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곽호준 기자 | 가속 페달을 누를 때마다 전해지는 부드러운 엔진 회전질감이 일품이다. V8 엔진을 심은 랜드로버 '디펜더 옥타(OCTA)'는 온·오프로드를 군림하며 시종일관 운전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랜드로버의 대표 오프로더, 디펜더가 등장한지 올해로 77주년을 맞았다. 디펜더의 뿌리는 1948년에 출시한 랜드로버 시리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랜드로버 시리즈는 군용차로 개발된 것이 시초였다. 초기에는 차체 길이에 따라 랜드로버 90, 랜드로버 110으로 불렸다. 이는 휠베이스가 각각 2도어가 90인치, 4도어는 110인치였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디펜더란 차명은 1989년부터 붙이기 시작했다. 랜드로버가 레인지로버에 이어 디스커버리를 출시하며 모델명을 구분할 필요가 생겼고 기존 90과 110에 디펜더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숏바디는 디펜더 90, 롱바디는 디펜더 110, 휠베이스를 늘린 바디는 디펜더 130이라 명칭을 붙이며 본격적인 라인업을 구축했다.
올해 '궁극'이란 표현이 걸맞은 디펜더가 국내에 상륙했다. 옥타는 지난 77년 역사에 방점을 찍는 모델이자 110의 성능을 역대 최고치로 끌어올린 모델이다. 옥타란 모델명도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광물인 다이아몬드의 결정 구조 '옥타헤드럴(정팔면체)'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만큼 내구성에서 드러나는 강인함과 희소성을 상징으로 삼은 모델이다.
특별한 이름을 부여받은 만큼 파워트레인도 남다르다. 옥타에는 BMW로부터 공급받은 V8 4.4ℓ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과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얹는다. 이른바 코드명 'S63(S63B44T4)'이라 불리는 강력한 엔진으로 BMW M5·M8 등 고성능 모델에 주로 탑재된다.
제원상 수치도 남다르다. 8단 자동 변속기와 맞물려 최고출력 635마력, 최대토크 76.5㎏·m를 발휘한다. 힘이 넘치는 만큼 가속 페달을 가볍게 밟아도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발진 가속력은 이 차의 2.6톤이 넘는 무게를 잊게 한다. 이를 수치로 표현하면 길이 5m, 높이 1.9m가 넘는 거구를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4초 만에 주파하는 수준이다.
단순히 수치만 끌어올린 것은 아니다. 옥타에 걸맞게 몇 가지 손질을 거쳤다. 가령 엔진 흡기 라인을 개선하고 변속기에 하이·로우 레인지 기어를 더해 오프로드 주행에 최적화했다. 심지어 감성까지 챙겼다. 시동을 거는 순간 우렁찬 엔진음과 함께 이어지는 부드러운 엔진 회전 질감은 옥타의 으뜸 매력이다.
성능은 흠잡을 데가 없다. 일반 모델의 슈퍼차저 엔진과 비교하면 저회전 영역(1800rpm)부터 토크를 풍부하게 뿜어내며 응답성이 저속에서도 활기차다. 듀얼클러치미션(DCT) 못지않은 기민한 ZF의 자동 변속기는 속도를 오르내릴 때마다 칼같이 반응한다. 파워트레인만 보면 분명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인데 스포츠카를 다루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온로드에서의 주행 감각은 꽤 드라마틱 하다. 고저차가 심하고 급커브가 많은 산길에서 속도를 과감하게 올려도 차체 기울어짐을 좀처럼 느끼기 어렵다. 비결은 유압식 액티브 댐퍼와 높이 조절식 에어서스펜션이 조합된 '6D 다이내믹스 서스펜션'이 피칭과 롤을 완전히 억제하기 때문. 차체가 수평을 유지한 채 코너를 파고드는 감각은 포르쉐 카이엔 못지않게 민첩하다.
사실 옥타의 온로드 실력은 '덤'에 가깝다. 이 차의 진가는 험로에서 맛볼 수 있다. 디펜더는 자타공인 랜드로버 라인업 중 가장 강력한 오프로드 성능을 갖춘 차로 정평이 나 있다. 랜드로버는 옥타를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모터스포츠 대회로 손꼽히는 '다카르 랠리' 무대에 출전시킬 정도로 오프로드에 진심이다.
타이어만 살펴봐도 옥타가 추구하는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시승차인 '옥타 에디션 원'은 BF굿리치의 '트레일 터레인 T/A'를 기본 타이어로 신는다. 이름 그대로 온·오프로드를 모두 아우르는 사계절용 올라운드 타이어다. 규격은 275/50(단면적/편평비) 20인치. 차체 크기와 성능, 유지비까지 감안하면 사이즈는 적당해 보인다.
본격적인 오프로드 코스로 진입. 옥타의 잠재력을 제대로 이끌어내는 수준은 아니지만 '맛보기'로 즐기기에는 충분한 장소로 무대를 옮겼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오프로더답게 옥타에도 오프로드 전용 모드가 제공된다. 스티어링 휠 하단에 정팔면체 모양의 옥타 로고 버튼을 길게 누르면 오프로드 드라이빙 모드인 '옥타 모드'가 활성화된다.
참고로 옥타 모드에서는 '전자동 지형 반응 시스템'이 유지된다. 이는 모래, 진흙, 잔디, 자갈, 암석, 눈 등 다양한 노면 조건에 맞춰 구동과 차체 제어를 최적화하는 기능이다. 운전자는 노면에 맞춰 에어 서스펜션의 높이, 로우 기어를 입맛대로 설정하면 된다. 나머지는 옥타가 알아서 해주니 입문자도 쉽고 부담 없이 오프로딩을 즐길 수 있다.
이 모드로 먼저 모래와 자갈길부터 가볍게 달려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디펜더는 험로에서 빛을 발한다. 일반 승용차로는 주행이 까다로운 모래와 자갈길을 마치 포장도로인 것 마냥 종횡무진 주파한다. 고성능 엔진이 뿜어내는 출력을 험로에서도 끌어낼 수 있는 매력은 미소를 절로 짓게 한다.
다음은 깊은 웅덩이와 진흙길. 이런 노면은 기본적으로 타이어의 트랙션 확보가 어렵고 자칫 잘못하면 탈출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심지어 높아진 출력 때문에 바퀴가 미끄러질 가능성이 더 높은 상황. 하지만 옥타는 "과연 여기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까?" 싶은 진흙탕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무심하게 빠져나간다.
가파른 비포장 언덕도 마찬가지. 오르막 최대 진입각 약 40º, 이탈각 42º라는 스펙을 바탕으로 웬만한 경사는 망설임 없이 통과한다. 이는 하체의 센터와 리어에 탑재된 '액티브 락킹 리어 디퍼런셜' 덕분이다. 진흙탕이나 경사로처럼 접지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으면 한쪽 바퀴가 헛돌아도 반대쪽 바퀴에 힘을 실어 장애물을 단숨에 삼켜버린다.
다만 뛰어난 성능만큼 구매 문턱은 꽤 높은 편이다. 디펜더 옥타의 국내 판매 가격은 부가세 포함 2억2497만원부터 시작한다. 시승차인 옥타 에디션 원은 2억4257만원으로 책정됐다. 기존 디펜더 라인업 대비 1억원가량 높은 수준이지만 온·오프로드를 아우르는 퍼포먼스와 완성도 측면에서 확실한 진화를 이뤄낸 점을 감안하면 일정 부분 수긍할 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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