 정책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산업정책의 중심축을 지역과 제조업 현장으로 옮기겠다는 이번 구상이 선언에 그칠지, 산업 구조 변화로 이어질지는 향후 1~2년간의 실행 과정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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